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수련원 (불교명상수련원)

로그인  |     |   수련회원.일반회원등록   |   비번분실 


불교) 윤회

벽공스님 저술 = 수행의 본질과 화두 내용.

 

여긴 PC용입니다=) 스마트폰용 홈피로 보려면 클릭

불교, 윤회, - 불교, 윤회,
작성자 수련원
작성일 2003/05/28
tag 벽공스님저,수행의본질과화두,마음수련,명상수행,육도세계,생사윤회,인과응보,연기법,천상,지옥,아귀,축생,아수라,명상센터,불교명상수련원,

종교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법문,어록,경전강의,


종교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불교, 윤회,
(벽공스님저,수행의본질과화두,마음수련,명상수행,육도세계,생사윤회,인과응보,연기법,천상,지옥,아귀,축생,아수라,명상센터,불교명상수련원,)
 
 
종    교  


 


 다시 며칠이 흘렀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경안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였다.
 
 "스님, 사람들이 잘 살고 못사는데 종교의 영향이 큰 것입니까?"



 상당히 중요한 질문을 하였다.
 크다고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구나.
 저마다 잘살고 못사는 것은,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조화로운 삶을 살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런 사람들이 그 사회의 다수를 구성하면 잘 살게 되는 것이다.    투쟁적인 마음으로 국민 전체가 살아간다고 해도 결코 그 나라가 부강한 강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다수가 믿는 종교는 중요한 역할은 한다.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도록 하면서도 밝고 지혜로운 마음을 갖도록 일조를 한다면 종교의 영향으로 잘 산다고도 할 수 있다.
 반대로 종교가 국민의 마음을 좁게 만들어 버린다면 결국은 암담해 질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 그 피해가 널리 나타난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우주의 근본 법칙은 변함이 없다. 그러한 법칙을 이름하여 진리라고 한다. 종교라는 이름하고 꼭 절대적인 상관이 있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선각자들이 나와서 그 시대와 그 나라 풍토에 맞추어 일반 국민들이 여법하게 살도록 가르친다. 이것을 후에 종교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다.
 물론 종교라는 어원은 불교에서 나온 말이다.
 부처님의 말씀은 우주의 근본이요 으뜸가는 가르침이라고 다른 가르침과 구분을 해서 종교라고 했든 것이다.
뒤에 서양학자들이 신을 섬기는 것을 종교라고 하는 바람에 지금은 좀 다른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사는 환경과 풍토가 다를 수밖에 없듯이 가르침도 약간씩은 다른 것이다.
 물론 잘된 가르침도 있고 그렇지 못한 가르침도 있기 마련이다. 이것을 일러서 삿된  가르침이니 정법이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르침이 잘 되었든 못 되었던 그 시대와 풍토에 맞게끔 설한 것은 사실이다.
 세월이 무상하여 너무 그 시대에 집착된 가르침은 다른 시절에는 잘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야기를 들으면 혹자는 '우리 종교는 진리이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하여 어떤 경우에라도 변할 수 없는 철칙이다. 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렇다. 제대로 설하여진 법이라면 어느 시대 어느 곳에서도 진리  임에는 틀림이 없겠으나, 그렇다해도 어디까지나 법이란 근본의 껍질일 뿐이다.
 똑같은 법이라도 그 시대 사람들의 근기와 습성들이 다 달라서 쓰는 것이 다르다.
 멋대로 해석하고 근본 뜻과는 다르게 사용하는 예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면, 종교로 인하여 그 사회가 퇴보하는 일도 있게 된다. 오히려 종교 때문에 국민들이 속박 당하는 일이 있게 된다는 이야기다.
 이때는 종교라는 이름 하에 우주의 섭리에 역행하는 행위를 하면서도 가장 올바르게 믿고 실천하는 줄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시대적으로 나타나는 사상은 흥할 때도 있고  쇠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행위라도 그에 상응한 인과가 자연 발생적으로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끝없이 돌고 돈다. 이것이 형상 세계의 모습이다.
 우리의 근본인 우주의 성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건만 나타나는 모양은 무상하여 잠시도 머무르지를 않는다.
 형상이 있는 한 영원한 것은 없다.
 이것이 철칙이다.
 
