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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윤회

벽공스님 저술 = 수행의 본질과 화두 내용.

작성자 수련원
작성일 2003/0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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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과 과보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법문,어록,경전강의,


오욕과 과보 (벽공스님 저서, 수행의 본질과 화두 책 중에서) - 불교, 윤회
    오욕과 과보

 
 잠시 후.     
 세분은 세상살이 이야기를 하시었다.
 
 "스님, 각종 욕심의 영향에 대해 한 말씀하여 주십시오."
 "여러 가지의 욕심이 있겠지만, 불교에서는 오욕으로 나눕니다. 명예 권력욕, 그리고 재물욕, 식욕, 성욕, 수면욕이지요. 가장 원초적인 욕심들입니다."
 "스님, 예로부터 명예롭게 살라고 했지 않습니까, 그것이 안 좋은 뜻으로 쓰입니까?"
 "그렇습니다."



 명예욕이 적당하면 발전도 있고 좋겠지만, 지나치면 큰 병폐를 불러일으킵니다.  수행 정진도 그렇고 아무리 옳고 좋은 것이라도 예외는 아니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따로 진리가 무엇이다. 하시지 않고 중도의 이치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옛말에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나 명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말씀은 없습니다. 명예롭게 살기를 강조 한 것이지요 그런데 이 명예가 이기적인 명예가 될 때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명예'란 욕심이 작용하면 자기의 역량에 버거운데도, 앞장서고 일을 만들게 됩니다. 사업을 해도 다른 사람을 앞서기 위해서 사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적당하면 발전하겠지만 지나치면 자기도 망하고 이웃이나 국가에도 큰 손실을 끼치게 됩니다.
 경기를 해도 선수나 관중이 오로지 이기는데 목적을 두게 됩니다. 승패를 떠나서 즐길 수가 없게 된다는 말입니다.



 국가의 살림살이를 맡아서 하는 중요한 위치에 기용되면 다들 출세했다고 말합니다. 출세하기 위한 목적도 저마다 다르기 마련입니다. 다수는 정말로 국가와 민중을 위하여 나름 데로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해야 되겠지요.
 그렇지만 일부 명리심이 앞을 가린 분들은 개인의 영달과 가문의 명예를 위해 뛰어 다니게 됩니다. 그런 분들도 앞에 내세우는 말은 '국가의 동량이 되기 위함이다.'하지만 기실 알고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자기나, 가문의 명예가 내심으로 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이조 시대를 예로 들어보면, 상대방으로부터 조그마한 비판을 받아도 사건이 납니다. 왜냐? 자신의 명예가 연계되고, 가문의 명예, 그리고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명예와 결부되기에 그렇습니다.
 때문에 분함을 느끼고 서로 모함하게 되고, 상대방의 뜻이 옳다고 생각이 되어도 억지로 무시해 버리게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로 서로 원수가 되어 버립니다. 결과적으로 큰 파당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국가나 백성의 이익과는 상관없는 당쟁을 하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이 상황에서는 권모술수가 난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되려 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바보가 됩니다. 어찌 되겠습니까? 사회 분위기가 그렇게 돌아가면 너 나 할 것 없이 거짓말을 예사로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돼 버리겠지요.
 또, 출세하지 않으면 사람 대접이 말이 아니니, 뇌물을 써서라도 출세를 하려고 합니다. 또 출세를 하고 나면 자신과 가문의 안위 때문에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 날수가 없게 됩니다.
 
 "스님, 흔히 자존심이라는 것도 명예심으로 보면 됩니까?"
 "그렇습니다."
 
 약간의 자존심은 정의로울 수도 있고 자기 발전의 원동력도 됩니다. 지나치면 직장에서도 상하간에 화합 할 수가 없습니다.  어디서나 충돌을 일으키게 되는 것이지요. 결국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여간 명리 심히 너무 지나치면 남이 잘되는 것을 봐 줄 수가 없게 됩니다. 당연히 여러 사람이 단결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의 밑바탕에는 지나친 명리 심히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스님, 우리나라와 같은 경우는 장차 어떻게 달라질 것 같습니까?"
 
