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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출처 동국역경원, 전자불전문화제콘텐츠연구소

작성일 2010/04/17

금강삼매경론 중권, 원효대사 술 - 팔만대장경


금강삼매경론 중권, 원효대사 술 - 팔만대장경, 불교경전, 부처님가르침
금강삼매경론 >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 금강삼매경론 중권
K.1501(45-60), T.1730(34-961)
[73 / 263] 쪽
  
금강삼매경론 중권
  
  
  신라국 사문 원효 지음
   번역
  
  
  
3. 무생행품(無生行品)
  
  [論] 보살은 관행(觀行)이 성취되었을 때 스스로 마음 관찰할 줄을 알고 이치[理]에 따라 수행하므로 마음을 일으키는 일[生心]이 있는 것도 아니며, 마음을 일으키는 일이 없는 것도 아니고 또 행(行)이 있는 것도 아니며 행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다만 증익으로 치우친 견해[增益邊]1)를 떠나기 위해서 임시로 ‘무생(無生)’이라고 하였으니, 유생(有生)에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무생에도 마음을 일으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손감으로 치우친 견해[損減邊]2)를 떠나기 위해서 임시로 ‘행(行)’이라고 한 것이니, 유행(有行)의 행이 있는 것은 아니나 무행(無行)의 행이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에 「무생행품(無生行品)」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經] 그 때 심왕보살(心王菩薩)이 삼계(三界)를 벗어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모아 합장하고 게송으로 여쭈었다.
  [論] 관행(觀行)에 대하여 따로 설명[別顯]하는 여섯 개의 품 중에 제1품은 모든 경계의 모습[境相]을 버리고 무상관(無相觀)을 설명한 것인데, 앞서 끝마쳤다. 여기서부터는 제2품으로 그 일어나는 마음을 없애, 무생행(無生
  
  
  
1) 무엇을 보탤 줄만 아는 치우친 생각.
2) 무엇을 없애고 줄일 줄만 아는 치우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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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行)이 어떤 것인가를 밝힌 부분이다. 이에 해당하는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뉜다. 첫째는 내용 설명[正說]이고, 둘째는 설명에 대한 찬탄[讚說]이며, 셋째는 설명을 듣고 얻는 이익[聞說得益]이다.
  첫째 정설(正說)중에 네 부분이 있다. 첫째는 반복해서 문답한 것(往復問答)이고, 둘째는 반대입장에서 따지고 문답한 것[反徵問答]이며, 셋째는 보살이 이해한 것[菩薩領解]이며, 넷째는 여래가 결론을 맺는 것[如來述成]이다.
  첫째 반복해서 문답한 가운데 여섯 부분이 있다. 첫 번째는 질문[問], 두 번째는 대답[答], 세 번째는 따져 물음[難],3) 네 번째는 부정[拒],4) 다섯 번째는 다시 요청함[請], 여섯 번째는 해석[釋]이다.
  처음의 질문도 둘로 나뉘는데, 먼저 앞 부분에는 경전을 기술하는 사람의 일반적인 서문이 있다. ‘심왕보살(心王菩薩)’이란 체(體)에 따라서 이름을 세운 것이다. 그러나 심왕에는 크게 두 가지 뜻이 있으니 하나는 8식(識)의 마음이 모든 심수(心數)를 총괄적으로 제어하므로 심왕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일심(一心)의 법이 모든 덕[衆德]을 총괄적으로 포섭하므로 심왕이라고 한다.
  여기서는 이 보살이 무생행(無生行)에 들어가 하나의 심왕[一心王]을 증득했기 때문에 (증득한 심왕의) 체를 따라 이름을 붙인 것이다. 지금 이 품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 무생행(無生行)이므로 심왕보살이 물은 것이다.
  ‘삼계(三界)를 벗어난 불가사의(不可思議)한 설법’이란, 들은 법(法)을 꺼내서 문제를 제기하는 발단으로 삼은 것인데, 들은 것이란 앞 품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여기서는 우선 뒤의 것을 들면서 앞의 것을 반복하였으니, 즉 마지막(전품) 송(頌)에서 ‘초연히 삼계를 벗어나되……일승으로 성취한 것이로다’라고 한 문장이다.
  
