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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벽공스님 번역, 강의한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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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 금강경강의,
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금강경:제14. 상을 떠난 적멸. = 법문,어록,경전강의,


금강경:제14. 상을 떠난 적멸. - 금강경강의,

제14. 상을 떠난 적멸. 2

2001, 8월 13일 


(육안,천안,혜안,법안,불안,희유한 인연,인욕선인,가리왕,달마대사,돈오점수,방편력,보살의 마음,) 


 

⊙금강경: 제14, 상을 떠난 적멸.
 
원문
離相寂滅分, 第十四. 
이상적멸분, 제십사.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이시 수보리 문설시경 심해의취 체루비읍 이백불언

希有世尊 佛說 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 所得慧眼 未
희유세존 불설 여시심심경전 아종석래 소득혜안 미

曾得聞 如是之經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 淸淨
증득문 여시지경 세존 약부유인 득문시경 신심 청정

則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
즉생실상 당지시인 성취제일희유공덕 세존 시실상

者 則是非相 是故 如來 說名實相 世尊 我今 得聞如
자 즉시비상 시고 여래 설명실상 세존 아금 득문여

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 當來世 後五百歲 其有
시경전 신해수지 부족위난 약 당래세 후오백세 기유

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 則爲第一希有 何以故
중생 득문시경 신해수지 시인 즉위제일희유 하이고

此人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所以者何 我
차인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소이자하 아

相 卽是非相 人相 衆生相 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상 즉시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 즉시비상 하이고

離 一切諸相 則名諸佛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
이 일체제상 즉명제불 불고수보리 여시여시 약부유

人 得聞是經 不驚 不怖不畏 當知 是人 甚爲希有 何
인 득문시경 불경 불포불외 당지 시인 심위희유 하

以故 須菩提 如來說 第一波羅蜜 卽非第一波羅蜜 是
이고 수보리 여래설 제일바라밀 즉비제일바라밀 시

名第一 波羅蜜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 非忍辱波
명제일 바라밀 수보리 인욕바라밀 여래설 비인욕바

羅蜜 是名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
라밀 시명인욕바라밀 하이고 수보리 여아석위가리

王 割截身體 我於爾 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
왕 할절신체 아어이 시 무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

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 我相 人相
수자상 하이고 아어왕석절절지해시 약유 아상 인상

衆生相 壽者相 應生嗔恨
중생상 수자상 응생진한

須菩提 又念 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
수보리 우념 과거어오백세 작인욕선인 어이소세 무

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是故 須菩提 菩薩
아상 무인상 무중생상 무수자상 시고 수보리 보살

應離一切相 發 阿搙多羅三藐三菩提心 不應住色生
응리일체상 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 불응주색생

心 不應住 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심 불응주 성향미촉법생심 응생무소주심 약심유주

則爲非住 是故 佛說 菩薩 心不應住色布施 須菩提
즉위비주 시고 불설 보살 심불응주색보시 수보리

菩薩 爲 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如來說 一切諸相
보살 위 이익일체중생 응여시보시 여래설 일체제상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 是眞
즉시비상 우설일체중생 즉비중생 수보리 여래 시진

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誑語者 不異語者 須菩提 如
어자 실어자 여어자 불광어자 불이어자 수보리 여

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래소득법 차법 무실무허 수보리 약보살 심주어법

而行布施 如人 入闇 則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
이행보시 여인 입암 즉무소견 약보살 심부주법 이

行布施 如人 有目 日光 明照見種種色 須菩提 當來
행보시 여인 유목 일광 명조견종종색 수보리 당래

之世 若有善男子 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則爲如
지세 약유선남자 선여인 능어차경 수지독송 즉위여

來 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 無量無邊功德
래 이불지혜 실지시인 실견시인 개득성취 무량무변공덕