  지금이야 요원한 것 같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나라는 시간이 흘러 세대가 바뀔수록 투쟁의 역사를 뒤로 할 것입니다.
 각자, 자기 전문 지식을 활용해서, 자기가 속한 집단을 대변하고 나라에 봉사하려고 할 것입니다.
 연세가 많던 적던, 지역과 전문 소속이 어디든지 간에 함께 모여 의논 할 것입니다.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점점 권위의 틀은 무너지고 능력과 화합에 의한 전문 집단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경력과 전문화 된 특성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현실적으로 능력을 중시하는 사회가 될 것입니다. 경력이 있고 전문가라고 마냥 높이 보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연구가 되어 있는 프로를 중시 할 것입니다. 또 그것을 사회가 식별 할 수 있는 수준이 될 것입니다.
 각자 전문 기술을 가지고 좌우 간섭 없이 열심히 소신껏 일하는 분위기로 바뀌어 갈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좌우 부서와 타협과 조화를 이룰 것입니다. 또한 수동적으로 시키는 대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하면서 하기 때문에 생산성도 항상 될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는 법보다는 인정을 중시하는 풍토가 있습니다만, 앞으로는 아무래도 법치 쪽으로 점점 다가가지 않을 까 쉽습니다.
 사회는 전반에 걸쳐서 공동체를 존중하고 질서를 잘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에 맞춰서 공공의 이익을 해칠 때에는 법이 엄격하게 집행이 되고 강화 될 것입니다.
 개인의 인격이 존중되고, 건전하고 안정된 나라일수록 공공의 위해 행위에 대한 법이 엄격합니다. 또한 국민들의 의식도 당연하고 성숙하게 받아 드립니다. 그렇지 않고 부정이 난무하는 사회는 공공의 이익과 의무를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는 것입니다.
 국민 다수의 건강을 해치는 행위라든지.
 경영자들이 무책임한 경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다든지.   부정을 하여 여러 사람에게 정신과 물질로 피해를 주는 행위시.
 그리고 기본 국민의 4대 의무를 다하지 않는 경우 처벌이 엄격하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장차 사회의 분위기는, 나만이 옳다는 독선을 배제하고 100%승리가 아닌 나의 이익도 챙기고 상대의 이익도 생각해주는, 타협의 질서가 자리 잡아 갈 것입니다.
 앞으로 명예는 베풀고 열심히 일하는 데서 찾을 것입니다.
 남을 간섭한다거나 쓸 때없이 두리번대는 한가한 사람은 없어질 것이고, 어려서부터 자기 일은 자기가 책임지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입니다.
 
 "권력욕과 명예욕은 어떤 차이점이 있습니까?"
 
 명예욕은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이 근본을 이룹니다. 그래서 남이 인정하여 주기만 하면 힘이 넘치고 살맛이 납니다. 그렇지 못하면 인생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허명일지라도 앞에 나서기를 좋아합니다.
 권력욕은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 마음이 주를 이룹니다. 그러기 때문에 높은 자리에서 많은 권한을 행사하고 싶어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할 수만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안 알아주고 욕을 할지라도 상관없습니다. 뒤에서라도 군림하면 되니까요.
 
 "스님, 권력욕의 폐단은 어떤 것입니까?"
 
 권력욕이 적당하면 책임감이 강하고 용기도 있고 각 분야에서 업적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지나치면 다른 사람이 누려야할 자유를 자기 혼자 마음대로 사용합니다. 다른 사람은 아무 자유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옛날 왕정 시대에는 국가의 최고 권력을 잡기 위해서 골육간에 서로 해치는 경우가 많이 있었습니다. 권력이 인생의 전부인 사람은 부모 형제나, 의리든 덕이든, 무엇이든지 소모품에 불과 합니다. '그 자리는 승리 아니면 죽음이다.' 할 정도입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간에 서로 자기만이 옳다고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나, 부모가 자식에게 자기의 가치관을 억지로 주입하려고 하는 것, 등이 명분이야 어디에 있든 일종의 작은 권력욕에 속합니다.
 집안에 자식들이 부모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의 판단이나 생각이 옳다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도 또 하나의 작은 권력욕에 속합니다.
 그래서 반민주적인 것은 가정으로부터 시작하여 학교, 직장, 군, 어디라도 있게 마련입니다.
 독재라는 것도 결국은 이러한 것이 고루 만연 할 때 등장하는 것입니다.
 국민이, 감시하거나 시키지 않아도 충실하게 자기가 맡은바 역할을 해 낸다면 독재가 발붙일 수 있겠습니까?
 명예욕이나 권력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스님, 독재의 명분이 국가를 위하고 또 실재로 국가를 위한다 하더라도, 근본은 권력욕에 해당합니까?"
 
 난세에는 영웅이 나와서 국민을 하나로 뭉치게 해서 국가를 재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난세는 아니라도 혼란기에 부득이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방법으로 독재적인 방법이 사용 될 때도 있습니다. 그것이 때로는 유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 아니면 안 된다는 마음이 있다면 권력욕이라 해야 될 것입니다.
 약간 벗어난 이야기가 되겠습니다만, 일인당 국민 소득이 5,000달라는 돼야 만 독재를 면한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10,000달라가 되면 확실하게 민주화의 길로 들어서게 됩니다. 절대적인 것은 물론 아닙니다.
 국민의 수준을 달라로 비유해 본 것입니다.
 모든 것은 국민의 수준 여하에 달려 있습니다. 못사는 나라지만 독재하고 상관없는 나라도 많이 있습니다.
  
 "스님, 이번에는 재물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재물은,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이고 중요시 해 왔습니다. 그런데 재물욕도 적당하면 바람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으니까요.
 재물을 잘 활용해서 더 많은 공덕을 쌓을 수도 있습니다. 재물이 없으면 '나쁜 일도 하기 어렵지만 좋은 일도' 하기가 어렵습니다.  재물이란 활용하기 나름입니다.
 재물욕이 지나치면 돈을 벌기 위해서 부정한 행위를 예사로 하게 됩니다. 무슨 짓을 하던 돈만 벌면 다 된다는 사고를 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 풍조가 만연하게 되면 대 다수가 불공정 게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는 순수한 사람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들의 가치관에 혼란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대체로 기본이 돼 있지 않은 사람은 돈을 벌면은, 돈을 혼자 놀고 즐기는데 써 버려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망치고 맙니다.
 명예, 권력, 재물이 우리의 생활에 다 필요한 요소들이지만, 근본을 잘 살펴서 자기가 기왕 갖은 명예와 권력, 그리고 재물을 잘 사용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만 충족시키는데 사용하면 곳 끝이 들어 나고 말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밝고 흡족하게 되는 방향으로 사용하면  복도 더 늘고 보람도 두 배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자기가 가진 것이라도 자기만 생색을 내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남도 생색을 내고 보람된 일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보시행과 보살행을 강조하심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복이란 오래 의지 할만한 것이 못되므로  영원한 {해탈}을 추구하도록 가르쳤습니다. 모든 고통의 원인은 집착입니다.)
 
