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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벽공스님 번역, 강의한 금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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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강의, - 금강경강의,
작성자 벽공
작성일 2003/05/24

금강경:제13. 여법하게 받아지님 = 법문,어록,경전강의,


금강경:제13. 여법하게 받아지님 - 금강경강의,

 2001,7월 23일

 

(금강반야바라밀경,보시,사구게,32상,환상,보시와 사구게 공덕 비교,신행방법,형상으로 부처를 보지 못한다.) 

 

⊙금강경: 제13, 여법하게 받아 지님.
 
원문
如法受持分, 第十三.
여법수지분, 제십삼.

 
爾時 須菩提 白佛言 世尊 當 何名此經 我等 云何奉持
이시 수보리 백불언 세존 당 하명차경 아등 운하봉지

佛告須菩提 是經 名爲 金剛般若波羅蜜 以是名字 汝
불고수보리 시경 명위 금강반야바라밀 이시명자 여

當奉持 所以者何 須菩提 佛說 般若波羅蜜 卽非般若
당봉지 소이자하 수보리 불설 반야바라밀 즉비반야

波羅蜜 是名般若波羅蜜 須菩提 於意云何 如來有 所
바라밀 시명반야바라밀 수보리 어의운하 여래유 소

說法不 須菩提 白佛言 世尊 如來 無所說 須菩提 於意
설법부 수보리 백불언 세존 여래 무소설 수보리 어의

云何 三千大千世界 所有微塵 是爲多不 須菩提言 甚
운하 삼천대천세계 소유미진 시위다부 수보리언 심

多 世尊 須菩提 諸微塵 如來說 非微塵 是名微塵 如來
다 세존 수보리 제미진 여래설 비미진 시명미진 여래

說世界 非世界 是名世界 須菩提 於意云何 可以三十
설세계 비세계 시명세계 수보리 어의운하 가이삼십

二相 見如來不 不也 世尊 不可以三十二相 得見如來
이상 견여래부 불야 세존 불가이삼십이상 득견여래

何以故 如來說 三十二相 卽是非相 是名三十二相 須
하이고 여래설 삼십이상 즉시비상 시명삼십이상 수

菩提 若有善男子 善女人 以恒河沙等身命 布施 若復
보리 약유선남자 선여인 이항하사등신명 보시 약부

有人 於此經中 乃至受持四句偈等 爲他人說 其福甚多
유인 어차경중 내지수지사구게등 위타인설 기복심다

 
번역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 하며 저희가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이 이름으로 너희는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 어찌 된 까닭인가 수보리야, 부처님이 말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을 설한 적이 있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을 드리되 "세존이시어, 여래께서는 설하신 바가 없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작은 티끌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을 드리되 "대단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어."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는 모든 작은 티끌들은, 작은 티끌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티끌이며 여래가 말하는 세계도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
"수보리야 어찌 생각하느냐 가히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가 있겠느냐.?"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어,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뵙기는 불가하옵나이다. 왜냐 하오면 여래께옵서 말씀하시는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며 그 이름이 상이기 때문이옵니다."
"수보리야, 가령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항하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목숨을 바쳐서 보시했더라도……. 견주어, 다시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니고 다른 사람에게 설해준다면 그 복이 훨씬 많으니라.

 
강설
"이때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어 이 경을 무엇이라 이름 하며 저희가 어떻게 받들어 지니오리까?"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이르시되, "이 경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이니, 이 이름으로 너희는 마땅히 받들어 지닐지니라. 어찌 된 까닭인가 수보리야, 부처님이 말한 반야바라밀은 곧 반야바라밀이 아니고 그 이름이 반야바라밀이니라.
 
금강반야바라밀경.)
 "머무른 바가 없고 항상 여여하며 늘거나 줄지 않는 불생불멸의 자리를 금강이라 하며, 반야란 크고 넓은 무한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 금강반야로 저 언덕에(해탈) 이르는 글이라는 뜻입니다. 그렇지만 금강반야바라밀경 또한 본시 정해진 모양이 없어서 그 이름이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는 것입니다.
무엇하고도 바꿀 수가 없고 광대한 공덕의 창고이면서 일체법의 어머니와 같은 근본 경전이지만 그 또한 주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금강반야바라밀경이 형상이 있고 주처가 있는 것이라면 이미 생멸의 법인데, 어찌 금강반야바라밀경이겠습니까.
모양과 경지가 정해져 있다면 마땅히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래의 설법)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하느냐, 여래가 법을 설한 적이 있었느냐?" 수보리가 부처님께 사뢰어 말씀을 드리되 "세존이시어, 여래께서는 설하신 적이 없나이다."
"수보리야 어떻게 생각을 하느냐 삼천대천세계에 있는 작은 티끌이 많지 않겠느냐?"
수보리가 말씀을 드리되, "대단히 많겠나이다. 세존이시어."
"수보리야 여래가 말하는 모든 작은 티끌들은, 작은 티끌이 아니고 그 이름이 작은 티끌이며 여래가 말하는 세계도 세계가 아니고 그 이름이 세계이니라."

