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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윤회

벽공스님 저술 = 수행의 본질과 화두 내용.

작성자 수련원
작성일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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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계와 아귀계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불교, 우주, 윤회에 대한 가르침
 축생계와 아귀계
 

 
 "얼마 전에 육도 세계 중에서 아수라 계 까지만 관찰하였다. 나머지 세계도 관찰하도록 하자. 마음의 띠를 풀어 해치고 걸림 없는 자리를 주시하여라. 주변의 모든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두어라. 보고 듣는 모든 것을 내버려두는 것이다. 그리고 일상 생활 속에서 흔히 접 할 수 없는 축생계를 보아라. 힘들이지 않고 확연히 볼 수 있을 것이다."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조용히 전설 속의 신비한 세계인 {용의 세계와, 금시조의 세계}를 관찰하였다.
 
 "용이, 사는 거주지에서부터 수명, 그리고 생활 방식, 또는 특이한 것이 있다면 보이고 느끼는 대로 말해 봐라."
 
 용은 화생, 그리고 태생, 또는 난생, 습생으로 몸을 받아 태어납니다. 몸을 받는 모습이 다르듯이 사는 주 처도 조금씩 다릅니다.
 깊은 대해의 바다 속에 사갈라 용왕의 거소가 있습니다. 바다라 하지만 우리가 알고 보는 그런 바다는 아닙니다.
 장엄하기 이를 데 없으며 업이 다른 자가 볼 때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단다.' 그 바다는 향수해라 하는데, 우리가 속한 한 세계의 공통된 바다다. 이 세계 중생들의 업력에 의하여 펼쳐진 파동의 바다 다. 따라서 모양은 둥근 원과 같다. 그 속에 큰 용왕이 살고 있는 것이다.
 
 "그 바다의 크기는 우리 지구의 바다와 비교해서 어떠냐?"
 "아예 비교 할 수조차도 없습니다."
  "또 다른 용들은 어떠냐?"
 "또 다른 바다나 물, 그리고 허공 중에 사는 용들도 있고  땅에 거주하는 용들도 있습니다.  난생, 습생의 용들과 같이 나무 위에 거주하는 용들도 있습니다. 나무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고 알고 있는 그런 나무들은 아닙니다. 용들의 눈에만 보이는 장대한 신비한 나무들입니다."
 "수명은 어떤가?"
 "이들의 수명은 장구하여 우리 인간들의 세상이 한번 증감이 있을 정도의 오랜 세월동안 죽지 않고 삽니다. 생활하는 처소도 그들의 업으로 볼 때는 매우 화려하고 장엄합니다."
 "그들은 왜 용의 몸을 받는가?"
 "용들은 전생에 깊은 선정을 닦아서 흔들림이 없고 지혜도 매우 밝습니다. 전생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용의 마음과 용들의 선정을 익혔고, 용의 세계에 호감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용의 몸을 완성하고 태어나게 됩니다."
 
 "용들의 편리한 점과 불편한 점을 이야기해 보아라."
 "용들은 전생에 닦는 힘으로 매우 오래 살고 궁전도 화려하고 몸들이 장대합니다. 그리고 신통히 자재 합니다. 불편한 점이라 하면. 항상 비린내나는 음식을 먹어야 하는 것. 평상시는 다른 모습으로 있을 수 있지만 남녀간의 교접 시는 용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야만 교접이 성립되는 것. 등 비늘에 모래가 박혀 있어서 종종 심하게 아픈 것입니다. 결정적인 것은 {상극인 금시조}의 침노를 받는 것입니다."
 "금시조의 침노는 어떻게  받느냐?"
 "금시조는 칼날 같은 입과 혀를 가진 새의 모습을 한 신령한 영조입니다. 용들도 이 새의 위력 앞에는 어쩔 수 없이 잡아먹히고 피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평원에서 사자가 누 떼를 골라 가면서 잡아먹듯이, 속수무책으로 잡아 먹입니다."
 "그래도 예외가 있을 것이니 살펴보아라."
 "그렇습니다. 진리의 법을 받은 용들은 잡아먹지 못합니다. 큰 위력을 가진 사갈 용왕이나 난타 용왕, 그리고 발난타 용왕 그 외에도 큰 용왕들은 다 잡아 먹지 못합니다. 그리고 작은 용들이라도 진리로 무장한 용들은 잡아먹히지 않습니다."



