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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윤회

벽공스님 저술 = 수행의 본질과 화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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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윤회, - 불교, 윤회,
작성자 수련원
작성일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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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법문,어록,경전강의,


지옥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불교, 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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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옥 의 인연

 

 경안아, 이번에는 지옥의 세계를 관찰해 보자, 과연 지옥의 인연이 무엇인지! 너는 지옥을 관찰함에 있어서 먼저 몇 가지 알아야 한다. 지옥 불의 위용은 수 천리 밖에서도 모든 생명을 불태워 버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몸에 화기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지옥 중생의 모습은 너무도 참혹해서 직접 보면 놀라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마음의 타격을 입지 않게 해야 한다.
 지옥의 독기는 지독해서 눈이 멀어 버릴 수도 있다.
 또 하나 조심해야 할 것은 거센 바람이다. 그 거센 바람은 천하를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칼날 같은 위력을 가지고 있다. 그 바람은 성질이 차거나 뜨겁고 너무나 거세다.
 그러나 모든 지옥의 모습은 허공의 꽃과 같다. 성품의 바다에서 일어나는 신기루다.
 장검으로 허공을 가름과 같다.
 다만 고요함 속에서 마음을 일으켜서 조용히 보아라. 춥고 덥고 또는 참혹한 모습을 묵묵히 보아라. 별탈 없이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몸과 마음에 어떠한 영향도 입지 않으면서도 느낄 수가 있다. 춥고 뜨거움도 한낱 마음인줄 알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몸과 정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지옥의 모습을 관찰했다.
 
 "위치부터 이야기해 보아라."
 
 향수해가 있고 향수해 밑으로 아귀계가 있으며 그 밑에 중심으로 무간지옥을 위시한 8대 지옥이 있습니다. 다시 각 지옥마다 16지옥이 그 둘레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밖에 수많은 지옥들이 밖을 싸고 있습니다.
 무간지옥을 중심으로 철위산 속에 싸여 있으며 밖으로 대 철위산이 다시 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밖으로 금강산이 싸고 있으며 아귀와 지옥의 경계 사이를 다시 금강산이 싸고 있습니다.
 또한 향수해가 있고 대 금강산이 있으며  좌우 앞 뒤 그리고 아래쪽으로 겹겹이 다른 산들이 싸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리가 있고 처소가 실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 다른 세계로 우리의 생각 중에 존재합니다. 그런데도 미묘하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각의 차원이 바뀌면 즉시 지옥의 위용을 보고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결코 멀리 찾아가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차원이란 거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시간도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우주의 모습일 뿐입니다.  
 
 "경안아, 향수해와 금강산 그리고 철위산의 본질을 설명해 보아라."
 
 향수해 는 광대해서 그 크기를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향수해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바다와 같은 개념은 아닙니다. 한 세계의 중생들의 업력으로 발산되는 파동의 힘에 의해 만들어진 지수화풍, 사대 중의 수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한 세계 중}의 각 천상으로부터 지옥까지 합으로 이루어진 물의 층입니다.
 그리고 금강산은 지옥과 다른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층으로 커다란 원의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이 또한 중생들의 업의 힘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지대 곧 '땅의 층'입니다.
 철위산은 지옥 중생들의 업에 의하여 이루어진 지대, 땅의 층이며 지옥은 풍대. 화대. 수대. 지대가 고루 합해진 모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러한 것은 중생들의 마음의 세계가 형상화 된 것이며 우리의 몸의 구조를 나타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도 천상의 마음부터 지옥의 마음까지 고루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표면에 나타난 마음이 각자 다릅니다.
 몸 또한 천상으로부터 지옥까지 구성 요소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밖으로 나타나고 혹은 숨고 또는 조화를 이루고 하는 것이 차이가 납니다.
 우리 마음의 구조와 몸의 구조는 우주의 구조와 동일합니다.
 지옥 도, 천상과 같이 결국 우리의 생각이 형상화 된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 지옥과 같은 인생살이를 하고 있다면 이 지옥도 덩달아 싹이 트고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경안아, 8대 지옥부터 차례로 살펴라."


