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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벽공스님 번역, 강의한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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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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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5. 실다운 진리를 보아라 - 금강경강의, 벽공스님번역강의, 불교,

2001 5월 28일 

(여래,신상,32상,80종호,실다운 진리,) 
⊙금강경: 제5, 실다운 진리를 보아라.
 
원문
如理實見分, 第五.
여리실견분, 제오.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身相 見如來不 不也世尊 不可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신상 견여래부 불야세존 불가
以身相 得見如來 何以故 如來 所說身相 卽非身相
이신상 득견여래 하이고 여래 소설신상 즉비신상
佛告須菩提, 
불고수보리,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則見如來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번역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신상(身相. 몸의 특징)으로 여래(如來)를 볼 수 있겠느냐?"
"아니옵니다. 세존이시여, 신상으로는 여래를 볼 수가 없사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여래께서 신상이라고 말씀 하시는 것은 사실 신상이 아니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강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신상으로 여래를 볼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여기서 질문하신 의도를 살펴야 합니다.
신상이란 부처님 몸의 특징인 32상과 80종호를 말씀하시기도 하지만, 모든 듣고 보고 느껴지는 모양을 총칭합니다.
만약 32상을 기준으로 '부처님이시다. 하고' 판단을 한다면 마땅히 전륜성왕도 부처님의 몸매를 닮았기 때문에 '전륜성왕도 부처님이다.' 할 것 아니겠습니까.
수행자가 상념에서 부처님을 생각할 때, 눈앞에 부처님이 나타나면, '와, 부처님이 오셨구나. 하고' 또 집착을 할 것입니다.
꿈에 부처님을 봐도 자신의 상념인 줄 모르고 기뻐 날뛰겠지요. 만약 이런 식으로 수행을 한다면 진정한 부처님을 뵙기보다는 망상과 망념에 의한 착각의 수행에 빠져들게 될 것입니다.
 
사구게)
"무릇 모양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한 것이니. 만약 모든 상을 상 아닌 것으로 보면 곧 여래를 보리라." 앞서 주고받은 뜻을 네 줄의 게송으로 단번에 들어내 놓은 것입니다.
사구게는 앞의 내용을 대개 한 번 더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과 간략하게 함축시키는 뜻이 들어 있어요.

게송은 경이나 논서에는 언제나 등장을 합니다. 그중에서도 네 구절의 사구게는 가장 중요하며 즐겨 인용되는 구절들입니다.
게송은 후인들이 부처님의 법을 찬탄하고 혹은 들어내기 위해서 송을 하기도 했지요. 또는 경전 해설을 할 때 평창을 하기도 합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은 "무릇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형상과 느낌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며 허망한 것이다. 옳고 그르고 심지어는 도나 법까지도 실로 허망한 것이다. 모든 모양이 부질없고 정해져 있지 않은 줄 정말 사무쳤다면 그때야 비로소 미망의 언덕을 넘어서 본래 갖추고 있는 본질을 확인할 것이다. 이를 일러서 여래라고 하는 것이다." 이런 간곡한 말씀이십니다.
 