 
번역
그때 수보리가, 이 경 설하심을 듣고 깊이 그 이치를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 울면서 부처님께 사뢰었다 "희유하옵니다. 세존이시어, 부처님께서 이처럼 깊은 경전을 설하심은, 제가 예로부터 얻은바 혜안으로도, 일찍이 이와 같은 경을 얻어듣지 못하였나이다. 세존이시어, 만약 또 어떤 사람이 이 경을 얻어듣고 신심이 청정하면 곧 실다운 바탕을 나투라니, 응당 제일 희유한 공덕을 성취한 것임을 알겠나이다.
이 실상이라 하는 것은 곧 모양이 아닌 까닭에 여래께옵서 말씀하시길, 이름이 살상이라고 하시옵니다.
세존이시어,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니는 것은 족히 어렵지 않사오나. 만약 다가온 후 오백세 그 어떤 중생이 있어서 이 경을 얻어듣고서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을 제일 희유하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고 인상도 없으며 중생상도 없으며 수자상도 없을 것이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상도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 옵니다.
왜냐하면, 일체 상을 떠난 것을 이름 하여 모든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심히 희유하다 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시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어찌 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베이고 잘릴 때에도 나는 그때에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사지를 끊기고 잘릴 적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이 있었다면 당연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으리라."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 인욕선인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건대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지니, 응당 모양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향미촉법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마음을 낼지어다.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 하지만 곧 머무름이 아님일세.' 이러한 까닭으로 부처님이 설하시되, '보살은 마음을, 응당 모양에 머무름이 없이 베풀어라.' 하시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응당 이처럼 베풀어야 하느니,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상이 아니며 또 일체중생이라 설하시는 것도 곧 중생이 아니니라.
수보리야, 여래는 옳고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변함없는 말을 하는 자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법. 이 법은 자취도 없지만 헛되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 한다면 사람이 어두운데 들어감에 곧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 한다면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추어 가지가지 모양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서 이런 사람을 다 알며 이런 사람을 다 보아, 모두 한량없고 가 없는 공덕을 성취케 하리라."

 
강설
 부처님이 설하신 금강반야바라밀경을 듣고 수보리존자가 마음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든 결박을 명쾌하게 풀어주고 본래의 면목을 보게 해 주는 진실하고 거룩한 말씀에 실로 감격해 마지않는 것입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 꿈에도 느끼고 알고자 하는 이치를 말씀해 주시니 어찌 감격해 마지않겠습니까. 수행하면서도 놓지 못하는 수많은 의혹과 의지함, 신비함에 매여있고, 부처와 법, 그리고 복에 얽매여 있는 수행자들의 미혹을 단번에 끊어 주시는 명쾌한 말씀에 비로소 크게 느끼고 마음이 열리는 것입니다.

기도 중이나 법문 중에 한순간 마음이 격동하면 주체할 수 없이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참으로 바라고 바라던 것을 얻었을 때도 그렇지만 인연이 도래하면 자기도 모르게 격동하는 것입니다.
그런 희유한 말씀을 옛날부터 지금까지, 비록 자신이 지혜의 눈을 가진 몸이라지만 일찍이 한 번도 듣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혜안)
여기서 혜안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갈까 합니다. 경전에서 다섯 가지 눈이 있다고 논합니다 누구나 갖추고 있는 육안을 비롯한 천안 혜안 법안 불안이 있습니다. 천안이란 천인들의 눈처럼 시공을 초월해서 느끼고 보는 눈을 말합니다.  시간과 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느끼는 것이며, 느끼는 것은 곧 보는 것이니, 육안을 인용하지 않고도 마음으로 느끼고 보는 눈입니다.
혜안은 청정하고 집착이 없는 데서 비롯되는 밝은 지혜의 눈입니다.
또 법안이 있습니다. 법안은 모든 인과의 흐름과 모든 법의 근본 바탕을 자세히 아는 것입니다. 일체처의 오고 감이 없는 법의 이치를 요달하고 자제하는 것을 법안이라고 합니다.
다음으로 불안이 있습니다.
부처님이 갖추신 눈으로 다 함이 없고 걸림이 없으며 한계가 없는 그런 눈이며, 항상 변함없고 여여한 성품 본질의 눈이며, 무위와 유의의 모든 실상을 밝게 쓰고 밝게 아는 눈입니다.