 경안이, 하나의 지옥을 살펴보니 이 지옥의 중생들은 온몸은 푸르고 검으며 입은 길게 찢어지고 눈은 피를 흘리는 듯 하여 차마 바라 볼 수가 없었다.
 날카로운 긴 쇠 손톱이 나서 과연 무시무시한데, 만나는 중생끼리 성을 내어 손톱으로 할퀴면 살점이 떨어지고 가죽이 벗겨졌다.
 이미 죽었는가 할 때 찬바람이 불어와 몸에 닿으면 다시 살아난다. '그러면 나는 살았구나. 하고' 생각한다.
 이 지옥의 중생들이 사나운 마음을 내면 칼이나 창이 저절로 손에 잡힌다. 그러면 칼을 휘둘러 상대의 몸을 찌르고 껍질을 벗긴다.
 이러한 행위가 한없는 세월을 두고 이루어진다. 그 고통은 필설로 형용 할 수가 없었다.
 그 잔인함과 참혹함을 눈뜨고는 볼 수가 없다. 소박한 인간들은 보기만 하여도 목숨이 위태롭다.
 경안은, 스님이 시킨 대로 접근하여 보았다.
 뻗치는 살기는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휘두른 칼날에 스치기만 하여도 온몸이 처절할 정도로 전율했다.
 경안은, 마음으로 그 정도를 가늠하되, 몸과 마음을 마하 상태로 유지하여 실질적인 충격은 느끼지 않도록 조절을 했다.



 스님께서는 이 지옥을 상 지옥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지옥의 인연을 말씀하셨다.


 이 지옥 중생들의 눈앞에 전개되는 것은 그들의 마음이 형상화 된 것이다. 전생에 끝없이 마음으로 남을 해치려 하고 몸으로 실천에 옮겼다. 더불어 입으로 한없는 악담을 밤낮으로 행하여 그 마음이100% 극에 이르면 결국 이 지옥에서 업보를 받는다.
 전생에 많은 사람들이 먹는 음식 속에 조그만 이익을 위하여 독한 약을 첨가하여 모양을 내거나, 이곳 저곳 가지가지 용도에 각종 약품을 사용하여 많은 사람들을 병들게 하면 이 같은 과보가 기다린다. 그 행위를 평생동안 해서 100% 극에 이르면 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악한 생각을 하면 악한 꿈을 꾸듯이} 악한 마음의 뿌리가 다할 때까지 이 지옥을 벗어나지 못한다.
 막는 자도 없고 오라는 자도 없지만  스스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경안은, 다시 그들의 미래를 살펴보았다.
 이 상 지옥에서 나온 자들은 살길을 찾아서 다른 곳에 이르지만 업보가 끝나지 않아서 다시 흑사 지옥에 이른다.
 이 흑사 지옥은 온통 뜨거운 바람이 몰아친다. 이 불같은 바람이 뜨거운 모래를 몰아 와서, 몸에 붙으면 몸은 마치 검은 구름처럼 검어지고 가죽을 태우고 뼈에까지 이른다. 몸 가운데서 사나운 불길이 일어나서 다시 온몸을 태운다. 이 불길은 몸을 태우고 굽고 그을리고 터지게 한다. 그러나 죽지는 않는다.
 이 지옥의 생명은 업식으로 유지된다.
 음식 자체도 업식으로 음식을 삼는다.
 그러므로 이 지옥의 고통 자체가 생명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유지하는 에너지원이 된다.
 그래서 지옥 중생들의 생명은 어떠한 고통이 있더라도 죽지는 않는다. 다만 그 업보가 끝나야만 생명이 다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상 지옥의 16소 지옥도 고통받는 내용이 각각 다르다.
 무한한 세월을 두고 상지옥 안의 16 소 지옥을 두루 돌아다니면서 한없는 고통을 받는다. 그 업보가 다하면 또 다른 곳에 몸을 받게 된다.



 8대 지옥 중의 하나인 흑승 지옥을 살펴보았다.
 흑승 지옥의 큰 지옥에는 16의 작은 지옥이 둘러싸고 있었다.
 왜, 흑승 지옥이라고 할까?
 흑승 지옥의 옥졸들은 이곳에 온 죄인의 몸을 곧게 펴서 누인 다음, 쇠줄을 퉁기고 그 죄인의 몸을 쪼개고 쪼개어서 백 천가지 실과 같은 단을 만든다.
 그러나 죄인은 죽을 수가 없으니 업보가 다 하지 않은 까닭이다.
 또다시 옥졸은 뜨겁게 달구어진 쇠줄을 죄인의 몸 위에 놓고 가죽을 태우고 뼈와 살을 찌고 골수까지 끓인다.
 때로는 쇠줄 옷을 입히고 온몸을 지지고 볶아서 태운다. 벌겋게 달구어진 쇠줄을 여기 저기 처 놓고 죄인을 그 곳으로 지나가게 하면 뼈와 살이 타는 고통이 한량없다. 그래도 죽지도 않고 구호도 받을 수가 없으니. 왜냐 하면 숙세의 성내는 마음의 뿌리가 다 할 때까지는 이 지옥을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흑승 지옥의 과보가 다하면 그에 딸린 한빙 지옥이나 흑사 지옥으로 간다.
 