'그렇다.' 용이 비록 큰 힘을 가지고는 있으나 전생의 업연으로 인해서 금시조의 밥이 된다.
 밝은 법을 닦으면 전생의 연이 소멸하므로 금시조도 결코 용을 잡아먹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장대한 용들도 또한 잡아먹을 수가 없다.
 물이 불을 이길 수 있다해도 큰불을 작은 물이 이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용이란 인간의 입장에서 보면 환영의 동물이요 영물이다. 그러나 서로 경계가 다르면 있어도 있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없지도 아니한 것이 환영의 세계다.
 
 "이번에는 아귀 세계의 모양을 이야기해 보아라."
 
 경안은, 스승님의 말씀 따라서 아귀의 세계를  관찰해 보았다.
 
 "왜! 아귀라는 명칭이 붙었겠느냐?"
 "아귀라는 호칭은 굶주린 귀신이라는 뜻입니다. 아귀라는 명칭은 탐욕 심의 대명사입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식탐이 대단합니다. 그러므로 악근이 치성하게 타올라서 어떤 음식을 먹어도 불로 변하고 맙니다."
 "아귀가 사는 세상의 위치부터 말해 보아라."
 "아귀는 대체적으로 향수해 의 아래쪽에 거소를 정하고 있습니다.   아귀 중 가장 극중한 아귀는 입은 바늘구멍만 하는데, 배는 태산 같습니다. 모습이 그야 말로 흉측하기 이를 대 없습니다."
 "왜! 그런 모습으로 태어났겠느냐?"
 "언제나 잠시라도 먹는 생각만 있었고 다른 생각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탐욕으로 한 생을 다 보낸 결과이고 그 생각이 사무치고 사무쳐서 오늘날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것입니다. 마음이 사악해서 공덕이라고는 조금도 짓지를 안 했습니다. 그래서 아귀가 되어서 한없는 세월을 물 한목음 먹지 못하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주변에 물이 없느냐?"
 "아닙니다.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업은 전혀 먹을 수가 없습니다."
 "왜 그라느냐?"
 "마음의 욕심이 불이 되어 타오릅니다. 그런 까닭에 무엇을 먹어도 뜨거운 쇳물로 변해 버리는 것입니다. 먹었다 하면 입부터 시작하여 몸속의 오장이 다 타 버립니다. 이러한 고통이 끝없이 이어집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이 물이나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
 "마음의 욕심을 잠시나마 버리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러면 음식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의 수명은 어떤가?"
 "너무나 길어서 용들의 수명보다도 한없이 깁니다. 인간의 시간으로 계산하기 어려울 지경입니다."
 "또 다른 아귀를 살펴보아라."
 "특색 있는 아귀가 있습니다. 남근과 여근이 두개 세 개씩 달리고 어떤 아귀는 더 많이 달려 있습니다. 눈과 귀는 앞뒤로 사방에 불었고 팔도 여러 개입니다. 피부는 문어의 피부와 같습니다."
 "그들은 지금 무얼 하느냐?"
 "지금 교접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잠깐씩만 휴식을 취하고 평생을 남녀간에 교접만 하고 있습니다. 휴식을 취할 때는 한없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합니다. 그런데도 곧장 다시 성행위를 하고 끝나면 또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것이 계속 반복이 되는군요."
 "그들은 전생에 어떠한 업을 지었는가 보아라."
 "이들은 전생에 오로지 성만 탐닉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남몰래 비정상적인 행위를 익힌 까닭에 경계하느라고 애를 썼었습니다. 그 결과 눈도 여러 개요 물건도 여러 개가 된 것입니다."
 "그럼 너는 저들의 쾌락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합해 보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 따라서 한쪽의 몸에 합일하여 보았다.
 과연 대단하였다. 인간의 절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몸과 마음이 물들지 않도록 하면서 그 정도를 측정만 해 보았다.
 