 예를 들어서 불교 이야기를 하여 보자.
 부처님이 처음 인도에서 전법 하신 이후 그 가르침이 오백 년 간은 매우 법답게 실천되었다. 국민들은 편하고 나라는 부강했다. 그 후 오백 년 간도 그랬다.
 한참 동안 인도는 이 지구상에서 최고의 선진국이었다. 각 국의 뜻 있는 사람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인도로 유학을 떠났다.
 중국의 법현스님이 쓴 불국기에 그 시대의 인도 모습이 어떠했던가가 잘나와 있다.
 국토는 우순 풍조하고 집과 도로는 잘 정비되어 있으며 범죄라고는 없다. 있다면 거짓말하는 것이 큰 범죄라 하였다. 그러한 범죄를 범한 사람은 다른 데로 추방한다고 되어 있고 이 세상에서 가장 복 받은 나라라고 부러워하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그 후기에 인도 에 들어간 당나라의 현장스님은 쇠하여 져  가는 인도의 모습을 여기저기 기술하고 있다.
 현장스님이 도착했을 때, 인도의 불교는 내부적으로 점점 민중과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었다.
 그 까닭은 민중과 호흡을 같이 하는 종교가 아닌 귀족층의 종교로 전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너무나 어려운 논리에 매달리고 그것이 궁극적인 부처님의 가르침 인양 본말이 전도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어려운 논리는 그것이 부처님의 사상을 잘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일반 민중은 이해하기도 어렵고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민중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와 같은 것들이다.
 또 베푸는 종교가 아닌 받는 종교가 돼 가고 있었다.



 이때 회교도의 침략을 받게 된다.
 이들은 기후가 좋은 인도 북부와 중부에서 본거지를 두고 전 인도를 다스렸는데 이곳은 불교가 성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불교도는 극심한 피해를 당하게 된다.
 절이 파괴되고 승려들은 죽음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삼보가 파괴 된 것이다. 삼보가 피해를 입으면 민중의 힘만으로는 진리나 종교가 이어지기 어렵다. 이어진다 하여도 한 두 세대다. (그러기에 높여서 세 가지 보배라 한다.) 
 승가가 물락 하면 그것을 대치할 신도 조직이라도 있어야 할 것이나 그렇지가 못했다.
 신도 속에 스승이 존재하는 힌두교는 살아 남았지만 불교는 인도에서 점차 사라지게 되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다시 언급 해보지만, 시대마다 민중들의 업력이 다르고 취향도 다르다. 때문에 어떤 특정 종교가 흥하고 멸하는 것이 꼭 잘하고 못하는 것에 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종교 생활을 제대로 하고 있어도 업력에 의해 인연 따라 쇠 할 수도 있고 잘못 해도 한때나마 흥할 때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숨은 원인이 있다.
 무엇일까! 알겠느냐...? 
 
 불교는 쇠하였지만 불법은 영원한 것이다.
 불법이란 쇠하거나 흥하지 않는다.
 불교는 모양이기 때문에 윤회의 틀 속에서 흥하거나 쇠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보자.
 통일 신라가 불교로 정신의 주체를 삼고 삼국을 통일하면서 문물이 풍성하고 예술이 극치를 이루는 나라를 이룩하였다.
 고려에 이르러서, 풍수지리에 집착 한데다 말기에 이르러서는 스스로 마음을 닦고 베풀어서 복을 짖기보다는 복을 비는 것에 매달렸다. 또 사찰 자체가 사람들 위에 군림하는 업을 짓다 보니 결국 불교는 쇠했던 것이다.
 수많은 부처님의 가르침 중에서 중요한 것은 제쳐놓고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닌 것을 붙들고 불교라고 실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잘못 실천하였다고 하여도 이조 시대보다는 사람들의 생활이 윤택했다.
 
 종교가 사람들의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기는 하지만 잘살고 못사는 것은 그 시대 사람들의 하기에 달렸다.
 지금 이 시대를 보자.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북미, 지역마다 각각의 종교가 있다. 똑같은 종교를 믿고 있어도 잘못 사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잘사는 나라가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은 자기 할 탓이다. 오로지  자기의  마음쓰기와 행동하기에 따라서 달라질 뿐이다. 다만 전생으로부터 이어오면서, 그러기에 닦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배우는 것이다.
 