 스님께서 이 지옥의 인연을 말씀하셨다.
 전생에 허물을 말하기를 좋아하고 성내는 마음으로 상대를 비방하여 마음 아프게 하는 일이 다반사고 높은 지위에 있을 때 함부로 선악을 판단하여 다른 사람 처벌하기를 능사로 삼으면. 이 지옥에 날 인연이 된다. 미워하는 마음과 비방하는 행위가 잠시 잠깐이 아닌 평생 100% 극에 이르면 업보를 면키 어렵다. 
 부처님이나 스승, 그리고 부모에게 악한 마음을 내고 악한 행을 하면, 또한 이 지옥의 연이 된다. 그 행위가 평생동안 계속되어 증오하는 마음이 100% 극을 이루면 이곳에 나게 된다.
 눈앞의 참혹한 광경이나 사납고 냉혹한 옥졸들은 다 전생으로부터 넘어온 자기 마음의 상태를 나타내 주는 모양들이다.
 마음의 성품에는 선도 악도 없고 주는 자도 받는 자도 없다. 그렇지만 성내는 악심이 밝은 심성을 가리어 버리면 지옥이 눈앞에 다가온다. 악업이 다할 때까지, 고통은 한량이 없는 것이다.



 이 지옥의 모습이 어찌 새삼스럽겠느냐?
 인간이 잔혹해서 동물들을 때리고 찔러 죽여서 포를 뜨고 일정하게 자르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다. 사람도 고문을 할 때는 비틀고 지지고 때리고 하는 것을 다반사로 한다.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전쟁도 아닌데 호승심이나 영토를 탐하는 욕심으로 전쟁을 일으켜서 아군과 적군을 수 없이 죽게 한다.
 지옥이 그렇게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다.
 다만 지옥은 그 고통이 수 천만배 수 억 배가되는 것이 다르고,  과보를 받는 기간도 한량없다.
 
 경안은, 다음으로 퇴압 지옥을 살펴보았다.
 퇴압의 큰 지옥에는 16의 소 지옥들이 외어 싸고 있었다.
 이곳에는 죄인을 가운데 두고 양쪽의 산이 다가와 자루에 넣은 물건을 짜듯이 눌러서 짠다.
 뼈와 살이 터지고 짓이겨 져서 피와 더불어서 낭자해진다. 그러면 산은 다시 원래의 있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쇠로 된 코끼리와 같은 여러 사나운 동물들이 나타난다. 죄인의 몸을 짓밟아서 뼈를 으깨고 살을 흩어서 피와 고름이 흐르게 한다.
 다시 옥졸들은 커다란 맷돌에 죄인을 집어넣어서 뼈와 살을 갈아낸다. 핏물이 되어 흐르게 한다. 큰 돌 위에 눕히고 다시 큰돌을 눌러 가지고 피와 고름을 짜낸다.
  때로는 죄인을 쇠 절구에 넣고 머리부터 발까지 찧는다. 피범벅을 만든다. 죄인은 한량없는 고통 속에서도 죽지는 않는다.
 왜냐 하면 과보가 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님께서 말씀 하셨다.
 전생에 마음으로나 행동으로 인간이나 동물을 가리지 않고 사나운 마음으로 죽이고 짓이기고 한 과보가 그와 같다. 수많은 사람들이나 동물들을 몰살시키고 압사시킨 행위가 극에 이르러 이 지옥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증오심으로 함부로 사람들이나 기타 생명들을 무참하게 살해하거나 폭탄으로 건물을 폭파하여 생명을 대량으로 죽이는 것 등, 이러한 못된 행위가 지나치면 이 지옥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오로지 욕심과 성냄 그리고 잘못 알고 있는 어리석음이 바탕이 된다.
 평생 동안 자비심이 없이 잔혹한 행위를 일삼으면 결국은 지옥의 업이 된다.
 단 한순간 악한 마음을 내어도 좋지 않는 결과가 있거늘 평생을 되풀이한다면 지옥을 면할 수가 없다.
 이것은 종교를 믿든 안 믿든 상관이 없으며 동물이든 사람이든 예외가 없다. 지옥 업을 지으면 지옥에 몸을 받는 것이다.
 다만 진리의 말씀을 단 한 구절이라도 귀로 들어 놓거나 실행에 옮겨 본 자라면 그나마 과보가 빨리 끝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지옥의 과보가 끝나는 것은 가히 기약할 수가 없다.
 참으로 죄가 많은 사람이라도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마음으로 깊이 참회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면 이 지옥의 참혹함은 면 할 수가 있다. 또 선지식을 만나서 마음을 닦고 진정으로 참괴심을 일으키면 이 지옥의 참혹함은 면 할 수가 있다.
 