 "스님, 이들은 아무런 음식도 먹지를 않습니다. 그런데도 죽지를 않는데 무슨 까닭입니까?"
 "그들은 안 먹어도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 왜냐 하면 업식으로 음식을 삼는데 성 교접 자체가 음식인 샘이다. 따로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도 죽지를 않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 앞서서 음식을 못 먹어서 고통받는 아귀는 음식을 못 먹는 그 자체가 음식인 샘이다. 너는 그들 앞에 몸을 나타내어라. 그리고 그들이 물을 마시게 해 봐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몸을 크게 장엄하여 천천히 아귀들의 면전에 몸을 나타내었다.
 아귀들은 괴상한 소리들을 지르면서 경안의 주위에 모여들었다. 경안은 바가지에 물을 담아서 아귀들에게 건네주자 처음에는 받으려 하지 않았다. 한 아귀가 조심스럽게 받아 들고 바가지를 입에 대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입에 가까이 가기만 했는데도 불길이 오르고 끓는 쇳물로 화하여 버리는 것이었다.
 아귀들은 화를 내고 또 한편으로는 물을 먹을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하소연을 하는 것이었다.
 
 "저의 힘으로는 안 되는가 봅니다."
 "그렇지 않다. 너는 자비로운 마음으로,'맑고 시원한 물을 관하면서' 아귀에게 주어야 한다. 사물은 마음먹기에 따라서 변천한다는 것을 명심해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너의 마음 속의 홀연히 한 의심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너의 행위에 확신을 가져라. 다시 한번 해 보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이 그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금방 알 수 있었다. 다시 물을 건네주었다.
 그러자 아귀가 의심 없이 받아 들었다. 그리고 물을 시원하게 잘 마시는 것이었다.



 "스님, 아귀들이 항상 스스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입니까?"
 "내 말대로 해 보아라. 환영으로 아귀들을 여러 명 화현 시켜라. 그리고 그들이 물을 마시는 것을 보여 주어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여러 아귀들을 화현으로 만들었다. 화현의 아귀들은 물가에서 즐겁게 물을 마시었다.
 이것을 구경하는 아귀들은 처음 보는 일인지라 정말 희유하게 생각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럴 수가 있을까! 저런 일이 우리에게도 가능할까! 우리도 저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귀들은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었다.
 
 "저들에게, '너희들도 물을 마실 수 있다. 고' 말해 주어라. 그리고 마음의 탐욕 심을 버리면 물도 마실 수 있고 아귀의 몸도 버릴 수 있다고 해라. 아귀들이 잠시나마 기갈을 면하게 되면 너의 말을 경청할 것이다."
 
 경안이, 그들에게 물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다.
 화현 한 아귀들도 덩달아서 걱정하지 말고 물을 마셔 보라고 권했다.
 기존, 아귀들은 환희 하는 마음을 내여서 일제히 물을 향해 달려가서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과연! 물은 불로 변하지를 않았다.
 
 경안은, 그들이 물을 다 마시고 나자 마음의 탐욕에 대해 말해 주었다.
 전생으로 비롯된 급하고 갈구하는 마음 때문에 심화가 발동해서  물이나 음식이 불로 변화는 이치를 이야기해 주었다.
 아귀의 몸도. 물도 불도 실재하지 않는다고 설법했다.
 경안은, 스님의 위신력 속에서 아귀들에게 마음의 조작이 어떤 것인가를 설법하여 주었다. 그러자 아귀들은 숙연하면서도 기쁜 마음을 내고 지난날을 뉘우치고 아귀의 몸을 벗어버리는 자도 있었다. 그러나 대다수는 잠시나마 환히 하는 마음을 낸 결과 몸의 기갈과 고통을 면할 수 있었다.
 
 "스님, 잠시 몇 마디로 아귀의 몸을 벗어버리는 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귀들은 기갈을 면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의 몇 마디를 듣고 아귀의 몸을 버린 자는 전생에 춥고 배고픈 시절을 겪으면서, 그것이 베풀지 않은 까닭인줄을 모르고 더욱더 탐욕 심을 내었으므로 아귀의 몸을 받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선근이 있어서 한때나마 착한 마음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   무엇인가 하면 절에 가서 시주를 하고 별 신심 없이 대충 이지만 형식적으로 설법을 듣고 온 적이 있었다. 그 인연으로 오늘날 너의 가벼운 설법을 듣고도 마음이 환히용약 하여 아귀의 몸을 버리게 된 것이다.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인간의 몸으로 돌아가 태어날 것이다. 그러나 태어난다 하더라도 고생이 심하고 의식주가 부족할 것이다.
 그리고 다른 아귀들은 너무 업장이 무거워 겨우 기갈을 면하는 정도에 그쳤다.
 당분간은 스스로 물을 먹을 수 있을 것이지만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다시 탐욕 심히 일어나서 물을 먹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오늘의 인연으로 아귀 보를 더 빨리 벗어날 수는 있을 것이다.
 