 "스님, 잠시 집착의 결과에 대해 말씀하여 주십시오."
 
 남에게 지기를 싫어하고 타협 할 줄 모르고 아만 심히 강한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자기만 옳은 줄 착각을 해서 적을 많이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생의 공덕이 아직 남아있고 현재 나름대로 행실을 바르게 하고 있는 중이라면 그 힘으로 한동안은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이 다하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되고 그 누구도 동정을 하지 않게 됩니다.
 그 자신도 남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내생에는 지혜도 있고 용기도 있을지라도 하천한 몸을 받고 남의 질시를 받는 생을 살게 됩니다.
 또한 욕심이 과다 한 사람이 복도 없는 대다가, 그나마 행실도 엄정하지 못하다면, 당장 험한 과보가 기다립니다.
 거꾸로 지금도 명예가 가득한 사람이 마음깊이 명예를 초탈하면 아주 좋습니다. 당장도 좋지만 그 명예는 다음 생에는 더욱 높아지고  숭앙을 받게 됩니다.
 진정한 명예란 쟁취 한데서 오질  않습니다. 마음속으로 또는 행동으로 남을 존중하고 이익 되게 하는 데서 오기 때문입니다.
 금생에 매우 행실이 나빠도, 명예가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전생에 한번이라도 남을 받들고 존중했기 때문에 그렇게 됩니다. 그걸 모르고 원래부터 자기는 별스러워서 그런 줄로 착각한다면, 곧 좋지 않게 됩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지만 옆에 있기만 해도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자세히 살펴보면 그 사람은 상대의 마음을 기쁘게 하고 힘이 나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으로 능력도 있고 아주 필요한 사람인데도 직장 같은데서 남이 싫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만 옳은 줄 알거나 남의 마음을 헤아리지 않고 상처 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어떤 형태로든지 기쁘게 하는 사람은 그 만큼 명예로와 집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하면 '국민적인 스타다. 하는' 대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이익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지 주게 되면 당연히 명예가 높아집니다. 그것은 정치 경제 문화 종교 언론 체육 그리고 군사 모든 방면을 총 망라 합니다.
 
 꼭 높은 자리에 있어야만 명예가 드높아 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위치에 걸맞지 않으면 욕을 더 먹게 됩니다. 장차는 일신이 위험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분수에 넘치는 명예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공덕이 없이 함부로 명예를 탐하면 기다리는 것은 쓴잔뿐입니다. 욕과 질시를 받고 하천해 지며 종국에는 도와주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금생에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렇게 되는 원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전생으로부터 마음을 밝힌 공부를 하고 성인의 법을 공경한 연고로 권력이 생깁니다.
 둘째, 전생으로부터 성인들을 받들고 사람들에게 보시행과 보살행을 한 인연으로 권력이 생깁니다.
 셋째, 전생에 맺은 악한 인연으로 권력을 잡습니다.
 
 첫째, 의 공덕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이 권력을 탐하는 마음이 크지 않으면, 어느 분야에 봉사하더라도 업적을 쌓을 수가 있습니다. 근본이 지혜롭기 때문에 매우 훌륭한 업적을 쌓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지혜로움을 잘못 사용해서 권모 술수를 쓰고 명분을 내걸어 분쟁이나 조장하면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투쟁 속에 몰아넣고 자기의 편리를 도모한다면, 다음 생에는 비천하고 어떠한 권한도 주어지지 않게 됩니다. 심한 경우에는 삼악도의 과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워낙 큰 영향력을 가진 관계로 많은 사람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큰 피해를 주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은 그 사람하고만 업 갚음을 하면 되고 과보가 그렇게 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단체 대중일 때는 사정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둘째' 공덕으로 권력을 잡은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이 받드는 속에 자연스럽게 권력을 얻게 됩니다.
 이 권력을, 자기 영향력 하에 있는 사람들이 밝고 참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여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또 진리의 길로 지향 할 수 있도록 하면, 그 공덕은 세세 생생이 따라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날 때부터 하늘 인양 착각해서 권력을 가졌을 때 넘치는 수가 있습니다. 남을 억압하고 자기 편리대로 살면서 "당연하다. 나는 원래 상류고, 내 땅이고, 내집이다. 권력도 본래로 내 것인데." 하는 특권의식을 가진다면 때가 되면 목숨을 부지하기도 어렵습니다. 종당에는 쏜살같이 악도에 떨어지거나, 다시 인간의 몸을 받더라도 비천한 몸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권력이란 것을 알고 보면 여러 사람이 나누어서 누려야 할 자유를 자기 혼자, 또는 소수의 집단이 독점하여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나치면 독재라고 이름하고, 이것은 우주 자연의 균형을 깨는 행위가 됩니다.
 대자연의 섭리를 주창하는 이 미묘한 마음의 세계는 항상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때문에, 어떠한 권력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덧없이 떠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권력을 영원히 유지하려 합니다. 온갖 노력을 다 하는 것이지요. 가지가지 명분을 화려하게 내세우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결코 영원한 권력은 없습니다.
 
