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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벽공스님 번역, 강의한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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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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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제 3. 대승의 바른 종지 - 금강경강의, 벽공스님번역강의, 불교,
(금강경,금강경강의,벽공스님번역강의,불교명상수련원,)


2001, 5월 16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태생,난생,습생,화생,보살마하살,) 
⊙금강경: 제3, 대승의 바른 종지. 
 
원문
大乘正宗分, 第三. 
대승정종분, 제삼. 
 
佛告 須菩提 諸菩薩 摩訶薩 應如是 降伏其心 所有一切 
불고 수보리 제보살 마하살 응여시 항복기심 소유일체 
衆生之類 若卵生 若胎生 若濕生 若化生 若有色 若無色 
중생지류 약난생 약태생 약습생 약화생 약유색 약무색 
若有想 若無想 若非有想 非無想 我皆令入 無餘涅槃 而滅 
약유상 약무상 약비유상 비무상 아개영입 무여열반 이멸 
度之 如是滅度 無量無數 無邊衆生 實無衆生 得滅度者 何 
도지 여시멸도 무량무수 무변중생 실무중생 득멸도자 하 
以故 須菩提 若菩薩 有我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則非菩薩 
이고 수보리 약보살 유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비보살
 
번역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보살마하살이 응당 이와같이 그 마음을 항복 받을지어다. '세상에 있는 온갖 중생의 무리인 난생, 태생, 습생, 화생의 사생과 유색, 무색, 유상,무상, 비유상, 비무상을 내가 모두 남김없이 열반에 들게 하여 제도 하리라. '이와같이 무량무수의 가' 없는 중생을 제도하지만, 실제로는 제도를 받는 중생이 없느니라. 무슨 까닭이겠는가. 
수보리야, 만일 어떤 보살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있다면 곧 보살이 아니 니라."
 
강설
모든 보살이 자기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항복 받아야 하느냐 하면, "이 세상 모든 유정 무정들을 제도하여 무여열반에 들 게 하리라." 결심 하되, 자기 마음 속의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과, 태란습화 일체중생을 남김없이 제도해야 합니다. 
따라서 일체 중생을 제도한다지만, 실로 한 중생도 제도 받는 이치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혹시라도 어리석게 대천세계 중생을 쫓아 다니면서 제도하려 한다면 망념이 됩니다. 
만약 보살이, '중생을 제도했다고' 염두에 둔다거나, 또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다면 이는 진정한 보살이 아닙니다. 
왜 그럴까요? 
진리다. 선이다. 악이다, 하고 머물면, 그 자체가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며, 망상과 번뇌이며, 윤회의 그물에 떨어지므로 그런 것입니다. 
또한 최상승이 아닌 이승의 수행인지라. 바른 수행자는 특히 피해야 할 마음 가짐입니다. 
 
보살마하살) 
모든 보살마하살이란, 큰 원력으로 윤회의 그물을 벗어나려는 발심 수행자를 두고 말하기도 하지만,  위 없는 깨달음은 성취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려는 큰 보살을 두고 일컫는 말입니다. 
마하살이란 범어입니다. 해석을 하자면 마하는 광대한, 큰, 그런 뜻이며 살이란, 보리살타를 줄여 장식하는 말이니 대보살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태란습화) 
불교에서는 일체중생의 생성되는 모양을 크게 네 가지 형태로 분류합니다. 그 네 가지가 무엇인가 하면, 태생 난생 습생 화생입니다. 
닭 오리 공작처럼 알로 생명이 이어지는 종류를 '난생'이라고 하며, '태생'은 인간이나 소, 말처럼 어미 몸속에서 사지를 이미 갖추고 태로 태어나는 경우를 태생이라고 합니다. 
'습생'은 모기나 파리, 그리고 미물 곤충처럼 습에 의지해서 나거나 분열로 나는 것을 습생으로 분류합니다. 
'화생'은 부모의 몸에 의탁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업식으로 홀연히 몸을 받으면 화생이라고 합니다. 
천상과 지옥중생들이 이에 해당이 되고 겁초의 모든 중생들은 인간계든 어디든 화생이 되는 것입니다.  천상과 지옥은 다 화생이며, 아귀계는 화생과 태생의 이종을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축생계와 아수라계는 태란습화 사생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인간은 겁초를 제외하고는 태생입니다. 
간혹 희귀하게 난생이나 습생으로 몸을 받았다는 것이 경전에 나오기도 하고 설화에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태생이기 때문에 인간은 태생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육도중생) 
여기서 마땅히 육도세계를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육도세계란 불교경전에 나오는 세계로 천상, 이수라, 인간, 축생, 아귀, 지옥계를 통 털어서 육도세계라고 이름 합니다. 이러한 하나의 육도세계가 1,000개 무리지어 있는 것을 소천세계라고 하며, 소천세계가 또 1,000개 무리지어 있는 것을 중천세계라고 합니다. 
중천세계가 또다시 1,000개 무리지어 있는 것을 대천세계라고 이름 하며, 이렇게 다시 중중무진으로 대천세계가 한없이 펼쳐지는 것을 삼천대천세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위와같은 삼천대천세계는 중중무진으로 차원이 엉켜 있고 과거 현재 미래 시간과 공간이 또한 엉켜 있지만, 요연하게 질서를 유지하면서 균형을 이루고 인연의 수레를 굴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티끌 속에 갈무리되니, 모두가 한마음 한 덩어리인 것입니다. 
 