  [經] 여래께서 설하신 뜻은
  세간을 벗어나 모습[相]이 없어
  
  
  
3) 논란함.
4) 부처님께서 단호히 아니라고 거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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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히 모든 중생들에게
  다 유루(有漏)를 끊게 하시네.
  
  번뇌를 끊어 심(心)과 아(我)가 공하니
  이는 생함이 없음일진대
  생함이 없거늘 어찌하여
  무생인(無生忍)이 있겠나이까?
  
  [論] 이 두 게송은 질문[問辭]이다. 그 가운데 첫 송은 앞에서 설한 내용을 이해한 것을 노래한 것으로서, 위의 반(半)은 전에 말한 ‘일미법인[一味之法印]’을 이해한 것이요, 아래의 반은 ‘일승소성[一乘之所成]’을 이해한 것이다. 다음 1송은 의문을 일으킨 것인데, 그 중 위의 반은 무생의 뜻[無生義]을 물은 것이고, 아래의 반은 무생의 이치를 확실히 아는 것[無生忍]에 대해 물은 것이다. 이미 생이 없다면 그것을 아는 마음[忍心]도 없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經] 그 때 부처님께서 심왕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법이 본래 생겨남이 없으며 모든 행(行)도 생겨남이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무생(無生)의 행(行)이라고 할 것도 없는데, 무생인(無生忍)을 얻는다고 한다면 허망(虛妄)하다고 할 것이다.”
  [論] 이것은 두 번째5) 답(答)하신 것이다. 답하신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먼저 무생인(無生忍)의 모습[相]을 제시하고, 다음에 얻음이 있다고 생각하는 과실을 밝힌다.
  ‘무생법인(無生法忍)’이란, 법이 본래 생겨남이 없다는 사실을 통달하는 것이다. 이는 선정[定]·지혜[慧]와 모든 행(行)도 역시 생겨남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생겨남이 없는 곳에서는 안다[忍]고 할 만한 행(行)이 있지
  
  
  