 권력에 취하게 되면은 자기가 하는 일이 대단히 정당한 행위로 착각을 하게 됩니다. 이때 누군가 잘한다고 칭찬을 하면 듣기에 좋습니다. 반대로 못한다고 지적하면 비방으로 받아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누군가 작당을 하여 아부를 일 삼게 되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우쭐해집니다. 그러기에 자기를 나무란 사람은 터무니없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어김없이 괘씸하게 보이는 것이지요.



 아무튼 그런 사람의 주변에는 간신들이 진을 치고 힘을 쓰게 됩니다.
 요즘의 간신들은 어떠한 간신들이 있을까요? 나라나, 회사의 살림살이에 중요한 나침반이 되는 통계를 제 멋대로 조작하거나 해석하는 것입니다. 윗사람의 입맛에 맞추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오도하는 현대판 간신입니다. 그리고 통계는 어디까지나 참고가 될 뿐인데도 절대적인 수치 인양. 그것만 가지고 무슨 경제가 잘 돌아가느니, 과열이니, 또는 미래가 어떠니, 하고 맹신을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간신은 아니라도 어리석은 우신에 속한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전생의 원한으로 권력을 잡은 경우는 자기 민족을 임의로 살해하거나 또는 전쟁을 통해서 자기 종족이나 아니면 타민족을 멸살 시킵니다. 때로는 어떤 가정을 파괴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특이한 예에 속합니다만, 종교를 박해하기도 합니다. 열거  하자면 한이 없겠습니다.
 이 경우 서로 마음을 돌이켜서 깊이 참회하고 선업을 쌓는다면 악연이 그 당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스님, 그럼 원수는 갚을 차례가 된 쪽이 그만 두어야 끝나는 것입니까?"
 "바로 그렇습니다."
 
 한쪽에서 그만 두지 않는 한 결코 중단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어렵지 않겠습니까? 진리의 스승을 만나서 갚을 쪽이 그만 두거나 받을 쪽이 진심으로 참회를 한다면 중단되거나 받아도 약하게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생으로부터 넘어 오는 원한 관계는 현재의식보다는 잠재의식에서 자기 의지하고는 별 상관없이 우연한 것처럼 진행됩니다. 그래서, 밝은 마음을 닦다 보면 자기도 모른 사이에 원한 관계가 소멸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스님, 여러 가지 과보를 정리해 주시고 이어서 오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은 큰 선행을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만 크게 악업을 지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그 과보도 대단히 큰 것입니다.
 정치적, 학문적, 종교적인 그 어떤 사유로 화합을 깨거나 많은 사람들이 불신과 증오를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하지 말아야 됩니다. 영향력이 커서 다수의 사람들이 휩쓸려 들어 갈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최종적으로 자기에게 과보가 돌아옵니다.
 비록 옳은 이치라도 지나치면 더욱 피해가 커집니다.
 자세히 예를 들어서 논한다면, 종교적인 편견으로 종교간의 파쟁을 일으켜서 불신과 증오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범하도록 하는 것이나. 지역 간, 국가 간의 투쟁을 불러일으키는 행위는 많은 사람들과 관계되는 것으로 심사 숙고 해야 합니다. 자신과 만 인을 위한 길입니다.



 "재물욕의 과보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설해 주십시오."
 
 전생으로부터 마음뿐만 아니라 몸으로 선행을 해서 남에게 이익을 준 사람이 물질이 풍부하여 집니다. 온전한 재물입니다.
 또 금생에 와서도, 남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이익을 주게 될 때 재물이 풍부해 집니다. 남을 도와 준다고 하여도 지나치거나, 잘못되게 도와주는 경우에는  예외가 될 수 있겠습니다.
 과도한 재물욕으로 사기를 치거나 부정을 하여 얻은 재물도 잠시 향유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빚이 되어서 현생에 고초를 받고 가정에 풍파가 많으며 다음 생에는 가난해지고, 어떠한 노력을 해도 재물을 모을 수가 없게 됩니다. 재물을 좀 모았다, 하면 곧장 일이 터지면서 달아나 버립니다. 그리고 너무 지나치면 인간의 몸도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스님, 식욕에 대 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식욕은 생명을 유지하는 근본적인 욕구입니다. 식욕이라 해서 욕심으로 분류하면 좀 이상하겠지요. 그러나 실재로는 근본적인 깊은 욕구입니다. 우리가 안 먹고는 살 수 없지 않습니까?
 이게 얼마나 깊은 욕구인가 하면, '옛말에 3일을 굶어서 담을 뛰어넘지 않을 사람 없다. 는' 말이 있습니다. 그만큼 깊은 욕구라는 뜻입니다.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게 되면 더러운 똥 속의 구더기도 아름다운 음식으로 보입니다. 요즘도 굶주리는 나라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 중에 차마 있을 수 없는 내용들을 우리가 접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래 생과 사가 둘이 아닌 줄 알거나, 다시 업 따라서 환생함을 믿는 사람이라면, 삶에 그렇게까지 연연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굶어 죽을 지경이 되더라도 몸의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죽으면 끝이다 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은 평시에는 점잖고 의젓하더라도, 몸에 위기가 닥쳐오면 살기 위해서 발버둥치게 될 것입니다. 당사자야 배움이 있고 자존심이 있기 때문에 의젓하고 쉽겠지만 몸이 무너지는 마지막 위기가 닦아오면 근본 생존의 욕구가 발동을 합니다. 그때는 이성을 상실해 버리기 때문에 본인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때 평상시의 수행과 가치관이 들어 나는 것입니다. 
 