모양으로는 구분이 안됨)
부처님을 보려면 진실로 법을 보고 하나가 돼야 합니다.
어느 한 특징으로 저 분이 부처님인지, 아닌지 또는 깨달음이 있는지. 없는지를 누구나 알 수 있게 딱 부러진 특징이 나타난다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어떤 스님이 신도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때 그 신도들이 그 스님의 법을 보고 존경하겠어요.
대체로 자비롭고 온화하고 행이 바름을 보고 존경하게 되는데요.
왜냐하면, 법이란 모양도 꼴도 없고 느낄 수도 없으므로 중생은 누가 깨달은 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과 행동은 누구나 비슷하기 때문에 언어로도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선문답을 유창하게 확실하게 주고받는다고 해도 깨달음이 아니고, 또 잠시 어떤 경계를 깨달았다고 해도 그저 경계일 뿐, 실다운 깨달음이 아녀서...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도 모양에 떨어져서 착각하게 되는데, 하물며 눈이 없는 신도나 수행자가 어떻게 깨달은 자를 보며 무엇이 깨달음이지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건 모릅니다.
그래서 행동이나 모양이 자기가 원한 모양이면 흠감하고 즐겁게 받아들이며 신심을 표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부처가 무엇인지 알고자 한다면 의지하는 마음도 구하는 마음도 버리고 부처님마저도 깨달음마저도 초월하면 무엇인지 조금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와같이 깊고 깊어져서 놓을 수도 없고 잡을 수도 없을 때, 감도 없고 옴도 없을 때, 그 법을 조금 알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성불하신 특징으로 거론되는 32상조차도 그것만으로 판단해서 부처님이 아닌지, 또는 부처님인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 부처님의 진실한 가르침이며 실제로 그런 것입니다. 
경전에 보면 마왕이 때로는 부처님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신통력)
그렇다고 신통력으로 판단한다 해도 그 또한 옳지가 않은 것입니다. 마왕이 신통력을 보인다고 바른 법이다. 부처다. 하면 되겠는가요?
불교경전에는 다른 종교의 경전에 약간 언급되는 것과는 달리, 불교경전에는 부처님과 수많은 제자의 무한한 신통력을 보이는 대목들이 수도 없이 등장하고 영험설화는 책속이나. 사찰의 전설에, 끝도 없습니다.
물론 지금 보는 금강경같이 반야부 소속 경전에는 신통의 이야기들이 거의 자제되고 있긴 하지만 그렇습니다.
아무튼, 너무 많이 등장하고 언급되기 때문에 불자들은 별 의미를 두지 않기도 해요.
신통력이 있다거나 없다는 것으로 부처님을 가릴 수도 없고 진정한 부처님의 모습을 볼 수가 없으며. 그런 방식으로는 결코 참다운 여래를 볼 수가 없다는 말씀도 되겠습니다.
신통력이란 그때그때 인연과 업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수행의 힘으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모두 인연과 습관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가상일 수도 있고 현실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 어떤 형상으로도 부처의 실상을 알 수가 없습니다.
현대과학이 일으키는 신통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학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에 보통으로 지나치는 것입니다. 과학을 신통이라고 보아 준다면 그 정도의 대단한 신통도 없겠지요. 한계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러나 과학이 부처가 아니지요.

간혹 부처님 이후로도 거룩한 분들이 많이 나오셔서 그때마다 수많은 추종자가 찬탄을 하고 '보살의 화신이다.' '부처님의 화현이다.'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이다. 하기도 했지 않습니까? 그중에는 얼토당토않은 광신자들의 집단도 없지는 않았으나, 참으로 훌륭한 성인들도 많았던 것입니다.

인도의 용수, 그리고 마명보살을 보아도 생전에 그들을 필적할 만한 분들이 없었고 거룩할 뿐만 아니라, 능력의 한계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제자가 거리를 메웠으며 헤아릴 수 없는 중생들로 하여금 빛이 되어 주고 깨달음에 들 게 했던 것입니다.
이웃 나라 중국의 영명연수 선사 같은 이도 자비로워서 생전에 보살 칭호를 듣고 부처님의 화현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으로 구분을 한다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어떤 외도들은 땅속에 오래 파묻혀 있기도 하고 호흡을 하는지 안 하는지 모를 정도로 숙달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이를 보고 어리석은 무리가 추종해 말하기를 '참으로 거룩하고 대단하십니다. 부처님이십니다.'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에서 부처의 실상은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리)
사리신앙이 있습니다. 부처님이나 고승들이 열반에 들면 사리가 나오지요. 이러한 사리를 보고 큰 신심을 발하기도 하지만 이 또한 본 모습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사리가 깨달음의 표상도 아니고 사리 자체가 진리도 아닙니다.
사리에는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깨달음과는 상관없이 기혈이 충만하면 나오는 것이 사리입니다.
정말 단단하고 아름다운 사리는 물과 불, 그리고 깨뜨리는 타격에 강합니다. 그래서 정신과 몸의 견고함과 정순함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깊은 깨달음의 징표는 될 수가 없고, 그런 사리에 매달려도 삿된 것이며 바른 수행자의 자세가 아닙니다. 그보다 천 배 더한 그 무엇에도 현혹되고 집착을 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종종 웃깁니다.
우담바라가 나왔다. 혹은 이슬만 이상하게 내려도 사람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절절매지요.
모두 집착과 헛된 욕심이 앞으로 가려서 스스로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불상에 우담바라가 피었다고 사람들이 몰려들고 신기해했지만, 어찌 곰팡이와 별다를 바가 없는 것이 천상의 우담바라 일 것이며 그것이 부처님의 영험이 될 것입니까.