5) 정설(正說)을 넷으로 나눈 가운데 반복해서 묻고 답하는 부분[往復問答]이 그 첫 번째인데, 그것을 다시 문(問), 답(答), 난(難), 거(拒), 청(請), 석(釋)의 여섯으로 나누었다. 위 경문은 이 중 두 번째로 ‘답’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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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으므로 ‘무생의 행이라고 할 것도 없다[非無生行]’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런 가운데에서 안다고 하는 행이 얻어진다면 이는 머묾도 없고[無住]·행함도 없는[無行] 참된 앎[眞忍]에 위배되므로 ‘허망하다’고 하였다.
  [經] 심왕보살이 아뢰었다.
  “존자시여, 무생인(無生忍)을 얻는 것이 허망(虛妄)하다고 하시니 얻음도 없고 아는 것도 없다면 허망이 아니겠나이다.”
  [論] 세 번째는 따져 묻는 것[難]이다. 묻는 의도는 이렇다. ‘만약 얻음과 앎이 있는 것을 허망하다고 한다면, 얻음이 없고 앎이 없는 것은 허망이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이니 허망과 반대가 되기 때문이다’ 무소득(無所得)을 공부하는 대승의 수행자들이 이와 같이 헤아리면서 자신들은 허망하지 않다고 여기므로 그들의 잘못을 드러내기 위하여 이런 물음을 제기한 것이다.
  [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아니다. 어째서 그런가? 얻음도 없고 앎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얻음이 있는 것이다. 얻음이 있으면 머묾이 있는 것이니[有得有住:다른 본에는 ‘有得有忍’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생김이 있는 것이다. 얻음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는 것과 얻을 법(法)이 있다는 것은 모두가 허망이 된다.”
  [論] 네 번째는 부정하는 것[拒]이다. 그 중에 둘이 있다. ‘아니다[不]’라고 한 것은 직접적인 거부이고, ‘어째서 그런가?[何以故]’ 이하는 부정하는 이유를 해석한 것이다. 부정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얻음도 없고 앎도 없다[無得無忍]’고 하는 저들의 생각이 비록 ‘얻음도 있고 앎도 있다[有得有忍]’할 때의 유(有)는 아니라 할지라도 ‘얻음도 없고 앎도 없다’는 무(無)를 얻는 것이다. 이미 무를 얻었다면 마음이 무에 머물고, 마음이 이미 머무름이 있으면 이는 생겨남이 있게 되는 것이다. 얻은 것이 있음[有所得]에 대해 마음이 생하므로 결국 무생무득(無生無得)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모두 허망이 된다’고 하였다.
  [經] 심왕보살이 아뢰었다.
  “존자시여, 앎도 없고 생겨남도 없는[無忍無生] 마음이라도 허망하지 않은 것이란 어떤 것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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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 다섯 번째는 간청[請]이다. 논란을 제기하였으나 더 물을 길은 없고 생각은 더 나아갈 수 없으므로 우러러 여쭈어 더 이끌어 주시기를 청한 것이다.
  [經]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앎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마음이란, 형체[形段]가 없는 마음이다. 마치 불의 성질이 나무 속에 있으나 정해진 처소가 없듯이. 그것이 결정된 성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름과 글자가 있을 뿐 그 성질은 얻을 수가 없다. 이런 이치를 밝히기 위하여 이름을 빌어서 말할 뿐, 그 이름도 성립할 수 없다. 마음의 특성[相]도 그러하여 그것이 있는 처소를 볼 수 없으니, 이렇게 마음을 파악한다면 그것이 생겨남이 없는 마음이다.”
  [論] 이 아래는 여섯 번째로 해석[釋]이다. 그 가운데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얻음이 없다는 도리를 밝히고[開無得道理], 둘째는 생멸이 없는 도리를 보여주고[示無生道理], 셋째는 틀린 생각을 예시하고[擧非], 넷째는 바른 견해를 밝혔다[明示].
  얻음이 없다는 도리를 밝힌 것에도 세 가지가 있는데, 즉 주장[法]과 비유[喩]와 비유를 주장에 대입하여 종합한 것[合]이다.
  먼저 ‘앎이 없고 생겨남이 없는 마음[無忍無生心]’이란 바로 법인(法忍)에 있는 마음을 다시 한번 거론한 것이다.
  ‘형체가 없는 마음[心無形段]’이란 마음에 얻는 것이 없음을 나타낸 것이다. 형(形)은 바탕[體]을 말하고 단(段)은 분위[分]를 말한다. 모든 연(緣)에서 마음의 바탕이나 분위를 찾아보아도 붙어 있거나 떠나 있거나 도무지 얻어지는 것이 없다. 이러한 도리에서 형단(形段)이 없다고 한 것이지, 색(色)을 말할 때 형단(形段)의 상이 없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비유에서 ‘불의 성질이 나무 속에 있으나’라는 말은 ‘아는 마음[忍心]이 이치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와 같은 뜻이다.