오늘 수보리존자는 순수한 기쁨의 그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수보리존자는 오래전에 이미 혜안을 성취한 몸입니다. 그러함에도 지금까지 그런 성스러운 모든 것을 깨뜨리는 법문을 일찍이 듣지 못하였다는 말씀이십니다. 이제야 법안이 비로소 열렸다고 해야 할까요
 
희유한 인연)
이러한 경전을 누군가 얻어듣고 몸과 마음이 청정해진다면 곧 법의 실상을 확인할 것이므로 과연 희유하다 해야 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요즘은 과학이 발전하고 인쇄 기술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어디서라도 부처님의 말씀을 접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옛적에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정말 선근이 있어야 경전을 가까이할 수가 있고 귀중한 말씀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경전을 필사해서 소중히 간직하거나 외어서 남에게 전달해야 되기 때문에 그때는 많은 노력이 들었고 인연이 없으면 경전의 근처에 가기도 힘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편리한 세상이라도 좋은 경전을 늘 가까이하고 받들어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한번 읽기는 하겠지만 깊이 받아 드리지 않고 그저 스쳐 가 버리는 정도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경전이 옆에 있다고 해도 그림자와 같겠지요.
지금이라도 간절한 마음으로 받들고 받아 지닌다면 수보리존자가 느끼는 그런 감격을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분이라면 이 순간에도 정말 희유한 분이라고 해도 타당하겠지요. 없는 것을 만들고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추고 있는 것을 철저히 확인하는 것입니다.


(경전의 말씀이나 스승의 말씀이 목숨을 던질만한 가치로 다가올 때만이 비로소 크게 감흥 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좋은 말씀이고 참고용이라면, 그 어떤 가르침을 받거나 수행방법을 배운다고 해도 소용이 없게 됩니다. 비결은 어떤 방법에 있는 듯하지만, 실상 한마음 작용에 있습니다.) 

본래 수많은 몸이라 하나 이 또한 이름일 뿐, 실로 몸 아닌 몸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생사에 걸림이 없고 선과 악에 걸림이 없으며 있다 없다에 자유 자제한 그 몸을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이렇다. 하는 고정관념을 철저히 깨뜨려 버리고 변함없는 자기의 실 면목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무엇을 부처라 하며 무엇을 일러서 생사라 하는가? 넌지시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업장을 참회하지 않아도 참회가 저절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고 후회를 해도 그 마음을 놓지 못하면 참회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왜냐하면, 생각으로 불러일으키는 그 작용이 여전히 강하게 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원수를 싫어하고 멀리 피하려고 하나 그 마음이 잠재된 한, 서로 자석이 끌리듯이 다시 만나고야 마는 것입니다.
그 마음을 깨끗이 하시라.

"세존이시어, 제가 지금 이와 같은 경전을 얻어듣고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니는 것은 족히 어렵지 않사오나. 만약 다가오는 후 오백세 그 어떤 중생이 있어서 이 경을 얻어듣고서 믿고 이해하며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을 제일 희유하다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아상이 없고 인상도 없으며 중생상도 없으며 수자상도 없을 것이옵니다.
무슨 까닭인가 하면, 아상도 상이 아니며 인상 중생상 수자상도 곧 상이 아니 옵니다.
왜냐하면, 일체 상을 떠난 것을 이름 하여 모든 부처님이라 하기 때문이옵니다."

제14 분에서는 종합적으로 앞서 내용을 강조하고 두루 언급 하고 있습니다. 상근기는 한순간 알아차리고 받아들이지만, 나머지는 반복 듣고 느껴야 비로소 핵심 뜻을 알아들어요. 그래서 경전의 내용은 반복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일체중생들의 삶은 집착과 생각이 습관을 이루고 그 습관이 업장이 됩니다. 그러므로 반복해서 접촉하지 않으면 성스러운 경전을 혹 만난다 하더라도 그 깊은 이치를 터득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런데도 후세에 이 경전을 대하고 단숨에 환희하면서 받아지녀 알아차린다면 얼마나 희유하겠습니까.