 물이 바다에 한없이 가득하여도 진정한 물이란 없다. 해당되는 업을 가진 중생들의 눈에만 바닷물로 보인다.
 아귀들의 눈에는 흐르는 물도 불로 보일 뿐이다.
 본래 물이란 것이 고정적으로 존재한다면 아귀의 눈에도 여전히 물로 보여야 할 것이지만. 마음 따라 존재하기 때문에 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업이 좀더 가벼운 아귀들은 물로 보이나 마시려고 하면 불로 변해 버린다. 나머지 아귀들은 본래부터 아예 불로 보인다.
 아귀 몸이라 해도 근본이 아귀는 아니다.
 아귀의 몸은, 그들의 마음이 만들어 낸 헛된 상에 불과하다. 그 마음이 뿌리부터 바뀌어 변한다면 모습은 즉시 변해 보일 것이다. 너의 마음에 아귀의 모습이 비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을 읽어서 네 마음의 합작으로 보이는 것이다. 실재적인 아귀의 모양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자기 마음으로 자기 모습을 만들고 스스로 그 모습을 보는 것이다. 상대적인 모습도 상대의 마음에 의한 모습을 비추어 읽은 것이다.
 그 흉측한 아귀의 몸도 마음 따라서 나타난다. 그들의 마음이 변  하면 몸의 모습도 변한다. 그래서 한마음의 변화로 물도 먹을 수 있고 몸을 버릴 수도 있었다.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이 성을 내면 얼굴이 험악해지지 않더냐? 혹은 슬퍼서 눈물을 흘리거나 놀라서 공포에 질려 있는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한마음 따라서 여러 모양이 나타난다.
 그렇다고 짧은 시간에 갑자기 알아 불수 없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몇 년을 두고 보면 몰라보게 변할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전혀 터무니없이 변하지는 않는다.
 한 생을 마감하고 죽어서 새로운 몸을 받기 전이라면 그때는 다르다. 이때는 잠재의식과 현재의식의 방향 따라서 몸이 자유 자재로 변해 버린다. 이때가 가장 변모가 극심할 때다.
 다시 몸을 받으면 그 어떤 모양으로 안정이 돼서 잘 변치 않는다.
 
 아귀, 지옥, 이라도 좋은 인연이 있다면 부처님이나 선지식의 인도를 받아서 구원받을 수가 있다.
 지옥이나 아귀계의 중생들은 '천상과는 달리 역으로 현재의식이, 잠재의식을 압도한다.' 눈앞의 고통만 극심하게 느껴지고 작용할 뿐. 희망이라든지 과거의 선근이라든지 다른 차원의 마음은 깊이 잠들어 있다. 그 까닭에 마음은 칠흑과 같이 어둡다고 말할 수가 있다.
 그래서 구원을 받으려면 선근이 있어야만 한다. 부처님이나 선지식의 은혜를 입어야 만이 속히 구원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큰 선근이 없으면 부처님 법을 만 나기 어렵다.
 왜, 그럴까? 부처님의 자비는 우주에 두루 하고 상주하지 않는 곳이 없건만!  
 왜! 구제를 하고 받을 수 있을까?
 업이란 허공의 발자국이요, 토끼 뿔과 같기 때문이다.
 
 "이제는 아귀들과 다른 {귀계}를 관찰해 보아라."
 
 모양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그 중에는 인간과 같은 모양을 유지하면서 매우 배고픈 귀들이 있습니다.
 인간계와 가까운 곳에 머물면서 음식을 구하여 먹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밤낮으로 먹어도 배를 채울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포식을 하여도 잠깐이면 배가 곧 꺼지고 마는 걸귀 인 것입니다. 아귀의 종류이긴 하나 인간의 모습을 아주 잃지는 않고 있습니다.



 그 와는 다른, 신령한 '선취' 중에는 명산을 집으로 삼고 사는 신령이나 큰물이나 적은 물을 집으로 삼고 사는 신령 등 산하 대지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그들의 복력도 저마다 차이가 나고 수명도 일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용모도 차이가 많이 납니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한이 없는 것 같습니다.



 "스님, 걸귀는 왜, 먹고 먹어도 배가 고플까요?"
 