과연 부처님은 법을 설하신 적이 없을까요? 형상적으로만 본다면 날마다 법을 설하시고 오늘도 설하시고 있는데요. 그렇지만 법은 불생불멸이고 얻거나 잃는 것이 아니며 오고 가는 바가 없을 뿐만 아니라 일체가 머무르지 않는 것입니다.
법은 설해도 설한 바가 없고 항상 티끌이 없으며 본질이 여여 합니다.

본래 그래서 또 중생이다 부처다. 설한다. 제도 한다는 생각도 없어서, 그러므로 설한 바가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금강경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삶 이야기이며 마음의 본 고장 이야기입니다.
또 마음을 쓰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행의 귀결점이기도 합니다.

삼천대천세계의 티끌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생각으로 헤아려 알아질 일입니까. 그러한 미진수를 부처님이 말씀하시나, 이 또한 티끌이 아녀서 티끌이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삼천대천세계는 어느 곳에 있으며 작은 티끌은 또 어디에 있는 고?"

과거 현재 미래를 억지로 구분을 하고 따져 보기도 하지만 기실 구분을 지을 수도 없고 그 또한 잡을 수가 없습니다. 삼천대천세계라고 하지만 이 또한 다른 이치가 있겠습니까? 무엇을 일러서 삼천대천세계라고 할 것입니까.
걸림이 없고 다 함이 없으며 꾸밈도 없습니다. 그리고 다툼이 없는 자리입니다. 부처님께서, 오직 군더더기를 때어버리고 직지 하시고 있지 않습니까? '이것이다. 하고'

 
32상으로 여래를 보겠는가)
 "수보리야 어찌 생각하느냐 가히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볼 수가 있겠느냐.?"
"아니 옵니다. 세존이시어, 삼십이상으로 여래를 뵙기는 불가하옵나이다. 왜냐 하오면 여래께옵서 말씀하시는 삼십이상은 곧 상이 아니며 그 이름이 상이기 때문이옵니다."

삼십이상은 부처님의 남다른 표상이라는 것을 이미 잘 아시고 계실 것입니다. 또 삼십이상으로는 결코 여래를 친견할 수도 없다는 것도 잘 아실 것입니다. 앞서 자세한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여기서는 다른 이야기를 할까 합니다.
선문(禪門)에, "부처가 오면 부처도 치고 조사가 오면 조사도 친다.는" 말씀이 있어요.
부처님 법에 출가를 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처지에서는 세간의 법은 버리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천착하고 집착하는 것은 참 버리기 힘듭니다.
그 집착하는 마음 때문에 참다운 실상의 가르침을 이해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그리고 혼자 왜곡하고 오히려 법에 얽매이는 현상이 납니다.
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우를 범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무릇 공부인은 한 생각 일지라도 바라거나 기대지도 않는 티 없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다가 세상을 뛰어넘는 공부를 한다고 자부하면서 그저 부처님의 가피나 바라고 의지를 한다면 이미 공부하고는 거리가 멀겠지요. 만약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해서 깊어진다면 오히려 마장에 걸려요. 저 공부인의 마음에 부처님의 가피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그 마음속에 환상이 만들어지고 부처님이 나타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공부인의 마음 따라 만들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공부인의 마음 수준에 따라서 부처님의 모습도 다르게 나와요. 그러면 공부인은 생각하기를 실제로 부처님이 나타나셔서 수기하고 가르침을 내리는 것으로 환희심을 내어서 기뻐하고 뭔가 얻었다고 생각을 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단계와 차원은 여러 가지라 할 수가 있지만 결국은 다 망상으로 빚어진 현상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정갈하게 하고 집착을 여의어서 그런 현상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만약 자기의 망상으로 만들어진 부처님인 줄 모르고 환희하는 마음이 일어난다면 참 허망한 공부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그러한 육신의 모양으로는 진정한 부처님을 친견할 수가 없어요. 형상을 따르지 말고 가르침의 법을 바로 봐야 부처님을 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부처님의 본신이냐? 물론 그것도 아닙니다. 참으로 법신은 있거나 없는 모습이 아니거든요. 요즘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걸핏하면 가피나 계시를 받았다 하지요. 잘못된 사고와 공부는, 더욱 진한 업을 쌓으며 더 외골수가 돼요.

"법은 무엇이며 선은 무엇인가. 무엇이 진리며 부처님의 가르침인가? 단칼에 베여 버린다."

마땅히 공부인이라면 최상승의 길을 가야 하니, 밖으로 모든 모양은 결정된 바가 없고 무상하니 법이란 법도 의지하고 매달리지 말 것이며, 선과 악을 정하여 상을 만들지 말 것이며, 안으로는 내 마음 내 생각 내 운명 내 업장 하면서 머물지 말 것입니다.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항상 쓰고 항상 여여 함을 알아야 합니다.