 경안은, 다음으로 규환 지옥을 관찰했다.
 왜 규환 지옥이라 하는가 하면 이 지옥에 몸을 받은 죄인들은 뜨거운 가마솥에 삼길 때 울부짖는 소리가 끝없으므로 규환 지옥이라고 한다.
 규환 지옥의 옥졸들은 죄인이 오면 쇠갈고리로 찍어서 들끓는 솥에 집어넣어서 삶는다. 또 번철 위에 죄인을 올려놓고 뒤척이면서 굽고 볶는다. 그래도 죄인은 죽을 수가 없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경안아, 규환 지옥에 오는 죄인은 전생에 자비심이라고는 전혀 없이 폭파하여 사람을 죽이거나 산에 불을 놓아서 동물들을 한없이 태워 죽였다. 뭇 생명들을 굽고 지지고 하는 등 살생을 한 까닭에 이 지옥의 과보가 있는 것이다.
 성내는 마음으로 사납게 살생의 피로 손을 더럽히고 악한 행위를 즐겨 하는 자. 너무 지나쳐서 일상 생활의 전부를 이루고 평생에 되풀이하면 죄업이 100%에 이르러서 이 규환 지옥의 과보가 기다린다.
 규환 지옥의 솥 안의 들끓는 물의 온도는 수천도 수만도 여서 가까이 가기만 해도 익어 터져 버린다. 경안아 너는 마음을 잘 단속하고 끓는 솥에 몸을 담 그어 보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천천히 솥에 접근을 하였다. 가까이 가기도 전에 화기가 온몸을 태울 듯 했다.
 몸과 마음을 허공과 같이 하고 솥에 다가갔다. 가만히 손을 담 그어 보았다. 마음을 마하 상태로 유지해서 몸에 화기의 침해는 없었지만 그 뜨거움의 고통은  느낄 수가 있었다.
 참으로 인간계의 뜨거운 물에 비하여 수만 수십만 배의 뜨거움이었다.
 경안은, 다시 대 규환 지옥을 관찰하였다.
 대 규환 지옥은 규환 지옥의 과보와 비슷한 과보를 받지만 고통이 비할 수 없이 심하여 대 규환이라고 하였다.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랑이란 이름으로 증오를 하고, 투기와 질투로 악한 마음을 내어서 살생을 하는 등 사악함이 극에 달하면 대 규환 지옥이 기다린다. 



 이번에는 소자 지옥을 관찰하였다.
 소자 지옥은 역시 16의 소 지옥을 거느리고 있다. 죄인이 이곳에 이르면 끌어다 놓고 무쇠 성 가운데 넣어 두면 사방에서 뜨거운 불길이 나와서 마치 화장막 속의 불길 같이 죄인을 태우고 볶아서 죄인은 한량없는 고통이 따른다.
 또 무쇠의 방은 불이 붙어서 안이 모두 붉게 달구어져 있다. 죄인은 들들 볶인다. 그 고통이 말로 다 할 수 없지만 죄인은 죽을 수가 없다.
 대 소자 지옥도 소자 지옥처럼 옥졸은 쇠꼬챙이로 죄인을 사정없이 찍어서 불 속에 단단히 매달고 이리저리 돌려서 그 몸을 태우고 굽고 거듭하여 살이 터지게 한다.
 마치 개나 돼지를 매달고 불로 굽듯이! 그러나 죄인은 결코 죽지를 않는다.
 
 경안은, 마지막으로 무간지옥을 관찰하였다.
 무간지옥에도 16의 소 지옥이 있다. 그런데 왜 무간 지옥이라고 하는가?
 무간지옥은, 한량없는 고통이 잠시 잠깐도 끊어지지를 않으므로 무간이라고 한다.
 한 명이 들어가나 억 만 명이 들어가나 가득 차게 보이므로 무간이라 한다.
 지옥의 수명이 참으로 무한하여 헤아릴 수도 없으므로 무간이라고 하며.
 지옥의 불꽃이 빈틈없이 몰아치므로 무간이라고 한다.
 만 번 죽고 만 번 살아나서 절대로 죽을 수 없으므로 무간이라고 한다.
 모든 지옥 중에서도 고통이 제일이고 여기에 몸을 받는 자의 죄도 최고로 극중하기 때문에 무간이라고 한다.
 