예토 정토)
삼천대천세계란 흔히 예토라고도 합니다. 
예토란 새로 생기고 무너지는 것이 되풀이되고 끝없이 윤회를 거듭하기 때문에 의지할 만한 곳이 못된다. 해서 예토라고 하지요. 
그 반면에 윤회가 없는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건립된 청정한 불국토를 정토라고 구분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자면 극락세계는 정토라고 하지요. 
예토든 정토든, 결국은 하나의 바탕이며 둘이 아니지만, 구분을 할 때는 그렇게 합니다. 천상에서 지옥까지 모인 1 세계를 육도중생계라고 하며, 다시 그 안에서 삼계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즉, 욕계, 색계, 무색계로 구분합니다.

욕계 색계 무색계 유색 무색)
욕계란, 욕심이 치성한 지옥으로부터 아귀, 축생 , 인간 ,아수라 그리고 천상 제 7천인 마천까지를 욕계라 하고 (합, 12세계) 제 8천 범신천부터 29천 아가니타천까지를 색계라고 합니다.(합, 22세계)또 무색계는 제 30천인 공무변처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를 무색계라고 합니다. (합, 4세계) 그렇게 해서 천상 만을 논한다면 모두 33천이 되는 것입니다. (지옥부터 논하면 합 38세계)그리고 유색 무색이란 탐욕심은 거의 사라져서 맑고 청량하기 때문에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남녀가 없으며 상대적인 것이 소멸이 되었으나 아직은 완전히 모습을 여의지 못했기 때문에 모양과 구분이 있습니다. 
어떤 모양의 세상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색이라 합니다. 색계천들이 이에 해당이 됩니다. 무색은 미세한 정신의 걸림만이 있기 때문에 상대적인 대상이 아주 사라지고, 물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무색이라 하는 것입니다. 
무색은 확연한 물질의 모양은 없는 것입니다. 무색계천들이 이에 해당이 됩니다.
 
유상 무상 비유상 비무상) 
유상, 무상은 생각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는 세계입니다. 무색계의 공무변처와 식무변처같이 아주 미세함이 남아 있는 경우가 이에 해당이 되고 무상처 같이 생각이 아주 없는 세계가 무상에 해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상, 비무상은 비상비비상처와 같이 미세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도 아직은 중생이고 아주 원천적인 윤회의 씨앗이 없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때가 되고 인연이 발동하면 다시 온갖 경계에 들어서 윤회를 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세계를 해탈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며 멸진정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인도의 외도들은 위에서 언급한 경계를 가지고 해탈로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부처님이 이를 부정하고 "그 세계는 윤회하는 세계이며 '나'라는 것을 완전히 떠나지 못한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위에 언급하였듯이 모두가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으로 인해서 생기는 세계며 느끼는 세계입니다. 나'라는 망상이 돈발하여 빚어지는 정신세계이며 그렇게 실상의 세계로 느끼게 되는 세계인 것입니다. 
위에 말한, 모든 세계는 근본이 허망하며 이슬과 같고 혼돈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러나 있다고 해도 한방망이요. 없다고 해도 한 방망이입니다. 

실로 정해짐이 없고 없다는 것도 없으니. 사량으로 분별해서 알 길이 없습니다. 분명하고 분명하지만 모양도 꼴도 이름도 없으니 무엇을 태란습화라고 할 것인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한 한없고 끝없는 중생을 보살 마하 살은 멸해서 제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마땅히 마음을 항복 받아야 할 것이다."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멸하고 황복 받을까요? 
밖으로 크게 나눠서 보면 한없는 삼천대천세계가 있고 안으로 보면 삼천대천세계의 업과 번뇌망상 그리고 천차만별의 세계가 자기 생각 속에 두루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안과 밖이 둘이 아니어서 같이 전개되고 비추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눈앞의 삼천대천세게, 삼라만상이 결국은 자신의 마음의 표상입니다. 보이고 들리는 모든 중생계가 나의 마음이며 모습이고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을 항복 받을 때 일체중생을 제도하는 것입니다. 