  ‘정해진 처소가 없듯이’라고 한 것은 이 나무 속을 보면 모든 극미[極微]가 있으나 그 중에 전혀 불의 성질이 있는 처소를 찾을 수 없는 것처럼, 마찬가지로 이치 중에는 갠지스강의 모래알 같이 많은 법문이 있으나 그 속에서 아무리 마음을 찾아보아도 영원히 그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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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질이 정해진 처소를 갖지 않는다는 도리는 부처가 세상에 있건 없건 어느 때나 법성이 항상 그러한 까닭에 ‘결정된 성품’이라고 하였다. 불의 성질이란 이름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건져낼 수가 없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불의 성질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나무 속에는 불의 성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도리를 밝히려고 ‘불의 성질’이란 이름을 말한 것이나, 이 이름을 아무리 두드리고 쪼개 보아도 다만 글자가 있을 뿐이다. 모든 글자를 다 찾아 돌아다녀보아도 불의 성질은 얻어지지 않는다, ‘아는 마음[忍心]’이란 이름과 특성[相]도 똑같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다음에 ‘마음의 특성도 그러하다’고 한 것이다.
  확실한 앎[忍]을 얻은 보살이 마음이 이와 같은 줄을 알면, 어떻게 그 속에서 취하는 마음이 생기겠는가? 그러므로 ‘그것이 생겨남이 없는 마음[則無生心]’이라고 하였다.
  [經] “선남자야, 이 마음의 본성[性]과 특성[相]은 아마륵(阿摩勒) 열매와 같아서 본래부터 자기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것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자기와 다른 것이 합쳐지는 데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생겨나는 원인을 말미암지 않고 생겨나는 일도 없는 것이다.[不因生無生:다른 본에는 ‘不因生不無生’으로 되어 있다.]
  어째서 그런가? 연(緣)이 바뀌고 또 바뀌기 때문이다. 연이 일어났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연이 바뀌었다고 해서 멸하는 것도 아니니 숨고 나타나는 것이 다 모양이 없다. 근본 이치는 적멸(寂滅)하여 소재하는 곳이 없으며 머무는 곳도 볼 수 없으니 결정된 성품이기 때문이다.”
  [論] 이 아래는 두 번째인 생겨남이 없는 도리를 밝힌 부분[示無生道理]인데, 여기에도 둘이 있다. 먼저는 비유[喩]이고 다음은 비유를 주장에 대입하는 부분[合]이다. 유(喩) 가운데도 둘이 있으니, 먼저는 네 가지 부정[四不]을 설명하고 나중에는 여덟 가지 부정[八不]을 드러낸다.
  ‘네 가지 부정’이란 무엇인가? 연(緣)을 의지하기 때문에 자기에게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며, 제 씨앗이기 때문에 남에게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며,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므로 자타가 합해지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며, 작용이 있으므로 생겨남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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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말해 아직 생겨나지 않았을 때는 자기가 없기 때문에 자기로부터 생긴다할 수 없으며, 이미 생겼을 때는 이미 있기 때문에 자기가 생겨날 필요가 없다. 자기에게서 생겨난다는 것이 이미 성립되지 않는데, 누구를 가리켜 남[他]이 있다고 하겠는가? 자기도 남도 이미 없는데 어찌 ‘합쳐지는 데’가 있을 수 있겠는가?
  원인이 있어서 생긴다 하는 것도 이미 되지 않는 말이니, 하물며 원인 없이 생길 수 있을까? 이런 방식으로 생겨남을 찾아보아도 전혀 찾아질 수 없다. ‘생겨나는 원인을 말미암지 않고 생겨나는 일도 없는 것이다’라고 한 것은 원인 없이 생기는 것도 아님을 밝힌 것이다. 즉 원인이 없는데 결과가 생겼다고 하는 일은 있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이하는 다음으로 숨은 의심을 풀어 주는 것이다. 의문을 품은 사람은 세 번째 부정에 대해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란 무엇을 말하는가? 열매[果]가 생기는 데는 씨앗이 직접적인 원인[親因]이 되고, 흙과 물 같은 것이 간접적인 계기[疎緣]가 되어 이 둘이 합쳐진 까닭에 열매가 생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합쳐지는 데서 생기는 것도 아니다[不共生]’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다. 그러므로 어째서 그런가 하고 물었다.