 부처님의 탑 사와 경전을 파괴 한자. 법을 비방하여 진리의 근원을 끊어 버린 자.
 깨달은 스승을 해친 자.
 자기가 옳다고 주장을 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패가 갈리고 서로 싸우게 하여 대중의 화합을 깬 자.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죽인 자.
 큰 전쟁을 일으켜서 수많은 사람들을 죽게 만들고 증오하게 만든 자.
 이러한 자들이 몸을 받아서 죄의 과보를 받기 때문에 무간이라고 한다.
 또한 무간지옥의 모양과 고통을 필설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무간이라 고한다.
 경안은, 무간지옥의 모양을 감히 설명할 수도 없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무간지옥에는 오라는 사람도 없고 보내는 사람도 없다. 업이 무르익으면 홀연히 무간지옥에 이르러서 영원한 세월을 보낸다. 참으로 벗어날 기약이 없지만. 그래도 과보가 다 할 때가 있다.
 이 무간지옥에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관된 악한 행위를 했을 때. 진리의 근원을 파괴 할 때. 본인의 근본 뿌리를 해칠 때에 무간 업이 형성된다.
 대 삼재 시에 모든 지옥이 다 비어서 무너질 때라도, 과보가 다 하지 않으면 다른 세계의 무간지옥에 또 몸을 받는다. 그 과보가 다할 때까지 벗어 날수가 없다.
그렇다고 누가, 타방 세계 무간지옥으로 이감을 시키는 주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의 업력 때문에 그런 현상이 일어난다.
 그만큼 무간지옥의 과보는 극중한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가 현생에 무간의 업을 지었다 하더라도, 진심으로 부처님의 거룩한 법에 귀의하면 무간의 과보만큼은 면할 수가 있다.
 진리의 스승에게 귀의하여 본래의 성품을 요달하고 지옥이 실재하지 않음을 깨달으면 무간의 과보는 면할 수가 있다. 강조하자면 무간지옥의 업보는 너무도 극중해서 부처님이나 대 스승의 큰 가피를 입지 않고는 결단코 벗어 날수가 없다.   
 
 (아사세왕이 무지해서 오 무간업을 짓고 두렵고 괴로워하다가 부처님 앞에 참회를 할 때, 부처님이 자비심을 발하여 무상법을 설하셨다. 아사세왕은 숙세의 인연이 깊은지라 문득 깨닫고 지옥 고를 면했다. 마음에 깊은 후회와 절망, 그리고 원한이 곧 허망한 생각의 그림자이고 근본이 없는 이치를 요달한 것이다. 그래서 지옥의 씨앗을 잘라버리고 지옥 고를 면하게 된 것이다. 진정한 참회가 이루어진 것이다.
 참회란 무엇인가.? 눈물 흘리고 잘못을 뉘우치고 후회하는 것이 참회일까! 그것도 참회는 참회지만 진정한 참회는 아니다. 진정한 참회가 되려면 거기다 더하여 상응하는 행을 해야 한다.
 후회하는 마음과 미워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이 모두 허망한 줄 깊이 깨달아 된다. 그리고 양쪽 마음을 다 비워 버리는 것이 진정한 참회가 된다.
 그렇지 않고, 늘 상 후회를 하고 뉘우친다면 하나의 업이 형성이 되어서 과보를 또 불러일으킨다.
 과보는 잘하고 못하고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어느 쪽이든 움직이면 작용할 뿐이다. 마치 수렁에 빠진 발과 같다.)   
 
 "경안아, 너는 무간지옥의 광대한 위용을 잘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처절함도 보았을 것이다. 무간지옥의 죄인 중에 본 마음이 크게 사악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업을 잘못 지어서 고를 받고 있는 중생이 있는지 찾아보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 따라서 가슴이 메어 터지는 듯 한 감정을 흘려 보내면서 관찰하자 바로 한사람이 보였다. 그는 전생에 여자의 몸으로 특별히 다른 나쁜 행위는 하지 않았다. 절에 나름대로 잘 다니면서 가족의 안녕과 복을 빌면서 다니던 여자였다. 열심히 다녔지만, 안타깝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려는 마음은 없었고 오로지 가족의 안위나 생각하고 다녔다.
 부처님의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침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마음은 아예 없었다. 법회 시간에 법문을 듣고 남 따라서 여기 저기 강의도 듣고 하기는 하지만 건성으로 들었다. 참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고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마음도 행위도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여자였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고 알음알이가 생겨서 무언가 아는 듯 하자 안하무인으로 사찰에서 주인 노릇을 하려는 마음이 생겨났다.
 자기가 아는 것이 참으로 잘 알고 있는 줄 착각하고 스님의 말씀도 거역하게 되었던 것이다. 종래는 비방까지 하고 자기가 오히려 스님 보다 법을 잘 알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절 안에서 도깨비와 같이 사람들을 이간질해서 패를 가르고 파당을 지어 신심 있는 신도들의 신심을 떼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공부를 방해하거나 새로 절에 오는 신도들을 떠나가게 하였다.
 그래도 죄업이 큰지 모르고 절을 위하고 법을 위한 줄 착각했었다. 지금은  때가 되어 무간지옥의 업을 받고 있는 것이다.