다시 티끌을 날립니다. 

몸의 세포 하나까지도 모든 씨앗을 아주 작은 단위 속에 감추고 있습니다. 
지난날 익힌 습관이 오늘날 어떤 모습과 환경을 만들 듯이 지금도 어떤 특정한 생각과 습관 속에 또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온종일 청정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유지해서 천상세계인 도리천의 마음 쓰고 있는 분들도 있을 것이고, 온종일 허공과 같이 텅 빈 마음을 써서 세상은 공 하다는 느낌 속에 살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현세에 공무변처의 마음을 쓸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냄과 분노로 얼룩져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지옥의 마음을 쓰고 그 언저리에 거닐고 있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안팎으로 볼 때는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기까지, 축생의 마음까지라도 고루 갖추고 있는 것입니다. 다만 습관으로나 환경으로 현재 표면에 나타나고 있는 마음과 행동이 무엇이냐.? 그것이 다른 것입니다. 
또 일시적일 수도 있고 상당히 굳어져서 일생을 좌우하고, 내생의 다른 모습을 확고하게 만들고 있는 행위와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보살은 마땅히 두 마음과 분별심이 없어서 머무른바 일체가 본래 청정하고 불멸이며 얻음이 없고 잃을 대상도 없다는 이치를 자각하기에 각성하였다고 하며 보살이라고 이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천상도 지옥도 둘이 아니며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니며 시끄럽고 고요함이 본래 둘이 아님을 자각합니다. 
부처도 중생도 홀연히 떠납니다. 
거듭하여 중생심은, 무량무수의 세계를 순간순간 창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세계에 어느 덧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세계에 스스로 갇혀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라고 하는 개체입니다. 
수많은 나 속에 빠져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무릇 그것도 부족해서 환경이나 책을 통해서 다시 경험을 축적하고 지식을 받아들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또 다시 빠져서 다른 것과는 담을 쌓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무수한 경계를 일러서 또 중생계라 하고 중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중생은 무수 무량하면서도 곧 하나의 의식경계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스러운 경계나 번쩍이고 밝은 경계, 여타 좋은 느낌, 환희로운 세계나 경지라도 결국 윤회하는 중생계인 것입니다. 
보살의 마음은 본래 얻거나 버릴 수도 없으며 항상 영원히 쓰고 떠나 본 적이 없어요. 그러므로 이 자리는 "제도를 받는 다. 제도를 받았다." 자체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보살마하살이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혀 있다면 그것은 인상 아상 중생상 수자상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상 인상 수자상 중생상)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란 무엇일까요. 
생각이 꿈을 만들면 어느 덧 꿈속에 수많은 ,개체를 만나고 네가 그 의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상이란, '나'라는 개체는 여러 가지 느낌이나 의식의 조합(오온)인데도 자칫 착각을 해서 "이것이 나다. 하고" 어느 한 모습이나 의식에 천착을 합니다. 
그렇게 "이것이 나다." 하고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아상이라고 합니다. 허공을 '나'라고 하기도 하고 걸어 다니는 몸뚱이를 '나'라고 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성스럽고 청정한 경계를 '나'라고 집착하기도 하는 것이며, 혼을 남에게 의탁하면서 그를 '나'라고 하기도 하는 등, 변화가 무쌍합니다. 
생활 속의 '나'를 살펴보아도 그렇습니다. '나'를 내세우면서 좌우와 충돌을 하기도 합니다. 
아무튼 생각하고 판단하는 모든 것과 가치관 본능, 등이 모두 생각의 조립이며, 자기라는 틀이며, 아상이라 합니다. 
'나'라는 의식이 강하면 다툴 일이 자주 생기고 남을 이해 할 수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영리할지라도 지혜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아상이 적당하면 영웅적일 수도 있고 용기도 있겠지만 지나치면 소인이 되고 염치가 없어지기도 하며 자존심이 지나쳐서 인생이 고달파지기도 하는 것입니다. 
학문이나 도를 닦아도 진취를 이룰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더 지나치면 걸음마다 악업을 짓게 됩니다. 비록 선한 행위를 한다 해도 결과는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상은 사람이 겸손하다고 없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종일 말없이 바보같이 사는 사람이라도 "아상이 없다 "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상이 없으면 밝고 밝습니다. 그러나 아상이 많으면 너무 겸손하다든지, 점잖다든지, 착하다든지, 거칠다든지, 영리하다든지, 악하든지 거짓말을 잘한다든지, 남의 것을 탐하든지, 이런 저런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인상은, 사람이라는 개체가 생기고 부터 만들어진 모든 것이 그에 속합니다. 
사람이 생기고 부터 가치관도 만들어지고 도덕관도 만들어지는 것이며 도구도 사용하고 과학도 발전을 시킵니다. 또 가족도 구성하고 국가도 구성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사상도 종교도 만들어 갑니다. 