 먹고사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생명을 유지하기에 충분한 대도 지나치게 식도락을 즐기고 포식을 하는 것은 본인의 건강에도 안 좋지만 미래의 업에도 매우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
 옛날 왕들이 좋은 보약과 좋은 음식을 다 먹었지만 오래 살지 못한 경우가 더 많았습니다. 너무 음식에 연연하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스님, 음식이 풍부해서 탈인 곳도 있지만 이 지구상에는 먹거리조차도 해결이 안 되는 절대적인 빈곤층이 많이 있습니다. 음식 보시의 공덕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어느 정도 잘살게 되다 보니 먹는 것만큼은 해결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 어느 곳에도 어려운 층은 있기 마련입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 보시가 가장 시급하고 공덕도 큽니다. 음식을 널리 보시하고 베풀면 항상 풍요로운 곳에 태어나서 배고픔을 모르게 됩니다. '내 것이라고'  음식을 함부로 하게 되면 내생에는 물이 귀하고 음식이 귀한 삭막한 곳에 몸을 받기가 쉽습니다.



 "스님,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이나 식물도 음식을 섭취하기는 하지만 각기 섭취하는 음식도 다르고 방식도 다르지 않습니까? "
 
 이 우주의 일체 중생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음식을 섭취해서 생활을 합니다. 이 음식의 섭취 방법에는 입으로 씹어서 먹는 단식이 있고 기운을 느껴서 음식을 섭취하는 기식이 있습니다. 또 몸으로 감촉 하여 섭취하는 촉식, 그리고 선정의 즐거움으로 음식을 삼는, 희락이 음식이 되는 곳도 있습니다. 지옥 중생들처럼 근본 업식으로 음식을 삼는 곳도 있습니다. 그곳은 고통 자체가 음식이 되고 에너지원이 됩니다.
 우리 인간은 대체적으로 입으로 섭취하지요. 그러나 일부는 코를 이용하여 섭취하고, 일부는 피부의 감촉, 그리고 일부는 눈으로, 일부는 귀로 섭취해서 생명을 유지합니다.
 입으로 먹는 것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전부는 아니며 큰 역할을 할 뿐입니다.
 왜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느냐 하면 음식이라 해도 마음의 작용일 뿐, 꿈속의 환이며, 먹어도 먹는 바가 없는, 그러한 것이 곧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본질은 성품이며, 이것이 각자 원하는 음식을 만들어 냅니다.
 
 "스님, 눈이나 귀로 음식을 섭취한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해가 잘되지 않습니다."
 
 음식이라고 해도 실재로는 존재하지 않고 마음일 뿐입니다.
 아무리 음식을 입으로 잘먹어도 늘 두렵고 불안 한 속에 산다고 생각 해보십시오. 과연 건강하고 살이 찌겠습니까?
 또 누가 주위에서 자기 험담을 하고, 흉악한 소리가 좌우에서 늘 들려 온다면 과연 행복하고 살이 찌겠습니까? 나머지도 그와 같으니 잘 살펴보십시오.
 그래서 남에게 좋은 말을 하고 환경을 정화하는 것도 알고 보면 타인에게 좋은 음식을 베푸는 것입니다.
                           
 "스님, 식욕을 말씀하여 주시는 김에 '술'에 대한 것도 말씀해 주십시오..