  ‘연이 바뀌고 또 바뀌기 때문[緣代謝故]’이란 저 두 가지 연[親因·疎緣]이 잠시도 머물지 않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바뀐다는 뜻이다. 머무는 시간이 이미 없다면 공용(功用)이 없다. 공용이 없으므로 합쳐서도 열매를 맺지 못한다. 게송에서도 ‘제행(諸行)이 모두 찰나라서 머무름이 없거늘 하물며 작용이 있으랴’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바뀌고 또 바뀌는 것’을 따져보면 생겨나는 일도 없고 소멸하는 일도 없다. 어째서 그런가? 이미 잠시도 머무름이 없다면 생겨남이 없는 것이고, 생겨남이 없으므로 소멸도 없는 것이니, ‘연이 일어났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고, 연이 바뀌었다고 해서 멸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와 같이 따져들어가 보면 숨고 나타나는 일이 다 없는 것이다. 숨었을 때는 씨앗으로 흙 속에 있고, 나타날 때는 싹과 줄기로서 땅 위에 나와 있기 때문이다. ‘근본 이치는 적멸하다’라고 하는 것은 그 나무의 뿌리와 줄기의 이치를 따져서 열매가 생기는 원인을 구하여도 결국 일어남이 없으므로 ‘적멸(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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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滅)하여 소재하는 곳이 없으며 머무는 곳도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결정된 성품[決定性]이기 때문이다. 결정성의 의미는 앞에서 말한 것과 같다.
  [經] “이 결정성은 또한 같은 것도 아니고[不一], 다른 것도 아니며[不異], 아주 끊어진 것도 아니고[不斷], 언제나 계속되는 것도 아니며[不常],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不入], 나오는 것도 아니며[不出], 생기는 것도 아니고[不生], 또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不滅]. 모두 네 가지 비방[四謗]을 떠나 말로 표현할 길이 끊겼으니, 생함이 없는 심성(心性)도 그렇다. 어찌 생겨난다, 생겨나지 않는다, 확실한 앎이 있다, 확실한 앎이 없다 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論] 다음은 여덟 가지 부정[八不]을 밝힌 것이다. 법이 원래 그러함을 앞의 네 가지로만 밝힌 것이 아니라 같으냐, 다르냐[一異] 하는 등 여덟 가지 견해를 모두 끊어준 것이다.
  어째서 그런가? 열매[菓]와 씨[種]가 하나가 아닌 것은 그 모양이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다르지도 않으니, 씨를 떠나서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또 씨와 열매는 단절되어 있지도 않다[不斷]. 열매가 씨를 이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또 항상한 것도 아니니[不常], 열매가 생기면 씨는 없어지기 때문이다. 씨는 열매 속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열매가 맺었을 때는 씨가 없기 때문이다. 열매는 씨 밖으로 나온 것도 아니니 씨일 때는 열매가 없기 때문이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않으므로 생겨남이 없다. 언제나 지속되는 것도 아니고 단절되어 버리는 것도 아니므로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으므로 없다[無]고 말할 수 없고, 생기지 않으므로 있다[有]고 말할 수 없다. 두 가지 치우침[二邊]을 멀리 떠났으므로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亦有亦無]고도 말할 수 없고, 또 중간에 해당되지도 않으니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非有非無]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네 가지 비방[四謗]을 떠나 말로 표현할 길이 끊겼다’고 하였다.
  아마륵(阿摩勒) 열매가 말로 표현할 길이 끊겼듯이, 법을 확실히 아는 마음[法忍之心]도 이와 다를 것이 없으므로 ‘생함이 없는 심성(心性)도 그렇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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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經] “만일 마음에 얻음이 있느니 머무름이 있느니, 또는 그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반야[어떤 본에는 ‘반야’라는 두 글자가 없다]를 얻지 못한 자로서 긴 밤을 지내는 사람과 같다.”