 "스님, 이 여자는 크게 남을 해친 적도 없었고 남의 물건을 훔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지옥 중에서도 가장 극중한 무간지옥의 고통을 받으니 어찌된 일입니까?"


 그렇지. 무간지옥은 8대 큰 지옥 중에서도 최고로 중한 죄인들이 오는 곳이다. 한 두 번 악한 마음을 내고 또는 살생을 한다 해도 여간해서는 무간지옥에는 올 수가 없다. 대단히 큰 죄를 다반사로 지어도 무간지옥만큼은 오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쉽게 들어오는 경우가 있으니 그중 하나가 정법이나 부처님을 비방하고 가르침을 비방하는 것. 그리고 가리키는 스님을 비방하고 해코지하는 것이다. 비방하고 해코지하면 어느 한 사람으로 그치지 않고 그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심을 잃고 법에서 물러나고 깨달으려는 원력을 버리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정신의 의지 처를 상실하게 되고 만다.
 권고해야 할 것을 거꾸로 방해하는 결과가 되고 만 것이다.
 무지몽매하거나 용기 없는 사람들은 선한 마음을 냈다 가도 의심을 내고 물러 설 것이 아니겠느냐? 그러한 까닭에 무간지옥의 업이 발생한다.
 거짓말로 많은 사람들을 선동했다면 죄업이 크다. 그러나 선동 할 떼 말이 죄다 사실이라면 더 죄업이 커진다.
 왜냐? 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서 법에서 물러나게 하기 때문이다. 그 죄업은 상대적으로 더욱 켜진다. 과보는 결국 선동한 본인에게 돌아간다.
 이 행위는 부처님과 아라한의 몸에 피를 내는 행위여서 무간지옥의 과보가 성립되는 것이고 그럴듯한 말로 다중의 사람들을 설득하여 패 갈림을 짓게 하는 것이므로 결국 파 화합의 죄가 되어서 또다시 무간지옥의 죄가 성립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중죄인은 죄 같지도 않아 보이는 죄를 지었지만 그 과보는 무량하여 지옥 고를 벗어날 기약이 없는 것이다.
 목련존자 어머니가 무간지옥에 떨어진다. 그것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그래도 이 여자는 선근이 조금은 있다. 왜냐 하면 건성으로 들었어도 부처님의 법을 듣고 배우기는 하였으므로 잠재의식 속에는 그대로 살아 있다.
 
 "경안아, 그 여자 죄인에게 다가가서 그를 무간지옥 밖으로 끄집어내어 보아라."
 
 경안은 스님의 말씀에 따라서 마음을 고요하고 단정하게 하면서 한 생각을 지어서 하나의 몸을 나투었다.
 그 몸은 정신의 몸인지라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스승님이나 기타 다른 차원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었다. 또 현실의 몸과 다름이 없었다.
 
 경안은, 스님의 말씀대로 그 여자를 무간지옥 밖으로 끄집어내어 보았다. 그러나 이 웬일인가? 이 여자 죄인은 홀연히 사라져서는 다시 무간지옥 속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우 황당한 일이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그렇게 황당해 할 것은 없다. 그것이 순리이다.
 그 여자에게 누가 무간 업보를 받도록 안내 한자도 밀어 넣은 자도 없다. 다만 스스로 무간의 업보를 받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자기가 짓고 만들어서 눈앞의 험악한 세계에 몸이 갇히고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구더기가 똥을 찾아 드는 것과 같다.
 그 근본의 악한 마음의 뿌리가 소멸하기 전에는 결코 지옥을 벗어 날수가 없는 것이다. 마음이 뿌리까지 바뀌면 눈앞의 지옥은 자동으로 소멸된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보아라. 다시 끄집어내데, 너는 그전에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으로 모양을 바꾸어라. 그 여자의 마음 구석에는 부처님을 향한 마음이 미세하게 작용하고 있다. 거룩한 부처님의 모습을 보면 기쁜 마음을 일으키게 되므로 한 순간이나마 고통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경안은, 스님의 말씀 따라서 부처님의 모습으로 모양을 바꾸자 자신의 마음도 따라서 성스러운 자비심으로 충만하고 마음의 평화와 밝음이 사방으로 물결쳤다.
 몸에는 한없는 광명이 뻗어서 보는 자는 곧 마음이 편안하고 악한 마음이 쉬어 지는 것이었다.