 술에 대해서 말 안 할 수가 없군요. 주식도 아닌데 인간 생활에 영향을 많이 주니까요. 술 자체는 나쁜 음식이라고 딱 잡아서 말 할 수 없지요. 지나쳐서 나뿐 음식이 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술에 대해 많이 경계를 하시었는데 그러실 만 합니다.
 흔히 적당하면 약이 된다고 들 합니다. 그리고 서로 화합하고 단합하는 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가 적당할까요?
 취해도 실수만 안 하면 적당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고, '하루에 한두 잔이면 적당하다. 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한 기준은 없지만 술을 전혀 못하는 분은 입에 대지 않는 게 적당하겠고, 그렇지 않는 분은 먹어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정도가 적당히 아닌가 합니다.
 때로는 많이 마셔야 될 때도 있겠지요, 그러나 연속되면은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이 자리에서 생활 속의 술 이야기를 하여 봅시다. 역사 적으로, 중요한 일을 진행하는 중에 술로 인해서 일을 그르친 예가 비일비재했습니다.
 술을 때도 아닌데 마시거나, 먹었다 하면 골아 떨어질 때까지 먹는 그런 사람이라면 중요한 일의 책임자로서는 결격 사유가 되지 않겠습니까?
 왜냐 하면, 그 정도도 안 되는 정신력으로 무슨 일을 성취하고 책임을 지겠습니까? 오히려 일을 그르칠 것입니다.
 술은 용기가 나고 호탕하게도 합니다. 그러나 대인이 겨우 술의 힘을 빌려야 되겠습니까? 술의 힘을 빌려야 할 정도라면 큰일은 못 할 것입니다.
 사업상도 그렇습니다.
 성사되면 안될 일을 술 한잔하고 마음이 서로 통했다고 성사시킨다면 되는 일입니까? 인정은 있어서 좋을 지 모르나, 그 회사의 앞길이 불투명하다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 풍조가 널리 퍼져서 어쩔 수 없다면 국가적인 차원의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문제로, 어떤 직장인이 있다고 가정해 놓고 이야기 해 봅시다.
 저녁에 술에 취했다가 아침에 말끔해 졌다고 해도 위험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은 사고의 확률이 높아집니다.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구력을 요구하는 운동일 경우, 제 실력을 다 낼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물리적인 사고가 안 나는 사무직이라도 업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질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가 소속된 회사에 간접적으로나 직접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가정적으로도 충실 할 수가 없을 것이고.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나라는 장래가 문제가 됩니다. 생산성이 크게 떨어지게 마련이고 도덕적인 해이와 질서의 붕괴가 오기 쉽습니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질병하고 술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음주 습관이 어떤지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나라도 술을 많이 먹는 나라에 속합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전 보다는 술을 사람들이 잘 알아서 마신다고 보아집니다. 앞으로도 더 좋아지리라고 봅니다. 음주 문화도 점차적으로 개선이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우리나라는 술을 많이 먹는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고려 시대는 차 문화가 성했거든요. 웬만한 자리에서는 차를 마시면서 담론하고 대소사를 의논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조에 들어서면서 막걸리 문화로 바뀌고 말게 됩니다. 결국 차 문화는 사찰에서나 겨우 명맥을 잇게 되고 말았지요.
 {다행이라 할까! 절에서나 마시던 차가, 요즘은 우리 일상 생활에 자리를 잡아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차를 마십니다. 그리고 어디로 가나 전통 찻집이 있어서 차를 마실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술이 개인의 건강과 정신에 미치는 영향을 말씀하여 주십시오."
 
 술이 개인의 육체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니, 대충 정신적인 면을 언급하여 보기로 하겠습니다.
 술 중독이 사회적인 문제가 된지 오래인데, 중독은 왜 되는가? 살펴보겠습니다.
 술을 즐겁게 마시면 중독이 잘되지 않고 충분한 시간을 두고 마시되, 깡술을 마시지 않으면 중독이 잘 안됩니다. 또 마음으로 취하는데 목적을 두지 안는다면 잘 중독이 되지  않습니다. 반면에, 홧술을 마시거나 취하는데 목적을 둔다든지 하면, 쉽게 중독이 됩니다. 누구라도 3년 이상만 술을 잘못 마시면 중독이 될 수 있습니다.
 한번 중독이 되면은 마음과 몸의 모든 신경계가 변화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래서 술만 먹고도 살 수 있는 이상한 몸이 되고 맙니다.
 중독이라 하는 것은 완전히 업이 굳어지고 몸에 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중독자는 술을 오랫동안 끊었다 하더라도 한번만 입에 대면 즉시 원래 상태로 되돌아가고 맙니다.
 운전을 오래 한 사람이 안 하다가 갑자기 운전을 해도 곧바로 할 수 있는 것과 동일합니다.
 금생에는 폐인이요. 내생에는 인간 몸을 받아도 바보 천치가 되고  또 인간 몸, 받기도 힘이 듭니다.
 이것을 고치려면 처음에는 강제적인 억제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깊은 마음의 정리가 따라야 만이 비로소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중독이라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과 이웃의 고통은 참으로 극심한 것입니다.



 "스님, 성욕의 근본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성욕도 근본 욕구 중의 하나입니다. 아까 식욕도 근본 욕구 중의 하나라고 말했는데, 근본 욕이라고 해도 아지랑이 와 같고 허공의 꽃과 같습니다. 원래부터 결정적으로 실제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뿌리가 질기고 깊은가?
 한 망상이 홀연히 물결칠 때, 생각을 하고 또 하고 되풀이하면 습으로 굳어집니다. 그러면 그에 따른 행동이 있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여러 생을 두고 쌓이고 쌓인 것을 업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어느덧 한 몸을 이루게 되면 본래의 근본 바탕이 한없이 밝을지라도 욕심이 주인이 되어서 작용을 합니다. 아뢰야식에 조각 된 것입니다. 비유하면 DNA에 단단히 기록 되 버린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본래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작용을 합니다.
 따라서 마음을 하나로 돌이켜 밝은 성품 인줄 알거나 마음을 다른 곳으로 기우라면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욕심이란 알고 보면 생명의 에너지이며 성품입니다. 일체 처에 집착을 여의고 마음이 무한대 속에 위치한다면 그것을 원동력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일상 생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말해 볼까 합니다. 학생을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한참 자라고 공부 할 나이의 학생이 주관이 확실하지 못하면. 성욕이 왕성해 져서 손해를 보게 됩니다. 어떤 것인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에너지를 함부로 행동으로 낭비하면 기혈이 항상 하체로 집중되기 때문에 머리가 흐려져서 우선 공부에 진척이 없게 됩니다.
 좀더 지나치면 여기저기 기혈 흐름에 이상이 와서 눈이 햇빛을 못 본다거나 약시가 되기 쉽고 위장 장애가 나타납니다. 또 머리 쪽으로 허열이 나서 두통도 있고 비듬도 잘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기억력도 현저하게 감퇴됩니다. 더 지나치게 되면 수족이 힘을 잃어서 계단 올라 갈 때 휘청거립니다. 근육이나 뼈가 매우 약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발육이 되지를 않습니다.
 또한 종기가 잘나고 피부병이 잘 생기게 됩니다.
 