 못살기 위해서 종교를 믿는 것도 아니겠지만 잘 살려는 데만 목적을 둔다면 안될 것이다.
 영달을 목적으로 종교를 믿는 다면 제대로 된 신심이라고는 할 수가 없지 않겠느냐?
 더구나 병이나 낫기 위해 종교를 믿는 다면 형편없는 신심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것이 약간은 필요하다고 하겠으나 목적이 된다면 종교 자체를 모독하는 것이 된다., 스스로 하등 종교를 믿는 것이다.
 
 또 한편으로 종교를 으뜸가는 가르침이라고 하지만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바로 되지 않으면 그 역시 좋지 않다.
 종교라는 이름을 내 새워서 군대를 몰아 침략을 하는 일이 간혹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구속하면서도 무슨 진리를 위하고 실천하는 양 착각을 한다.
 조금만 다른 이야기를 해도 진리에 반하니, 종교의 가르침에 위배되니, 하면서 말을 막아버린다. 이러한 사례는 역사적으로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것은 종교라는 이름을 앞세워서 잘못된 행을 한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내가 여기에서 구체적으로는 말하지는 않겠다. 과연, 종교의 본질을 바로 알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는가!
 어찌 되었던 이런 경우도 예외 없이 미래 세에는 그에 상응한 응보가 기다린다.
  제대로 알고, 제대로 믿고, 제대로 실천해야겠다.



  경안이, 다시 질문을 하였다.


 "스님, 우리의 생활에 믿음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까?"


 이 세상은 근본으로 믿음 속에 유지되고 있다. 그것을 바탕으로 해서 서로 주어진 삶을 살면서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일년은 365일이라든지,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든 지, 시냇물은 높은 대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등, 모두가 믿음 속에 있다.
 인간의 일상사를 보자면 부부간의 믿음. 그리고 부모자식과 형제지간의 믿음. 이웃 간의 믿음. 친구간의 믿음. 직장에서의 상하간에 믿음. 서로 약속된 법을 지키는 믿음. 스승과 제자간의 믿음. 종교의 믿음. 이루 다 열거 할 수 없는 모든 것이 믿음을 기초로 하고 있지 않느냐?
 믿음이 없다면 아무 것도 제대로 굴러가는 일이 없을 것이다.
 일일이 다 이야기를 하지 않더라도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일들이다. 우리 주변에 항상 같이 하기 때문에 간혹 소중한 것을 망각할 때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생활에서 믿음이 없다면 너무 어려워  질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성인의 가르침이 있어도 믿음이 없다면 소용이 없고, 위대한 스승이 있다 해도  이익을 얻을 수가 없다.
 
 사람이 한 평생을 살다가 보면 뜻하지 않는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이고 여러 가지 위기에 봉착할 때도 있다.} 이럴 때는 마음이 불안 초조하고 밥맛을 잃어버릴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사람도 어느 한계에 봉착하면 순식간에  절망에 빠지는 수가 있다.
 세상은 고해인지라! 희망 속에 살 때는 저절로 힘이 나고 즐겁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다. 그 까닭에 믿고 의지 할 수 있는 종교가 필요한지도 모른다.
 믿음이 깊은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어려움을 슬기롭게 넘길 수가 있다. 더욱이 믿을 수 있는 스승이나 동료가 옆에 있다면 더욱 안정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도 욕심과 의타심으로 깊이 믿으면 되려 부작용이 생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과신하면 만용이 되기도 한다. 이렇듯 두 얼굴을 가지고는 있으나 믿음이란 여러모로 우리 생활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이어서 생활 속의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이야기하겠다.
 다리를 튼튼하게 놓아두면 사람들은 안심하고 이용한다. 그런데 금방 무너져 내린 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군부대의 화포가 약속된 화력이 나오지를 않거나, 빗나간다면 화포의 숫자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요즘 전자 상거래를 많이 하고 있다. 판매하는 물건이 선전과 다르다면 활성화가 안될 것이다. 또, 보호 돼야 할 개인의 정보가 마구잡이로 새어 나간다면, 전자 상거래나 인터넷이 편리하다 할 수 있겠느냐?
 
 믿음이란 일상사에 이렇게 중요하다.
 우리는 믿음을 생활화해야 한다. 남이 나를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충실해 져야 한다.
 
 "스님, 이 사회에서 종교의 갈등이 없겠습니까?"
 