  [論] 이것은 세 번째로 틀린 생각을 예시[擧非]한 대목이다. 어떤 사람이 ‘무생을 확실히 아는 마음[無生忍心]은 심체(心體)를 가지고 있으며 무생(無生)에 머물고 있다’고 한다든가, 또는 ‘생겨남이 없는 이치를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는 심성(心性)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다. 이는 망집(妄執)으로서 보리와 반야를 가로막는다. 이 대목은 청정한 성품으로서의 깨달음[性淨菩提]과 그것을 증득하는 지혜[能證般若]를 얻지 못했음을 밝힌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리는 ‘처음 일어난 보리[始起菩提]를 뜻하며, 반야는 보리의 원인을 뜻하는데, 깨달음의 원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긴 밤’에 비유하였다. 무시이래의 망상은 큰 꿈이기 때문이다.
  [經] “심성을 명확히 분별하는 자는 심성이 한결같다[如]는 사실과 그것을 아는 성품 역시 한결같다는 사실을 아니, 그것이 바로 생겨남이 없는 행[無生行]이다.”
  [論] 이것은 네 번째로 바른 생각을 드러내는[顯是:明是] 것이다. ‘심성을 명확히 분별하는 자’란 자기 마음으로 자신의 심성(心性)을 잘 아는 자이다. 경에서도 ‘만약 대상을 취하는 작의[能取作意]를 가지고 반대로 대상을 취하는 그 작의를 통달한다면 이야말로 능연(能緣)과 소연(所緣)이 평등하고 평등해져서 무루(無漏)의 지혜가 생기고 성제(聖諦)를 통달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심성이 한결같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것은 스스로 관찰하는 마음을 안다는 뜻인데, 그 체의 성품[體性]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성품 역시 한결같다는 사실을 안다’고 한 것은, 아는 작용[能知用]도 그렇다는 것이니, 작용의 성품[用性]이 평등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마음의 체와 용이 평등하여 생겨남도 멸함도 없고 시작도 없고 끝도 없음을 관찰한다. 이런 이유로 ‘그것이 바로 생겨남이 없는 행[是無生行]’이라고 하였다.
  위에서 네 가지 부정[四不]으로 무생(無生)을 밝힌 것은 무생의 이치를 드러내는 것으로서, 이치란 범부와 성인에 공통적으로 해당한다. 한편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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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한결같음[如]을 아는 것으로 무생(無生)을 밝힌 것은 무생의 행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행이란 성인에게만 해당한다. 성인에게만 있는 행은 이치와 일미(一味)이며, 공통하는 이치는 지혜와 평등하니 평등한 일미이기 때문에 성인도 달리 할 수가 없는 것이다. 공통점도 있고 다른 점도 있으므로 성인도 같게 할 수가 없다.
  ‘같게 할 수 없다[不能同’]는 것은 같지만 다른 것이요, ‘달리 할 수 없다[不能異]’는 것은 다르지만 같다는 뜻이다. ‘같음[同]’이란 다른 데서 같은 것을 알아내는 일이요, ‘다름[異]’이란 같은 데서 다른 것을 밝히는 것이다. ‘같은 데서 다른 것을 밝힌다’는 것은 같은 것을 나누어서 다르게 하는 것이 아니다. 또 ‘다른 데서 같은 것을 알아낸다’는 것은 다른 것들을 녹여서 같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실로 같음이란 다른 것들을 녹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같음이라고 말할 수가 없고, 다름이란 같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름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다만 다르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같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요, 같다고 할 수는 없으므로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 따름이다. 말하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도, 둘도 아니요 별개도 아니다.
  [經] 심왕보살이 아뢰었다.
  “존자시여, 만일 마음이 본래부터 한결같아[如] 행(行)에 대해 마음을 일으키지 않으면 모든 행이 생겨나지 않으며, 생겨나는 행도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생겨나지 않고 행도 없으니 이것이 무생행(無生行)이 아니겠습니까?”
  [論] 여기서부터는 두 번째로 반대 입장에서 따지고 문답한 것[反詰問答]6)인데 여기에 여덟 가지가 있다. 첫째는 행을 들어 이치를 논란한 것[擧行難理]이고, 둘째는 증득한 것이 있느냐고 따지듯이 묻는 말씀[反詰有證]이고, 셋째는 얻은 것이 없다고 부처님께 대답한 것[仰報無證], 넷째는 얻은 것이 있느냐고 반문한 것[反詰有得], 다섯째는 얻은 것이 없다고 부처님께 대답한 것[仰報無得], 여섯째는 증득한 것이 없다고 진술한 것[述無證得],
  