 직장인이라면 업무에 충실 할 수가 없겠지요. 아이를 생산 할 때라면 튼튼한 아이를 낳기 어렵습니다.
 중년이 넘어 가면 골다공증이라든지 관절염 등 많은 병의 원인이 될 수가 있습니다. 또 피부가 쉬 거칠어지고 얼굴에 잔주름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나이 더 들면 용모도 추해지고 만병의 근원이 될 수가 있습니다.
 
 끝없이 성을 추구하고 기쁨을 느끼면 결국에는 중독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온몸으로 즐거움을 느끼고 더 이상 가는 것이 없다고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중독이 되면 하루종일 빠져 있어도 지치지도 않는 이상한 몸으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곳곳으로 고루 돌아 주어야만 하는 기혈이 한곳으로 지나치게 집중  되게 됩니다. 그때는 몸 전체가 점점 허약해지는 것입니다.
 다른 약이라든지 음식 또는 생각으로 음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한계에 도달하면 곳곳에서 신호를 보내 오게 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은 곤란하다. 고' 그러나 그것을 무시하고 더욱 진행을 하면 덜컥 중병이 들고 마는 것입니다.
 회복하는데 수년이 걸려도 어렵습니다. 이때쯤이면 잠재의식에서 생명을 보호하려는 방어 본능이 필히 발동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즐거웠던 그것이 돌아보기도 싫어지게 됩니다.)   
 
 어디까지나 지나칠 때를 경계하는 말입니다. 지레 겁을 먹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한 원인 중에 일부가 될 수 있다는 것이지, 꼭 성욕의 과다에 의한 것만은 아닙니다. 다른 원인과 대게 합해져서 결과가 나타납니다.
 
 "스님, 행동에 의한 결과가 그와 같다고 보고요 생각으로만 욕심을 일으킬 때는 어찌 되겠습니까."
 
 이미 생각을 하면 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생각을 했다고 해서 행동에 옮긴 것과는 같지 않습니다. 생각이, 생각을 낳고 계속 연속되면 몸에 배게 됩니다. 그때는 행동에 옮길 때나 결과가 동일하게 됩니다.
 생각이란 행동보다는 강력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자꾸 되풀이하면 행동에 옮긴 것처럼 됩니다. 이런 경우는 역시 결과가 좋지 않습니다.
 
 "스님, 그에 따른 우주적인 과보에 대하여 말씀해 주십시오."
 
 지나치게 생각과 행동에 몰두하면 아까운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그것이 전부 인양 착각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한 곳으로는 만족 할 수 없게 됩니다.
 조금 지나면 그것 자체가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또 어느 정도 경과하면 그것도 식상합니다. 또 다른 분위기를 찾게 되는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것도 끝없이 이어지는 법은 없고 좋을수록 역으로 그 폐단은 큰 것입니다. 어느 땐가는 화가 되서 돌아옵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신을 파괴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가정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회 전반의 풍조가 그와 같을 때는 그 사회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내생에는 용모가 추해지고 몸이 부실하고 어리석은 몸을 받게 됩니다. 안정적인 가정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또 사랑 받는 아내나 존경받는 가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때는 전생으로부터 넘어오는 그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팔자를 탓하고 주변 사람들을  원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주 지나치면 인간의 몸을 받지 못하고 악도에 떨어지는 원인 됩니다. "남을 해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는데, 그 무슨 말인가?" 할 수도 있겠으나, 그 업이 중독을 너머 한 단계 더 오르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심각하게 생각 할 것은 없습니다.
 지나치거나 그것이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는 마음을 돌이켜서 종교에 귀의해 열심히 공부를 하면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렇지 못하면 봉사 활동이나 연구 활동을 한다던 지 운동에 전념하면 차츰 문제가 없어집니다.
 
 다 허망한 마음일 뿐입니다.
 행동은 정숙하여도 마음이 정숙하지 못하면 결과는 별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조 시대의 여인들은 억압적인 사회 분위기로 행동이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마음대로 표현 할 수도 없었고, 더구나 행동에 옮기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면 다 성스러운 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느냐?
 마음이 평화롭고 여유로 가득 찼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그 와 반대로 투기와 욕구불만에 가득 차 있었다면, 조금 전에 이야기한 과보와 대동소이합니다.
 
 이 에너지를 완전히 돌이켜서 진리를 탐구하는 대 사용한다면 해탈의 길로 나갈 것이고. 마음을 돌이켜서 보시행과 보살행을 한다면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겠지요.
 
 사회 풍조를 역사적으로 보면, 조금 건전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어서, 돌고 돕니다. 윤회한다고나 할까!
 