수행은 참 어렵다. 나는 업장이 두껍고 어리석다. 공부란 어떤 걸 이루고 성취해야 공부다. 이처럼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이 경전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 경전을 대하고 환희용약하는 분들이라면 그러한 네 가지 상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
또 모든 부처님이라고 하는 뜻은 일체의 상이 없는 그 자리를 일러서 모든 부처님이라 한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와 일체중생이 나타남과, 인연 따라 수많은 부처님과 가르침이 있다 해도, 변함없는 그 자리의 한 모습일 뿐입니다.
헤아릴 수 없이 많다 하나 결국은 둘이 아닙니다. 저 거울 속에 무수한 모습이 나타나고 사라져도 거울의 바탕은 변함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형상이나 모양이 있다면, 그리고 그와 같은 어떤 사념이나 경계에 머물러 있다면, 이를 부처님의 경지라고 하거나 부처님이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저 외도처럼 무상처나 공무변처 혹은 비상비비상처의 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해탈이라고 하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텅 비어 없는 그런 공무변처라도 하나의 몸이며 세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텅 비어 있어도 그 자체가 윤회를 거듭하는 모양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형상이 머무르지 않고 집착이 없을 때에 이르러 이를 일러 청정하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부처님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몸이고 생명입니다. 그 또한 모양입니다. "이 무언인고?"
 
제일 바라밀 인욕바라밀)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그렇다. 그렇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거나 겁내지 않으며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마땅히 알아라. 이 사람은 심히 희유하다 할 것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수보리야, 여래가 설한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인욕바라밀도 여래가 설하시나 인욕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어찌 된 까닭인가 수보리야, 내가 옛적 가리왕에게 신체를 베이고 잘릴 때에도 나는 그때에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왜냐하면, 내가 옛적에 사지를 끊기고 잘릴 적에 만약 아상 인상 중생상이 있었다면 당연히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을 내었으리라."


금강경을 늘 접하는 분들이라면 그 뜻을 확실하게 알지 못해도 놀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를 믿다가 처음 접하거나 불교를 믿더라도 다른 경전만 보다가 금강경을 대하게 되면 당황하고 못 믿거나 놀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불교를 연구하는 학자들까지도 금강경을 위경이라고 부정하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너무 뜻이 파격적이어서 그렇기도 하고 다른 사유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 유명한 달마대사가 중국에 와서 말씀하시기를, 깨닫고 나서 수행해야 하며 성품을 보라. 그러면 부처를 이룬다고 하였지만, 대다수가 놀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양무제까지도 달마대사의 뜻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양무제는 오랫동안 불교를 신봉하고 법문을 들었으며 온 나라에 불탑을 세우고 스님들을 수행할 수 있게 공양한 그런 황제입니다. 그런 분조차도 달마대사의 깊은 법문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그 당시 고승 대덕들 조차도 달마대사를 사악한 외도나 사도쯤으로 여기기에 이르렀던 것입니다.