흔히 불상을 모셔 놓고 예배하고 기도를 봉행합니다.
이는 불자들로서는 당연지사입니다. 꼭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것보다도 부처님의 존상을 모셔 놓고 예배 공경하고 그 길을 따라 법을 배우는 것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갓 복을 빌고 하소연하는 대상으로 부처님을 모셔 놓는다면, 이는 부처님을 일반 종교나 뒷산의 산신령 정도로 여기는 것이 됩니다.
시방삼세가 부처 아님이 없고 늘 상주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내 눈앞의 모든 대상이 다 우주의 섭리를 이야기하고 근본 이치를 설하는 경전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가정을 비롯한 이웃과 그리고 직장 모든 곳이 정행을 실천하는 도량이 되는 것입니다. 나무로 깎고 돌로 다듬어서 불상을 모셔 놓고 마냥 물질을 구하고 행운을 바라는 것으로 업을 삼는다면 참다운 불자라 하기에는 모자라지 않겠습니까?

누구나 살다 보면 혼자 감내하기 어려움에 부닥칠 수도 있을 것이고 도움이 절실히 필요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남에게 구하는 데서 해결이 될 일이 아닙니다. 공짜는 없어요.
가까운 곳의 하나하나가 모이고 쌓여서 운명을 만들어갑니다. 그 자리를 바로 하고 공을 쌓아가야 합니다.

기도하고 빌어서 될 것 같으면 무엇 때문에 힘써 법을 닦고 베푸는 보시행을 강조할 것입니까?
복은 스스로 마음을 열고 화합하며 밖을 이해하는 데서 비롯되고 널리 남에게 조그마한 이익이라도 주었을 때 생성이 되느니만큼, 빌기만 한다면 아까운 세월을 낭비하는 결과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불교를 신앙하는 분들은 오래 신앙을 하더라도 정신이 깨이지를 않게 됩니다.
설령 그렇더라도 열심히 법문을 듣고 실천하면서 신행을 한다면야 그나마 좋겠지만 구하기만 하는 분들은 언제까지나 유치원생이요. 나이 들도록 그 형편을 면치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이 모양을 쫓아 구하고자 하는 데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보다는 마음의 찌꺼기를 없애고 더욱 결림이 없고 밝은 마음가짐을 가지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또한, 한편으로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충분한 자기만의 역량을 갖추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불교를 잘못 알고 지나치게 수동적이 된다든지 경쟁을 두려워하며, 매사 다가오는 것을 회피하며, 사회생활에 필요한 역량을 닦는데 소홀한 것을 볼 때가 있게 됩니다. 자기가 몸을 담고 있는 분야에서는 항상 앞서 가는 능력을 배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 구성원으로서 뒤처지지 않을 것 아니겠습니까. 보시가 따로 있는가요? 다만 자기와 맞는 곳에서 큰 욕심 없이 소임을 충실하게 감당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보시와 사구게)
"수보리야, 가령 선 남자 선 여인이 있어서 항해의 모래알같이 수많은 목숨을 바쳐서 보시했다 하더라도……. 견주어, 어떤 사람이 이 경 가운데서 사구게 만이라도 받아 지녀서 다른 사람에게 설해준다면 그 복이 훨씬 많으니라"
사구게를 자꾸 강조하십니다.
뿌린 대로 거두며 생각한 대로 이루어지고 나타나는 것이 운명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보시의 공덕이 참 대단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보다 사구게를 수지하는 공덕이 크다 하니까. 약간 믿기 어려울 수도 있어요.
사구게는 아무 맛도 없고 모양도 없지만 그것은 대양을 항해하는 배의 길잡이와 같고 무지한 고뇌 중생들의 구원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서 궁극에는 해탈하는 인연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공덕이 실로 크다고 증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결코 과장하시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건 미래의 일이고 현생은 보시행이 앞서지 앟을까.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도 그렇습니다.
마음이 열리지 않는 사람이 보시행을 할 수가 없을 것이고 또 보시를 해도 상을 내고 할 탠데 그 효과가 좋겠습니까.
그 마음이 평등하고 밝고 빚나는 사람은 그 자체가 보시를 이미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길로 이끄는 사구게가 훨씬 큰 공덕이 되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지 않겠습니까?

미래의 운명은 그 사람이 어떤 가치관으로, 의중 깊은 곳에서 무엇을 바라는가와, 어떤 반복되는 습관으로 살아가는지가 결정을 한다고 볼 때, 한마디의 진리의 시편인 사구게를 익히 듣고 마음에 새기고 실천한다면 생사의 언덕을 넘을 때에 인도하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어찌 마냥 복을 쌓는 것과 비교를 할 것입니까? 두고두고 써도 없어지지 않는 보배의 창고가 되는 셈입니다.

 
주)
身命을 해석하기로, 몸과 마음을 다한다. 아니면 생명을 다해. 목숨을 바쳐의 뜻을 품고 있기 때문에 '목숨을 바쳐도,' 역했으며 若復有人의 若은 견주어 본다. 앞뒤를 연결해 같이 보는 의미가 있기에 여기서는 '견주어로 역했습니다.
다음 其福深多의 '深'은 양과 그리고 차이 등을 나타내는 데 쓰이기 때문에 매우 대신 훨씬 이라는 뜻으로 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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