 생각이란 집착이고 집착은 옮겨가는 대로 이름이 붙습니다. 식욕이니, 성욕이니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결국 욕심의 종류는 여러 가지이나 몸통은 하나입니다. 하나가 참으로 끊어졌다면, 백 천이 끊어질 것입니다.
 
 "스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성이 너무 문란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처방을  말씀해 주십시오."
 
 이제부터는 그 본질을 제대로 알고 무조건 죄악시하기보다는 인생을 헛되이 살지 않도록 확실하게 교육을 할 때가 되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손해 날 짓은 안 하려고 하는 본능이 있습니다. 제대로만 인식을 한다면 자연히 바로 갈 것입니다.
 지금이 말세다 뭐다 하는데, 과거 역사에는 지금보다 훨씬 문란한 시절이 많이 있었습니다. 역사를 연구해 보면 곧 알 수 있습니다.



 "스님, 수면욕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시오."
 
 수면욕이라 하면 좀 생소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3분의 1을 잠자는데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수면이 그만큼 중요한 것도 사실입니다.
 잠도, 닦는 사람에게는 수마라 하여 극복의 대상이 됩니다.
 다른 욕심과 같이 본래부터 존재하는 그런 불변의 욕구도 아닐 뿐만이 아니라, 잠을 자지 않으면 안 된다는 법도 없습니다.
 
 여기에서 잠의 종류를 분류해 보겠습니다.
 생각이 오락가락 해서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는 잠이 있습니다. 머리가 띵하거나 두통이 있는데, 불면증도 이 종류에 속한다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통 일반적인 잠이 있습니다. 깊이 자면서도 언제든지 반응 할 수 있고 자고 일어나면 개운합니다. 건강한 사람의 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도, 정신도 죽은 듯이 자는 잠이 있습니다. 너무나 지쳐 있을 때자는 잠입니다. 업어 가도 모른다고 하는 잠이지요.
 몸이 아주 피곤 한데, 잠을 못 이루고 설치는 잠이 있습니다. 생각을 많이 했을 때나, 다리를 많이 사용해서 혈류가 다리로 편중될 때 그렇습니다. 아니면 약이나 기타 사유로 몸안에 열이 많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몸은 자는데 정신이 깨어 있는 잠이 있습니다. 수행 정진하는 사람의 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신은 일부 자는데 몸은 자지 않고 있는 잠이 있습니다. 무사들의 잠입니다.
 몸은 자는데 공포에 시달리는 잠이 있습니다. 잠자리가 바뀌었거나 주변 소리를 집중하면서 잠을 청하면 그렇습니다. 근본으로 주위를 경계하면서 자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면 잠재의식이 왕성하게 활동을 해서 공포를 불러일으킵니다. 이때는 정신이 자기도 모르게 귀에 모여 있습니다.
 또 몸에 병이 들어서, 뒤척이면서 잠을 못 이루는 잠이 있습니다.
 
 특수한 사람을 빼고는 잠을 자야 할 것이니 올바른 잠에 대해 말 해 보겠습니다.
 흔히 시간만 나면 누워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 허리 아픈 사람들이 많이 있게 마련입니다. 배와 허리에 혈이 잘 안 돌아서 냉해진 관계로 탈이 난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허리가 아프다고 더 자주 눕게 됩니다. 그럴 때는 오래 눕지 말고 운동을 해야 될 것입니다. 그리고 배나 허리를 따뜻하게 해야 합니다. 그 반대로 허리를 무리하게 사용해서 탈이 난 사람은 허리를 안정시켜야 났겠지요.
 잠을 너무 많이 자거나 수행자가 늘 혼침에 빠져 있으면 몸이 이완되어서 질병에 잘 걸리는 몸이 됩니다. 또 차가운 체질로 바뀌어  순환기 질환이 오기 쉬운 몸이 됩니다. 이런 경우 열심히 운동을 하고 혼침을 줄이면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기나긴 밤을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될 것인가?
 이런 사람들은 늘 피곤하고 잠을 꼭 자야만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립니다. 왜냐? 잠을 못 자니 피곤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피곤하고 잠을 이루지 못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잠을 안 자도 죽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잠을 절대로 자려고 하지말고 염불을 열심히 한다든지, 화두를 들고 공부를 하면 자연히 치유가 되고 말 것입니다. 피곤 하드라도 무시 해버리고 잠을 자지 말아야 됩니다.
 또한 습관적으로 이 걱정 저 걱정하는 것을 즉시 중단해야 합니다.
 걱정할게 오죽 많겠습니까? 그렇지만 걱정해 봐야, 주변에 폐만 끼칠 것이니, "돼 가는 대로 내버려두자. 하고" 웃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보편적으로 잠을 편하게 자는 법이라면 한가로운 마음을 가지고 미소짓고 잠을 자면 됩니다. 그러면 건강에도 좋고 자고 일어나면 가쁜 할 것입니다.
 걸음을 많이 걸어서 잠을 못 잔다면 발을 벽에 십분 정도 올려놓았다가 잠이 들면 될 것이고, 생각을 많이 해서 머리가 띵하고 잠이 안 온다면 머리에 수건을 덥고 자면 잠이 편하게 들게 됩니다.    이때 혹시 답답하면 수건을 치워버리고, 반대로 두 무릎을 생각하고 잠이 들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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