  
  
6) 「무생행품(無生行品)」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첫 번째가 내용설명[正說]인데, 그 중에 네 부분이 있다. 첫째는 반복해서 문답한 것(往復問答)이고, 둘째는 반대 입장에서 따지고 문답한 것[反徵問答]이며, 셋째는 보살이 이해한 것[菩薩領解]이며, 넷째는 여래가 결론을 맺는 것[如來述成]이다. 여기서부터가 두 번째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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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치선병비요법 상권 2 , 병을 치료하는 관법 풍병,수병,화병,난병,음병,

5280
174

치선선비요법 상권 1 병을 치료하는 관법, 풍병,수병,난병,화병,음병,

5151
173

문수사리발원경

5245
172

관세음보살수기경

4731
171

과거현재인과경 제1권

5124
170

무극보삼매경

5179
169

광찬경 제 8권

4826
168

광찬경 제 5권

4651
167

광찬경 제1권) 1. 마하반야바라밀광찬품(摩訶般若波羅蜜光讚品)

4637
166

대반열반경 (금강과 같은 몸)금강신품

4971
165

육조단경 중에서, 혜능대사의 가르침...무념,일행삼매,좌선,三身,

6279
164

불본행집경 제7권 고강왕국품 5

5000
163

불본행집경 제6권 - 상탁도솔품 2

4872
162

불본행집경 제5권 상탁도솔품 1

5893
161

불본행집경 5권 현겹왕종품 2

5487
160

불본행집경 4권 현겹왕종품 1

5230
159

불본행집경 제4권 수결행집경2

5730
158

불본행집경 3권 수결정기품

6153
157

불본행집경 제 3권 발심공양품3 30쪽~47쪽까지

5527
156

불본행집경 제3권 발심공양품 3. 10쪽까지

5572
155

불본행집경 제2권 발심공양품2. 23쪽~33쪽까지

5875
154

불본행집경 제2권 발심공양품 2. 10~23쪽까지

5970
153

불본행집경 제2권 1쪽에서 ~10쪽까지

5649
152

불본행집경 제1권 발심공양품

5468
151

불본행집경 제1권

5569
150

금강삼매경론 하권. 원효대사 술

6866
149

금강삼매경론 중권, 원효대사 술

6599
148

금강삼매경론 상권. 원효대사 술

7249
147

관세음보살 수기경

5694
146

법구비유경 제 1권 50쪽~60쪽까지

4896
145

법구비유경 제 1권 40쪽~50쪽까지

5262
144

법구비유경 제1권 30~40쪽까지

4643
143

법구비요경 제1권 30~40쪽까지

4810
142

법구비유경 제1권 20~30쪽까지

5762
141

법구비유경 제1권 10~20쪽까지

4994
140

법구비유경 제 1권 1~10쪽까지

5135
139

용수보살 중론 제 2권 46~55쪽까지

5117
138

용수보살 중론 제 2권 36~45쪽까지

5991
137

용수보살 중론 제1권 30~36쪽까지

7120
136

용수보살 중론 제 1권 20쪽~30쪽까지

6451
135

용수보살, 중론 제1권 10~20쪽까지

5192
134

용수보살 중론. 제 1권 1~10쪽까지

7006
133

묘법연화경 제2권 95~105쪽까지

4516
132

묘법연화경 제2권 85~95쪽까지

4945
131

묘법연화경 제 2권 76 ~85쪽까지

4076
130

묘법연화경 제2권 66~75쪽까지

4192
129

묘법연화경 제1권 40~65쪽까지

4210
128

묘법연화경(벙화경) 제 1권. 21~40 쪽까지

4975
127

묘법연화경(법화경)제 1권. 1~20쪽까지

5431
126

대방광입여래지덕부사의경

4147
125

대방광여래부사의경계경 (大方廣如來不思議境界經)

3924
124

앙굴마라경 제 4권

3933

1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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