부처님의 영험이 그것뿐이라는 말씀입니까?
말세에 법이 약해지는 세상에는 누군가 지혜만 조금 있어도 대단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수행자 중에도 복에 매달리는 현상이 일어나서 남보다 복이 조금만 더 있어도 도가 높아서 복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공'이라는 말을 빌려서 법을 나타내는 일이 많습니다. 공이란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아니고 아무것도 결정된 모습이 실제로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차원에서 막힘없이 회통되어 있기 때문에 공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무상이란 용어도 비슷하기는 합니다. 본래 서로 비교되고 대립하는 상이 없으며 근본이 공 하므로  항상 머물지 않고 고정된 모양이 존재하지 않기에 무상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있는 것, 없는 것이 모두 초월 된 자리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 무상이다. 느낄 수도 볼 수도 없어요. 있다면 이미 무상도 아니고 공도 아닙니다.
무상의 경계를 느꼈다. 한다면 그건 무상이란 상념에 들어간 것뿐입니다.
금강경에는 무'라는 용어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낙처는 중도의 이치를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윤회를 한다. 복이 없다 있다. 옳다 그르다. 수명이 길다 짧다. 혹은 정법의 시대다 말세다. 이런 모든 모습을 분별하고 그 이치를 탐구하며 원리적으로 해설하는 것이 유(有)의 경전들도 많지요. 
대표적으로 법화경이나 아함경 계통의 경전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지수화풍)

불교에서 현실의 세계를 설명할 때, 육신을 지수화풍의 사대가 조합된 것이라 말을 합니다. 단단한 바탕이 되는 '땅'과, 유연하여 어디라도 포함되고 합이 되는 '물,' 그리고 만물을 생장시키고 움트게 하는 '화,' 마지막으로 물과 불, 땅을 움직이게 하는 '풍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을 인과라고 표현하며 모이고 흩어지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해 가는 걸 진화한다. 창조한다. 하기도 하니 우리 눈앞에 항상 윤회가 펼쳐지며, 반복되는 과정에서 인과 과가 만들어지고 결과를 또 보게 되는 과정이 되풀이됩니다.
우리 몸도 또한 그렇습니다. 몸이나 대자연은 시대와 처한 환경에 따라서 일정한 조합과 흐름을 유지합니다. 그러면서 변천을 거듭해 가는 것입니다. 이때 생각과 행동이 반복되면서 습관이 되고 업이 돼요.
이 결과를 두고 운명이라고도 합니다.
그리고 운명은 자신의 반복되는 습관이 만들며, 그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큰 집착의 덩어리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이런 인' 때문에 또 결과가 다가오니 인과응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과응보는 항상 눈앞에 면면히 있어요.
늙기도 하고 병이 들기도 하면서, 그런데 적응할 여유나 시간도 없이 갑자기 변천이 와서 지수화 풍의 균형이 무너지면 재앙이 되는 것입니다.
물난리가 나거나 한발이 들고 폭풍이 몰아쳐서 모든 것을 쓸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몸도 일정한 온도와 오장육부, 그리고 모든 신경계의 약속된 작용이 무슨 이유로 깨어지면 병이 되는 것입니다.