 (부처님의 모습은 원초 적인 것이다.
 조각가가 정을 휘둘러서 32상과 80종호를 나타내고는 있지만 재대로 부처님의 모습을 나타낸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부처님의 상호란 이 우주 전체의 천상의 천인들로부터 지옥의 중생들까지 모든 형상을 가진 일체 모양의 근본이요 극치다.
 왜냐하면! 최상의 깨달음과 공덕을 지녔을 때에 갖출 수 있는 상호이기 때문이다. 이 삼천대천 세계의 유정무정을 통 털어서 가장 으뜸가는 상호다.
 모든 중생들은 저마다 상을 가지고 있다.
 몸이 크고 용모가 단엄하고 아름다운 천인들로부터 인간들보다 못한 동물들, 형모가 추악한 아귀, 그보다 더 참혹한 지옥 중생들, 모두가 상을 가지고 있다.
 일정한 기준으로 그들의 복과 지혜 그리고 마음의 밝음, 선하고 악함 등을 비교하여 알 수가 있다.
 심지어는 식물들 그리고 가만히 있는 산이나 바위, 하천까지도 나름대로 상호를 가지고 있다.
 이를 깊이 살펴보면 일정한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식물이나 산들도 선한 상, 악한 상, 등을 느낄 수가 있다.
 천상 천하에 온갖 공덕을 장엄하고 나타나는 부처님의 화신은 형상으로 논하는 한 우주의 최고 근본 상이므로 가장 본연의 모습에 가까운 상이다. 이러한 상을 실재로 보면 누구라도 경복하게 되어 있다.
 천인이든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다 본성은 동하지 않음이요 밝음이기 때문이다.) 



 경안은, 장엄한 모습으로 몸을 바꾸고 그녀의 앞에 섰다.
 죄인은 뜻하지 않게 나타나는 부처님의 자비스러운 모습을 뵙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잠시 편안한 상태로 돌아갔다.
 그러자 몸의 극심한 고통도 멈추었다.
 
 스님이 말씀 하셨다.
 
 "경안아, 그녀 앞에 거울을 만들어서 그녀 스스로 자기의 모습을 보게 해라. 그런 연후 전생의 일을 이야기해 주어라."



 그녀는 거울에 보이는 자기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경안으로부터 전생의 일을 듣자 기억을 떠올리고는 참회의 눈물을 흘렸다.
 지옥의 고통 속에서는 그 무엇도 생각 할 수 없고 오로지 고통을 면하려는 마음뿐이었는데 잠시나마 몸의 고통이 멈추자 경안의 말을 듣고 전생의 일을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때 스님이 말씀하셨다.
 
 "경안아, 이미 그녀가 참회하는 마음이 있으니 지난 생 중에서 남과 더불어서 가장 행복을 느꼈던 때를 더듬어서 떠올려 보라고 하여라.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도록 해라. 그러면 그녀의 추악한 용모가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스스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 그 까닭을 말해 주어라."
 
 과연! 경안의 말을 들은 그녀가 행복하였던 시절을 떠올리자, 거울에 비치는 그녀의 모습은 점점 인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 자신도 거울을 보고 놀래는 것이었다.
 경안은 말해 주었다.



 "마음과 몸이 둘이 아니라고, 마음에 집착을 버리면 밝은 마음이 나타나고 밝은 마음이 일부라도 나타나면 용모가 그에 따라서 변하게 된다는 것을 -----."
 
 두려움과 공포도 한갓 마음의 장난이다. 마음으로부터 지워 버려라 .
 잘못 되었다는 생각까지도 지워 버려라. 그러한 마음을 어디에도 두지를 마라.
 용모가 보기에 좋다 안 좋다 하는 생각도 지워 버려라.
 마음을 편안하게 하여라.
 그리고 편하다는 생각도 버려라.
 자신이 있다는 생각 없다는 생각도 다 지워 버리고 있는 그대로 놔두어라.
 좋은 느낌이든 안 좋은 느낌이든 그대로 놔두어라.
 주변에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을 그대로 놔두어라. 그러면 모든 장애가 살아질 것이다.
 본래 스스로 다 갖추고 있으니 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지혜와 공덕도 그대로 구족 하여 있다.
 정이니 사니 하는 것은 다 뜬구름과 같아서 허망한 것이다. 본래의 모습은 근본으로 청정한 것이다.