 전혀 없기야 하겠느냐! 지각없는 사람들이 엉뚱한 짓을 하기도 할 것이다.
 역사를 보면, 종교의 갈등이나 사상의 차이에서 싸움을 많이 했다.
 
 국가 간의 원한관계도 때가 되면 풀린다. 그렇지만, 종교로 인해  적이 되면 수 천년을 넘어간다.
 사회가 만든 양반 상놈은 때가 되면 없어진다. 그렇지만 종교가 만든 양반 상놈은 없어지지를 않는다. 힌두교의 사성 계급이 그 것이다.
 종교가 다르면 양가가 혼인하기 어렵고, 부모 형제간에도 종교가 다르면 화목하게 살기가 어렵다.



 이렇듯 종교란 참으로 고약한 면도 있는 것이다. 그 종교의 가르침이 잘못돼서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것을 신봉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좁아서 그렇게 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느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미워하라고 가르칠 것인가?
 사랑하고 자비롭게 대 하도록 가르칠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진정으로 자기를 위한 길이 아니겠는가. 또 자기가 믿는 종교를 위한 길일 것이다.
 만약에 교리 자체가 잘못 돼 있다면 또 모를 일이다.
 
 나와 뜻이 같은 사람이 좋게 보이는 것은 기본에 속한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나쁘게 보이고 악하게 보일 수도 있다.
 이런 것은 부처님의 중도 사상하고도 상관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하고도 상관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선이니 악이니 하는 것하고도 상관이 없고 어리석은 사람들의 착각일 뿐이다. 남을 종교적인 이유로 배타하고 미워하도록 가르치거나  행한다면 가장 먼저 악도에 떨어 질 것이며 인간의 몸을 받아도 온전한 몸을 가지고 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이미 부처님이 경전에 증명해 놓으신 것이다. 비록 자기는 신성한 일을 하는 줄 착각할지 모르지만. 
 나와 길이 다른 사람을 평등하게 사랑으로 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노력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무튼 우리나라는 다 종교 사회다.
 그래서 자기가 믿지 않는 종교도 이해 할 수 있도록 공부를 한다면  좋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라고 해도 된다.
 일반 신자들도 다른 종교의 서적들을 보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목적을 진리에 둔다면 가능한 것이고 목적을 종교에 두는 사람들은 해당이 안 되는 이야기다.
 순서는 자기의 종교 교전을 우선적으로 공부하고 다음으로 다른 종교의 교전도 공부하면 되는 것이다.
 자기의 교전은 보되 다른 교전은 못 보게 한다면 자신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삿된 가르침을 막으려고 그렇다지만)
 
  "스님, 이제는 불교의 특색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모든 종교는 나름대로 원대한 깊은 가르침이 있다.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독특한 색깔도 있을 것이다.
 불교는 중도 실상을 깨달아서 성불하는 것이 근본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같이 성불하여 부처를 이루자는 말이다.
 그러면 부처님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이라는 용어는 원래 붓다라는 칭호에서 변한 말인데 붓다란 무엇인가?
 우주의 본질을 완벽하게 깨달은 대 스승을 붓다라고 하였다
 이 붓다라는 말은 인도에 부처님이 세상에 나기 이전부터 있어온 말이다. 인도의 여러 종파의 공통된 언어라고 할 수가 있다.
 참으로 대각을 이루었다고 인정되고 그에 따른 32상과 80종호를 갖추었으면 어느 사상 어느 종교를 막론하고 인정하는 것이 붓다라는 공통된 칭호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나오셔서 {정각을 이루는 모습을 보이시고} 붓다라는 칭호를 사용하게 된다.
 여타 다른 종교에서도 자기의 지도자를 붓다라고 칭하는 예도 있었다. 그러나 공인되지는 못 했다.



 결국 붓다라는 말은 형상적으로는 대각을 뜻하는 말이고 또 다른 뜻으로는 우주 근본 바탕을 말한다.
 부처님 멸 후, 큰 깨달음을 얻은 제자들도  붓다라는 칭호는 사용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극히 높여서 아라한이나 존자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중국에 와서는 대사, 아니면 한 종파를 창시한 분들은 조사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그밖에 종사, 선사, 법사, 율사, 강사 등, 수행 특색에 따라서 구분하는 경어를 붙였다.
 