조화가 서로 맞지 않아서 활동이 정상이 아닌 상태로 오래 지속이 되면 이를 일러서 만성병이라 하는 것이며, 급하게 균형이 무너지면 급성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너지는 원인을 밝혀서 예방하기도 하고 치료를 하는 것입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입니다. 마음 습관, 음식의 부조화, 집이나. 환경, 그리고 병원균 등 여러 가지가 있겠습니다. 이 모두가 인' 과' 속에 있습니다.
위의 무나 유, 그리고 중도는 상대적인 듯하지만 다 같은 뜻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있다 해도 있는 것이 아니며 없다 해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신상이라는 것도 알고 보면 허망한 실체이고 여러 가지 모습을 말씀하시기는 하지만 결정된 그런 모양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상이라고 해도 신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갖추신 32상은 거룩하고 아름다우며 행위 또한 자비롭고 복과 지혜를 완벽하게 구족 해서 누구나 한번 보면 감복을 하지 않는 사람들이 없었다는 것이 여러 경전의 여기저기에 있습니다. 능엄경에 보면, 아난존자도 부처님의 거룩한 모습을 보고 출가를 결심했다고 나옵니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 도를 닦는 최종목표가 성불이며 형상으로는 부처님의 32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32상이나 다른 특징들이 그리고 성불과는 상관이 없으며 그것이 목표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자칫 금강경을 보면서 주의해야 할 것이 있어요. 모든 형상이 본래 없다는 단견에 빠질 우려가 있다는 것입니다.)
 
주))
* 32상: 1.발바닥이 편편하다 2. 손과 발 바닥에 수레바퀴 같은 손금이 있다.(법륜상) 3 손가락이 가늘면서 아름답고 길다.4. 손 발이 한없이 부드럽다. 5. 손가락·발가락 사이 마다 엷은 비단결 같은 막이 있다. 6. 발꿈치가 둥글다. 7. 발등이 원만하게 둥글다. 8. 종아리가 둥글면서 사슴 다리 같이 미끈하다. 9. 팔의 길이가 길어서 펴면 손이 무릎까지 내려간다. 10. 생식기가 오무라 들어 몸 안에 숨어 있어서 말의 그것과 같다.
11. 키가 두 팔을 편 길이와 같다. 12. 털구멍마다 새까만 털이 나 있다. 13. 몸의 털이 위로 쏠려 있다. 14. 온몸이 황금색이다. 15. 몸에서 솟아나는 광명이 한 길이나 된다. 16. 살결의 보드랍기가 천상의 도라면 같고 매끄럽기가 한량이 없다. 17. 두 발바닥· 두 손바닥· 두 어깨 ·정수리가 모두 둥글고 평평하고 두텁고 튀어 나오지 않았다. 18. 두 겨드랑이가 편편하다. 19. 몸매가 사자와 같이 균형이 잡혀 있다. 20. 몸이 곧고 단정하다.
21. 두 어깨가 둥글고 두툼하다. 22. 치아가 40개다. 23. 치아가 희고 가지런하며 빽빽하다. 24. 송곳니가 희고 크다. 25. 양 뺨이 사자처럼 원만하게 생겼다. 26. 침이 감로수와 같이 달다. 27. 혀가 길고 넓어서 위로 뻗으면 얼굴이다 덮인다. 28. 목소리가 맑고 멀리 들리고 음악과 같이 듣기에 좋다. 29. 눈동자가 바르고 검푸르다. 30. 속눈썹이 소의 속눈썹처럼 시원스럽다. 31. 두 눈썹 사이 미간에 흰털이 나 있는데 곱게 말아져 있으며 펴면 일장이 넘는다. 32. 정수리에 살 상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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