왜,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 하면, 당시 중국의 불교라는 게 신비함을 추구하고 세간의 복을 구하며, 이적을 숭배하는 둥, 그런 바탕의 불교였거든요. 거기다가 참선을 하고 해탈을 위해서 공부를 한다는 수행자들까지도 업장을 녹인다 하거나. 신비함을 추구하거나, 성취해서 도달하려 하거나, 혹은 부처님을 의지하고 가피를 바라면서 수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나는 업장이 두텁고 어리석다. 스스로 단정하거나, 시끄러운 걸 피해서 조용한 걸 찾는 게 수행이라고 여기고 달팽이 같은 수행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달마대사가 이르기를, 일체중생은 모두 깨달을 수가 있으며 부처와 다름이 없고, 단박에 깨닫고 그다음부터 수행하는 것이다 하니, 또 선도 악도 둘이 아니다 주장하니, 모든 고승이 배척해 마지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외도 사도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도 불자들이나 수행자들이 달마대사를 존중하고 닦는다 하면서도 그 이면은 달마대사의 가르침과는 반대입니다.
또 점수를 배격하고 돈오를 주장하는 수행자나 학자들까지도 실지로는 마음속에 점수를 행하고 있으며 돈오를 닦는다고 말 합니다. 오히려 점수와 돈오의 뜻마저 잘못 알고 왜곡하고 있어서, 돈오라고 주장하는 그 자체 마저도 돈오가 아닌 점수를 가지고 돈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라밀이란 저 언덕이라 하는데 곧 해탈의 경지라고 하면 될 것입니다 거기에 이르는 여섯 가지 실천해야 할 바라밀이 있습니다.
처음이 보시 바라밀입니다.
몸과 마음의 집착을 여의고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을 여의는 것이 중요한 보시바라밀이며 몸도 마음도 일체를 베풀고 여의는 것이 보시바라밀이니, 보시는 모든 바라밀의 원천이며 어머니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제일 바라밀이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이 인욕, 지계, 정진, 선정, 피안을 합해서 육 바라밀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제일 바라밀이라는 것 또한 말이 제일 바라밀이며 그런 바라밀의 모양이 본래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인욕바라밀 또한 마찬가지여서 참는다는 것도 참을 대상이 없으며 참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생 인욕선인 시절에 가리왕이 오해를 해서 살을 갈기갈기 찢고 사지를 절단해도 단 한 순간도 가리왕을 원망하거나 성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약 나라는 생각이나 몸이라는 생각이 있었다면 그때에 성내고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었으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인욕의 참뜻을 잘 들어내는 말씀이십니다.
만약 참아야 하고 참을 대상이 있다면 어찌 원망심을 내지 않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때의 마음에 참고 성내야 할 나도 없고 나를 해치는 가리왕도 없었기 때문에 진정한 인욕선인이었던 것입니다.그러므로 인욕이라 해도 인욕이 아니며 인욕 자체도 텅 빈 것입니다.

"수보리야 또 과거 오백세 동안 인욕선인이었을 때를 생각해 보건대 그때의 세상에서도 아상도 없었고 인상도 없었으며 중생상도 없었고 수자상도 없었느니라. 그러므로 수보리야, 보살은 마땅히 일체 상을 떠나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낼지니, 응당 모양에 머물러서 마음을 내지 말며 응당 성 향 미 촉 법에 머물러서도 마음을 내지 말고, 응당 머문 바 없는 마음을 낼지어다.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 하지만 곧 머무름이 아님일세.' 이러한 까닭으로 부처님이 설하시되, '보살은 마음을, 응당 모양에 머무름이 없이 베풀어라.' 하시느니라. 수보리야, 보살은 일체중생을 이롭게 하려면 응당 이처럼 베풀어야 하느니, 여래가 설한 일체의 모든 상은 곧 상이 아니며 또 일체중생이라 설하시는 것도 곧 중생이 아닌 것이니라."  

 
가리왕)
가리왕이란 악왕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칼리라고도 합니다. 현우경이나 출요경 등에 나오며 대비바사론에도 등장합니다. 가리왕이 어느 날 사냥을 하고 유희를 하다 피곤해서 누워서 쉬게 되었습니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 어느 선인이 조용히 앉아서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가리왕을 따라온 시녀들이 왕이 잠든 사이에, 수행자의 거룩한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의 곁에 모여 법문을 듣게 됩니다.
얼마 후에 한숨 자고 난 가리왕이 깨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시녀들이 안 보여요.
찾아보니 마침 선인을 둘러싸고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질투심이 일어나 불같이 노한 왕은 선인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너는 도대체 누군가." "나는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왕은 이에, "그렇다면 정말인지 시험을 해 보겠다. 하고" 칼을 휘둘러서 선인의 한쪽 팔을 잘라 버립니다. 그러나 선인은 태연합니다.

다시 왕이 묻습니다. "너는 뭣을 하는 자인가." 그러자 다시 선인은 대답합니다. "인욕을 닦는 사람입니다." " 왕은 더 노해서 또 다른 팔을 잘라 버렸습니다.
이렇게 코를 자르고 귀를 자르는 등 악행을 거듭 했으나 선인은 여전히 몸과 마음이 부동이었으며 조금도 성내거나 원망하는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큰 법을 성취하면 먼저 저 가리왕을 제도하리라는 서원까지 합니다.