이런 일련의 모든 조립된 과정들을 인간이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애초에 없다면 존재하지 않는 모양들입니다. 
그런데도 원래부터 영원히 존재하는 양, 착각을 합니다. 이 것이 인상입니다. 
또 사람의 경계에 사로 잡혀서 다른 것을 구별하는 것도 인상이라 합니다. 

소나 말, 그리고 하찮은 미물을 보고 "인간은 저들과 다르다. "또는 우리 종족은 저 종족과는 다르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신분은 높다, 아니면 본래 노예 신분이다. 인간은 우월하다. 인간은 본래 악하다, 또는 착하다. 우주의 중심이다. 우주에 비해서 인간은 별 볼일 없는 중생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생각에 사로 잡힌 의식과 행동을 모두 인상이라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신분이 높고 재물이 많으면 본래 출신이 그렇고 당연한 것으로 착각을 해서 위세를 부리고 악업을 지으면서도 스스로는 까마득히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 간에도 부모가 자식을 자기 소유물로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자식은 생각하기를, 부모는 응당 자기를 길러주고 재산을 물려 주어야 하는 것으로 단정을 지어 버리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런 모든 것이 인상으로 인해서 발생을 하게 됩니다. 
중생상이란, 인간계가 있고 천상도 있으며 지옥도 있다. 혹은 '중생계는 허망해서 없다. 하고' 생각을 한다든지, 있다고 굳게 믿는 것, 그리고 돌고 돌면서 윤회를 한다고 굳게 믿는 상견이나, 아니면 윤회는 없다는 하는 단견, 또는 중생계를 마음 대로 평가하고 받들고 예속되면서 들어가는 것. 세상은 누가 창조를 했다. 하기도 하고, 이것이 진리다. 고집하는 것. 
온갖 사상과 그물 같이 만들어지는 법. 또 온갖 세상의 법칙은 유한한 것이며, 그때 그때 필요에 따라서 만들어지고 변천하는 것인데도, 마치 원래 진리이며 생멸하지 않는 것으로 착각을 해서 고집을 하는 것. 이런 것이 모두 중생상입니다. 

세상의 온갖 상대적인 법칙이 중생상이 된다고 보면 될 것입니다. 
또 다양하고 복잡한 세계를 본래 있고 변천하는 것으로 보아도 중생상이 되는 것입니다. 중생상이 지나치면 생활 속에서 바르게 살 수가 없게 됩니다. 
중생상은 생활 속에서 늘 만들어집니다. 유목을 하면서 부족끼리 사는 사회는 부족을 유지하고 이동하며 적을 막고 생존하는 방향으로 법칙과 의식이 만들어지고 남녀관계도 설정이 돼요. 그런가 하면, 가만히 한 곳에서 정착을 하고 사는 농경사회도 그 나름대로 법칙이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어떤 법칙이나 관습도 우위에 있는 것은 없어요. 다만 필요에 따라서 적응을 하는 것일 뿐이지요. 이런 대도 고집을 하는 것이 중생상입니다. 
수자상은, 과거 현재 미래 시간과 공간의 개념과 나고 죽고 오가고 하는 모든 개념의 조립품이 수자상입니다. 
중생이 살고 죽는 것에 집착을 하는 것을 수자상이라 합니다. 
그리고 생명에 대한 애착을 일으키게 되거나 생명을 경시하게 되는 것도 수자상이라 합니다. 
또 일체중생의 수명의 장단을 보는 것이 수자상입니다. 
일체중생은 수자상을 가지고 있어서 기어 다니는 벌레까지도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인간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진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 무수한 다른 생명체를 죽이고 먹고 해치면서 몸을 유지하지 않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습관으로 깊어진 것이라 일을 만나면 발동을 합니다. 
"윤회를 하기 때문에 죽으려야 죽을 수도 없다." 이렇게 생각을 하거나 "죽으면 아주 그만이고 없어진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 것도 수자상인 것입니다.



번역, 강의. (마하수련원) 벽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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