 부처님, 가르침의 중요한 두 갈래는 공과 인연의 두 갈래다.
공이란 비어서 없다는 말이 아니고 오고감이 없고 생과 사가 둘이 아닌 본래 밝고 밝은 우리의 근본 성품을 공이라는 대표적인 용어로 설명한 것이다. 여래장이니 열반이니 또는 성품이니 반야니 아니면 마음이니 하고 가지가지 말로 우주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는 용어가 많이 있다. 하나로 집약하면 대표적인 것이 공이라는 말이다.
 마음을 바로 보아 깨달음에 들어가는 핵심적인 가르침들이 다 여기에 모여 있다.
 공이라는 용어를 쓰는 경전의 숫자도 많고 방법도 다양하다.
 
 그리고 다음으로 인연의 법이다.
 형상으로 존재하든 형상으로 존재하지 않든 그 어떠한 것이라도 원인과 결과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의 원리를 설명하여 놓은 것이 인연법이다.
 이 우주의 흥망성쇠와 그 외 모든 것을 원리적으로 설해 놓으신 것이다.
 천상과 인간, 그리고 지옥에 이르기까지 번다 할 정도로 설 하셨다. 작기로는 요즘의 용어로 말하면 원자, 분자, 그리고 진공의 세계와 작은 균의 세계까지 설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량 아승지의 과거 현재와 수백만 분의 1초 세계까지 다 설하셨다.
 또 인간계의 가지가지 사변 사를 몽땅 다 설하시었다. 심지어는 아이가 어머니의 태에 잉태해서 7일 단위로 성장하는 모양까지도 설하셨다.
 이러한 가르침이 인연의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외관상으로는 반대되는 개념 같지만 근본으로는 인연과 공은 다 같은 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처럼 깊고 다양하지는 못하지만 다른 종교에서도 윤회를 이야기하고 공을 이야기한 가르침이 많이 있다.
 그럼 불교는 무엇이 다른가?
 핵심은 공과 인연법에 아니고 중도에 있다.
 중도란 무엇인가?
 중도는 언설이 미치지 않는 자리이며 절대성이 무너진 자리다. 어느 쪽으로든 치우침이 없다. 마음이니 뭐니, 모양이 있기 전의 자리다.
 이 중도는 절대적인 균형을 이룰 때만이 가능하다.
 어느 것도 특별히 취하거나 버리지 않는다. 우주의 본질이요 우리의 성품이 근본적으로 중도이기 때문에 따로 구하거나 헤매지를 않는다.
 우선 형상적으로는 몸과 마음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적절함이 무엇인지? 생활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도로 향하는 첫 거름이다.
 천상과 지옥이 하나가 되고 생활과 수행이 하나가 돼야 한다.
 부처도 중생도 하나가 되고 신도 인간도 하나가 되는 것이다. 가지가지 종교 또는 세간의 모든 법이 하나가 되는 것이다.
 중도를 깨달아야만 비로소 해탈한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공도 아니요 인연도 아니며 진리도 선도 아니다. 오직 중도의 가르침이다. 이것이 다른 가르침과 다른 점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외견상으로는 광대하지만 결국은 중도로 돌아간다.
 
 또 하나 특징이 있으니 대자대비가 기본을 이루고 있다..
 팔만대장경, 어디를 보아도 그 저변에는 어떠한 편견도 종교적인 이기심도 없다. 시종 처음부터 끝까지 상상을 초월하는 자비를 실천하고 있다. 그것도 대 지혜를 겸비하면서. 아무리 구제불능의 사악한 중생이라도 끝까지 지혜와 방편으로 구원을 한다.
 적으로 간주하여 버리거나 벌주는 것은 개념조차도 없다.
 다른 가르침들이 선과 악을 나누고 친구와 적을 가리는 것과는 대조 적이다.
 그러기에 참으로 불교의 성전은 후세인 들이 감히 수정할 수 없는 성스러운 말씀이다. 물론 때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빙자하여 잡된 글들이 뒤섞이는 예도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또한 다른 교전과는 차이가 난다. 다른 교전들은 간혹 그 시대에 안 맞으면 내용을 조금씩 고쳐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그 결과, 교전이라는 것이 그 시대 사람들의 작품이 되고 만다.
 