선인의 마음에는 베이는 자도 베임을 당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화를 낼 대상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는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목석이 아닌 것은 원수를 자비심으로 구원하려는 마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의 과거 인욕선인 때의 이야기입니다. 이처럼 하염없이 인욕선인으로의 수행정진을 오백세 동안 할 때를 돌이켜 보건대 그때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가리왕 이야기에 나온 것처럼 인욕선인과 같은 행은 감히 범부중생으로써는 생각도 하기 어려운 행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도 일상생활에서 '참을 인' 자를 중요시합니다. 참아라. 참아라. 참 많이 듣고 살아갑니다. 억울해도, 꽉꽉 누르면서 참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저 사람이 나를 해쳤다. 저 사람은 못된 사람이다. 나 하고는 맞지 않은 사람이다. 저 사람이 나를 이렇게 비웃었다. 저 사람은 나에게는 불필요한 사람이며 손해만 주는 사람이다. 하는 생각이 있는 한, 그 대상을 생각하고 떠올리기만 해도 불쾌 해 질 것입니다.

겉으로 참고 웃는다. 하더라도 서로 마음이 열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안 좋은 생각을 거듭하면 더욱 몇 배 불쾌해지고 서로 점점 거리가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실체가 실로 없으며 바람과 같으며 아침 이슬과 같은 줄 알아서 그 사람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을 두지 않는다면 불쾌하고 억울한 마음은 녹아지기 시작 할 것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다른 사안을 연결짓지만 안해도 쉽게 해결이 됩니다. 결국, 알고 보면 자신의 느낌과 감각과의 싸움이거든요.

*** 안으로는 사람을 볼 때 선악의 기준으로 보지 않고 서열로 보지 않으며 마음을 비워 평등한 느낌으로 대하되, 모두를 친구로 보며 또 소중하게 여깁니다.  밖으로는 공손하거나 당당하며, 때로는 위험 있게 행동하며, 칭찬하고 이익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상대방의 성격과 습관을 보고 멀리하거나 가까이합니다. 
그때는 상대도 은연중 마음이 녹아 있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시공을 초월해서 서로 본능이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래가 얻은 법)
"수보리야, 여래는 옳고 참다운 말을 하는 자며, 실다운 말을 하는 자며, 변함없는 말을 하는 자며, 속이지 않는 말을 하는 자며, 다른 말을 하지 않는 자이니라. 수보리야, 여래가 얻었다는 법. 이 법은 자취도 없지만 헛되지도 않느니라.
수보리야, 만약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를 한다면 사람이 어두운데 들어감에 곧 보이는 것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며,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한다면 사람이 눈도 있고 햇빛도 밝게 비추어 가지가지 모양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서 이런 사람을 다 알며 이런 사람을 다 보아, 모두 한량없고 가 없는 공덕을 성취케 하리라."

부처님이 설하신 경전들은 정말 분량이 많습니다. 우주 삼라만상 보이고 안 보이는 모든 세계의 구성과 흥망성쇠와 그리고 잡다한 인간살이에 이르기까지 언급 안 하신 곳이 없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동에서 서로, 서에서 동으로 두루 회통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광대한 말씀을 하셨지만, 모두 실로 참다우며 진실한 말씀들입니다. 
 
방편 이야기)
혹 방편이라는 말을 잘 못 해석하는 분들이 간혹 있어요,
'부처님이 중생들을 교화하기 위해서 없는 것이지만 말씀하신 것이다. 라고' 말하는 분들도 없지는 않습니다.
부처님은 방편으로 말씀하셔도 있지 않은 것으로는 비유하지는 않습니다. 그럴 필요가 없어요. 

부처님이 쓰는 방편은 중생의 본능과 업을 관찰해서 쓰는 것입니다.
중생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두가 쉽게 거부감없이 이익을 얻게 됩니다.
비유하자면, 성질이 못된 강아지 때문에 강아지 주인이 괴로울 때 전문가를 부르지요. 그러면 전문가는 그 강아지의 본능과 성격과 강아지가 원하는 바를 관찰하고 나서 처방을 합니다. 주인은 몇 년을 두고 강아지를 다스리지 못했어도 전문가는 금방 강아지 성질을 고쳐놓습니다.