 그녀가 경안의 말대로 마음을 다스리자 그녀의 용모에서 점점 검은빛이 사라지고 밝아져 갔다.
 그리고 사악한 기운도 점점 없어지고 선한 모습과 지혜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비로소 무간지옥의 검은 마음은 사라지고 숨어 있던 본래 밝은 마음이 나타난 것이다.
 그녀의 얼굴에 기쁜 마음이 역력하게 보였다.
 원래 그녀의 성품이 악한 것도 아니었으나 잘못된 신앙심으로 무간 업을 지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특이한 인연으로 근본 마음을 회복하자 곧 인간의 본 마음으로 쉽게 돌아온 것이다.
 그녀는 깊이 감사하고 무간지옥에서  홀연히 사라져서 인간의 몸을 다시 받았다.
 일반적으로 바탕이 사악하면 무간을 벗어나도 다른 지옥에 몸을 받고 또는 아귀의 몸을 받을지언정 바로 인간의 몸을 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특별한 인연으로 깊이 마음을 도리 켜서 그와 같이 된 것이다.
 
 "스님, 세간의 속설 중에 염라대왕 이야기가 있습니다. 한 말씀하여 주십시오."
 
 염라 왕궁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남쪽 방향으로 큰 금강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 염라 왕궁도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염라 왕궁은 속하기는 지옥계에 속하고 중생의 마음속에 실재한다.
 어떤 사람이 평상시에 마음속에 알고 있기로, "이 몸이 죽으면 사후에 염라 왕에게 심판을 받고 갈 곳으로 간다." 혹은, 죽은 사후의 세계 심판자는 염라 왕이다. 하고 깊이 믿고 있는 자가 죽으면 염라왕궁이 나타난다.
 또 언제나 남을 자기 저울로 달아서 심판하기를 좋아하고 허물을 지적하기를 좋아하는 자들이 임종을 하면 자연히 그 망자의 눈에는 염라왕궁의 세계가 눈앞에 나타난다.
 그러면 거기서 심판을 받고 갈 곳으로 간다.
 
 모든 지옥 업을 지은 자들의 눈에 이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먼저 말한 바와 같이 전생에 사후의 심판자는 염라 왕이라고 굳게 믿고 있거나.
 항상 남을 심판하기를 좋아하거나 그런 일을 즐기는 사람의 눈에만 염라 청이 나타난다.
 왜냐?  자기 스스로 의식이 그러하므로 염라 왕에 의하여 심판을 받는 것처럼 망자의 눈앞에 전개가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자연히 사나운 옥졸과 구리 솥이 보이고 끓는 쇳물이 그의 앞에 나타난다. 그러면 옥졸은 죄인을 끌어다가 쇳물을 떠 먹여서 오장을 다 태워 버리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근본으로는 실재하지 않지만, 업이 그런 사람의 눈에는 그와 같은 세상이 전개되고 고초가 실재로 따르는 것이다.
 흔히 알고 있듯이 {이 세상 사후 세계를 주제 하는 것이} 염라대왕은 아니다.
 염라 왕이라도 이곳에 몸을 받으면 무지한 고초를 받고 나서야 즐겁게 오락하고 사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오는 자를 취조하여 모진 고통을 가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이 당연한 줄은 안다.
 그러나 자기는 천년 만년 살 것같이 원대한 계획 속에 살아간다.
 주위에 병이 들어서 눈이 감기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고 제대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을 보아도 자기하고는 상관이 없는 줄 안다.
 일가친척의 가호 속에 겨우 미음을 한 숟가락씩 받아 먹어가면서 생명을 유지하는 것을 보아도 남의 일로만 여긴다.
 늙어서 머리가 희고 걸음걸이가 휘청거려서 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보아도 자기하고는 상관없는 일로 생각한다.
 갑자기 물에서 죽고, 산에서 죽고, 일터에서 죽고, 차에 치어서 죽고 하는 것을 많이 보지만, 다 남의 일로만 생각한다.
 심지어는 자기의 눈이 잘 안보이고 기억력이 흐려진다든지, 머리에 새치가 나타나면, 걱정은 한다. 하지만, 아직은 힘이 있는지라 더욱 방탕하여 자제할 줄을 모른다.
 미래 세를 위해서 마음을 닦아야겠다 하면서도 젊은 기운 만 믿고 세월을 낭비한다.
 겨우 정신을 차려서 하는 소리가 '나이를 더 먹으면 열심히 마음을 닦으리라. 하고' 다짐하고 만다. 사람들은 꼭 나이를 먹어야만 죽는 줄 착각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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