 (아무튼 부처님의 가르침이 워낙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광범위하게 설해진 대다 오랜 세월에 걸쳐서 이 나라 저 나라에 들어가다 보니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신봉하는 방법도 사람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각 종교마다 전문 서점이 있지만, 전문 서점이 아니라도 대형 서점에 가면 웬만한 책은 다 있다.
 
 처음에, 바른 믿음이 무엇인가를 심사 숙고하고 알아본 연후에 열심히 가르침을 닦고 실천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만 무턱대고 종교를 멋모르고 의지하여 믿는다면 종교에 속박 당하고 말 것이다.
 불교를 믿더라도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는 말이다.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방향은 다 갔다. 영원한 안식을 찾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법도 있고 그렇지 못한 법도 있을 수 있겠으나 일단은 목적은 같다.
 우리나라는 다 종교 사회다.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신행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는 나라다. "우리 종교가 최고다." 하는 것보다는 바로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종교는 개념적으로나마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알았다면 일심으로 믿고 귀의 해야된다. 믿었다면 뛰어넘어 실천을 해야 되는 것이다.



 경안은 스님의 자상한 말씀을 깊이 새기면서 처음으로 발심 한 분들을 위해서 질문을 했다.
 
 "스님, 처음 신심을 낸 재가 신자들이 계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간혹, '실천 할 수 없는데, 계를 무엇 하려 받겠는가. 하고' 계를 받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얼굴이 깨끗하고 아름답다면 애써 화장 할 필요가 있겠느냐?
 또 몸에 때가 끼지 않는 다면 목욕을 안 해도 될 것이다.
 
 계는 앉아서 받고 일어나서 파 하더라도 받아야한다.
 자주 받아 되새기면 더욱 좋다. 왜냐 하면 최후에 나를 인도해주는 씨앗이 되기 때문이다. 어느 땐가는 등불이 될 것이다. 못 지켜도 계를 받으면 좋다."



 
불교명상수련원(마하수련원) 벽공. 술
http://www.mahazen.org










****대한불교조계종 마하수련원) 벽공스님의 명상센터) 불교명상수련, 마음수련, 명상하는법,인성교육,심리치유, 불교법문,자연치유,
금융투자자, 스포츠선수, 기업인, 정치인, 교육자, 연구자, 수험생, 정신능력극대화와 안정수련.
번뇌치유,(우울증,불안공포증,빙의,강박,과대망상,성격개조,스트레스) 거주지역 관계없이 매주 벽공스님 지도.

PC 클릭 - http://mahazen.org/technote6/reg2.html
스마트폰클릭- http://mahazen.org/technote6/reg200.html


벽공스님 신간:

1. 행복한 인성, 2. 금강경강의, 3. 증도가강의, 4. 법성게강의, 5. 냉온조절건강법, 6. 수행의본질과화두.

아래의 링크 클릭해서 보세요.
PC라면 클릭 - http://bit.ly/2qSYqES

스마트폰 클릭-
http://bit.ly/2qZVyV6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글목록]
윗글 지옥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아래글 죽음과 탄생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불교, 윤회, - 불교, 윤회,

여기는 PC용입니다=) 스마트폰용으로 보려면 클릭하세요

불교, 윤회, - 불교, 윤회,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구입

수련원 2013/11/16 2964
2

부처님의 상호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7871
3

불상.상호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3597
4

천상 세계 천인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5504
5

아수라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8344
6

무색계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5635
7

극락세계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4650
8

오욕과 과보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4640
9

복과 인연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9714
10

아라한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9864
11

습관과 취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7887
12

우주의 생성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7739
13

우주의 생성과 파괴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9248
14

축생계와 아귀계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8358
15

지옥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2307
16

종교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7610
17

죽음과 탄생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수련원 2003/05/28 12528

1

불교, 윤회, - 불교, 윤회,

    [아래 칸? 홈페이지 안에 올려진 글을 한 글자나 여러 글자로 다양하게 검색]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방송

법보신문

안국선원

조계종교육원

::: 명상, 명상수련. 명상하는법, 불교법문, 심리치유 ::: 마하수련원(불교명상수련원). :::
:::
T. 070-8285-6685. 주소. 인천시 연수구, 청학동 산3번지. 개원. 2001년 01월 15일.:::



site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