또 동물조련사가 어떻게 동물을 조련하는가를 보세요. 조련사는 그 동물과 깊이 서로 친하고 교감하는 게 우선이지요. 그다음에 그 동물의 본능과 습관을 파악하고 조련에 임합니다. 그리고 더불어 칭찬하고 상을 주면서 그 동물이 스스로 기쁘게 받아들이게 동기 부여를 합니다.
그러다가 때로는 '안돼'하고 제지도 하지요.
그렇게 번갈아 동물을 조련합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은 일체중생의 본능을 아시고 방편으로 제도하시는 것입니다

부처님은 여어자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다양한 말씀을 하셔도, 원리는 시종일관 영원히 변함없이 근본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마치 수많은 구슬들을 한 줄의 실로 뀀과 같이.  부처님의 말씀은 거짓되거나 남을 속이는 말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일부러 자기의 욕심을 달성하기 위해서 학설을 만들고 주장을 하는 일도 있으며 그것을 정치에 끌어대서 국민을 우매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부처님은 두말을 안 하시는 분입니다. 두 말이란 무엇인가. 그 뜻이 질서 정연하고 원리가 한 줄로 흐르기 때문에 결코 형편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지를 않는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적절하며 흐트러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얻으셨다는 법은 자취도 없지만 그렇다고 헛되거나 허망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금강경은 '무'라는 용어를 빌려서 많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혹 그 본질을 꽤 뚫어 보지 못하면 한쪽으로만 생각해서 '모든 것은 허망하고 '불필요한 것이 아니냐! 하고' 생각을 할 수가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비록 자취도 없지만, 결코 허망한 것이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모양과 과위가 없는 얻고 잃음을 떠난 불멸의 법에 들기 때문에 진정으로 얻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보살의 마음)
다음으로 보살이 마음으로 머물러서 보시한다는 것은 마치 어두운데 들어가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시 행을 하는 보살은 받는 대상을 저울질하지 않고 준다는 마음도 없이 주기 때문에 수고롭거나 힘들지 않습니다.
언제나 청정한 본체 그대로인 것입니다.
그 마음에 둘이 아니고 다툼이 없어요. 손해와 이익이 없어서 대가를 바라지 않으니까. 배반해도 섭섭하거나 미워지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베풂이 완성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이 아니라면 대가를 계산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독제자나 신의 사랑은 처벌과 공포의 사랑이며, 심지어는 부모·형제 사이라도 은연중에 대가를 계산하고 움직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랑은 증오 가운데 피어나는 유한한 사랑입니다.
사랑 속에 증오를 품고 있어요. 아름다운 장미가 가시를 품듯이….

 
금강경을 받아지닌 공덕)
"수보리야, 오는 세상에 만약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여래가 부처의 지혜로서 이런 사람을 다 알며 이런 사람을 다 보아, 모두 한량없고 가 없는 공덕을 성취케 하리라."
부처님은 언제나 시공을 초월해서 우리와 같이 계십니다. 부처님의 위신력은 무한해서 다 알고 다 보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근본 심성이 더불어 부처님과 둘이 아니며 스스로 또 밝게 알고 다 봅니다. 
지은 대로 스스로 성취를 이룩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뜻하는 고, 살피세요?

 
주)
若心有住 則爲非住 다른 곳에서 해석하기를, '마음이 머무름이 있으면 곧 머무름이 아니니라. 로' 번역한 것을 여기서는 마음에 머무름이 있다 하나 곧 머무름이 아님일세.로 역했습니다.
그 까닭이라면 부처님이 앞에 계속 머물지 말 것을 강조하셨는데 비록 머무른다는 것조차도 본바탕에서 보면 머무름이 없어서 근본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 해석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머물지 말 것을 강조하면 자칫 일체를 부정하는 곳에 떨어질 우려가 있는 것을 바로 잡으면서 마음 바탕의 근본을 들어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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