 본래 배고플 배가 어디 있고 먹는다면 무엇을 먹겠는가?
 그 까닭은 식탐과 기타 탐욕 심으로 마음의 천진 성품을 장애 하기 때문이다. 치성한 욕심이 몸을 이루어서 먹고 또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는 것이다. 음식을 먹으면 마치 허공에 던져 넣은 것 같다. 흔적도 없고 기운이 나지를 않기에 또다시 먹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항상 굶주림의 고통이 떠나지를 않는다.



 "스님, 그들이 배가 부르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먹어도 먹지 않는 이치를 알면 될 것이다. 배고프다는 한 생각이 불현듯 잃어나면 배고픈 곳으로 향하여 정면으로 파고 들어가야 만 한다.
 이토록 어디서 배가 고픈지 끝없이 마음을 부여잡고 정면 대결을 벌이면 홀연히 몸도 마음도 없는 이치를 알고 배고픔의 노예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이것은 아주 배고픔을 벗어 날수 있는 방법이지만 용맹스러운 마음과 어느 정도 선근이 없으면 안 되는 방법이다.
 또 부처님이나 성인의 가르침을 믿고 귀의해서 마음에 욕심을 조금이라도 버리면 된다. 욕심을 버리지 못했더라도 성인의 가르침을 귀에 스치기만 한다 해도 그 인연으로 잠시나마 배고픔을 면하게 된다.
 믿음이 깊어지면 종래는 귀의 몸도 벗어버릴 수가 있다.
 그리고 그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지성으로 경전을 독송하고 선한 마음을 내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이익을 주고 기쁘게 하는 행위를 하면, 그 영향이 귀에게 미친다. 복이 증가하므로 배고픔을 면할 수 있다.
 왜냐 하면 업은 무상하기에 그렇다.
 오로지 허망한 한 생각일 뿐 실재하지는 않는다.
 
 "스님 또 다른 귀의 실체를 말씀해 주십시오."
 
 그 뿐만 아니라 나무나 동물 그리고 사람에게 의탁하여 사는 귀가 있다.
 자기와 전생에 가족이었든 아니면 친구, 이웃, 때로는 원수와 같은 사이일 지라도 인연이 있으면 의탁한다. 이를 일러서 접신 되었다고 말을 한다.
 친하여 의탁하는 때도 있지만 원한 관계로 의탁 할 때도 있는 것이다.
 
 "스님, 그렇다 하드라도 특별한 그 무엇이 있어야 접신이 될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음의 상태가 중요하고 거기에 인연이 중요하다. 그리고 접신이 되는 근본원인은 욕심 때문이다.
 마음이 고요하고 힘있게 안정이 된 사람은 접신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가라 않고 비어 있을 때나, 그리고 마음이 맑기만 할 때도 접신이 될 수 있다.
 이때의 접신은 매우 선한 행위를 좋아한다.
 아는 소리를 하고 병을 고쳐 주거나 주변에 이익도 주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스스로 계시를 받았다고 믿거나 부처님의 가피를 입었다고 생각한다. 그 까닭에, 접신이 되었는지 본인도 잘 모른다. 또한 주변에서도 잘 알 수가 없다.
 도를 논하고 아름다운 말을 곧잘 하고 성스러운 행위를 보여주는 접신도 있어서 눈밝은 선지식만이 진위를 알 수가 있다. 왜냐하면 아는 소리를 한다고 다 접신이 되었다고 말 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깨달은 자의 행위는 앉으나 서나 바름으로 돌아가지만 깨닫지 못한 자의 행위는 설령 바르다 할지라도 삿된 것이 되기 쉽다.
 사람이 허하여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져 있을 때, 그와 인연이 비슷한 상태의 귀를 만나면 접신이 되기 쉽다.
 마음이 악하면 악한 귀와 접신이 되고,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귀와 접신이 된다.
 욕심이 특히 많으면 욕심이 많은 귀와 접신이 되게 되는 것이다.
 마음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 병든 귀와 접신이 되면, 병이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음욕이 많은 사람이 매양 음욕을 생각하면 음귀와 접신이 되어서 진기가 다 고갈 될 때까지 성을 탐닉하게된다.
 또 제법 길흉을 판단하면서 아는 척하는 접신도 있고 그 종류를 다 말하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허 하여도 접신이 되고 너무 지나치게 정기가 많아도 접신이 되는 예가 있다.
 종교를 믿는 이들이 광적으로 종교를 믿으면 또한 접신이 될 수도 있다.
 접신이 될 때는 그가 바라는 방향대로 성스러운 모습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기 때문에, 접신이 된 줄은 아득히 모르고 오히려 착각해서 기뻐하게 된다. 곧, 은혜를 받거나 가피를 입은 줄 착각을 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적절하고 성스러운 마음을 가질 때는 은혜를 받고 가피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 
 
 "스님, 접신의 근본 원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마음의 파동이 같을 때 접신이 되는 것이다.
 인연이 같고 파동이 일치되지 않는 다면 객관적인 상대가 있는 접신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선한 욕심이든 악한 욕심이든 지나치면 접신이 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는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 아주 지나칠 때만 있는 현상이다.
 접신 자체가 대상이 있는 것도 있겠지만 근본으로 들어가 보면 자기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상대가 실재로 있어서 접신이 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상대가 있는 접신이라도 상대가 곧 나와 둘이 아니다. 접신이라는 것도 근원을 알고 보면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허망한 생각일 뿐이다.
 
 "접신이 되면 치료하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마음의 집착을 버리는 것이 근간을 이룬다. 그리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즐거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더 나아가서 마음의 공부를 해야 한다. 훌륭한 선지식이 있으면 더욱 좋고 없다면 부처님의 성스러운 경전을 수 없이 독송하면 좋다. 집착이 많거나 마음이 잘거나 약한 사람, 그리고 투기 질투가 많은 사람은 반야부 경전이나 조사 스님들의 어록을 읽어야 된다.
 그리고 행동이 거칠거나 안하무인 인 사람은 법화경이나 아함경을 읽으면 좋다.
 또 할 수만 있다면 참선 정진을 하면 매우 좋다.
 다른 방법이 하나 있으니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마음으로 깊이 생각}하면서 염불을 하는 것이다.
 접신의 병통이 뿌리가 깊어서 심각한 경우는 격리 치료를 받아야 된다. 몸의 차고 더움을 조정하여 주어서 치료할 수 있다. 여기에다 적절한 약을 배합하여 치료를 할 수 있다. 흔히 약으로는 안 된다고 알고 있지만 약을 적당히 쓰고 환경을 적절하게 바꾸어 주면 좋은 치료가 된다.
 이 방법은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자.
 또 다른 방법으로는 절에서 천도 제를 지내 주는 것이다. 이것도 다음 기회에 말하기로 하자.
 
 "스님, 다음은 묘나 사당, 그리고 나무에 의지하여 집을 삼고 사는 귀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묘에 의지해서 사는 귀는.
 살아 생전에 묘에 의탁해 살게 된다고 굳게 믿고 죽으면 묘귀가 된다. 단, 인간으로  환생 할 은원이 없어야 한다. 또 축생으로 태어나야할 우치 함도 박복함도 없어야 한다.
 
(망상의 세계를 확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실재로 있다. 없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염려된다.)
 
 "스님, 선취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대체적으로 큰 곳의 주인은 전생에 사람으로 있을 떼 선한 행을 한 자들이다. 또 지혜가 있거나 한 사람이 죽어서 자기의 취향대로 산신이나 수신, 그리고 유명한 곳의 신이 되기 때문이다.
 이들도 묘귀처럼 전생의 잘못된 견해와 집착으로 이러한 몸을 받기가 쉽다. 특징이라면 복과 지혜 또는 위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취가 인간의 길흉 사를 알아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도 인연 따라서 몸을 받은 것일 뿐이다.
 우리 주변에 산이든 나무 그리고 바위 사람 어떠한 물건이라도 정신의 파동이 발산되고 있다. 이것은 곧 신령한 것이요 모양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령하지 않는 것은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형상화해서 무슨 신이다. 하고 말을 붙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잠재의식이 활발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마음을 내서 보면 신령한 움직임을 형상화 해 볼 수가 있다.
 그들의 눈에는 산신령으로도 보이고 수신으로도 보이는 등 모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여기서 알아야 한다.
 모양은 신령함이며 신령함은 마음의 조작이다. 곧 신이니 뭐니 하는 것이 마음의 조작이다.
 깊은 의식에서 없다면 없는 것이지만 있다고 보면 있는 것이다. 신령한 신령이 결국은 자기 마음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있든 없든 마음을 쓸 일이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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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복한 인성, 2. 금강경강의, 3. 증도가강의, 4. 법성게강의, 5. 냉온조절건강법, 6. 수행의본질과화두. 7. 비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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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생계와 아귀계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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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과 탄생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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