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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설화

경전 법문 영험설화, 사전류, 행사관련, 일대기, 인물 수행담 행장,

작성자 춘다
작성일 2015/03/27
분 류 설화
tag 사리,불사리,사리영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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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험 사리 이야기 = 영험설화,


영험 사리 이야기 - 영험설화, 불교전설, 경전가르침, 사찰전설


송(宋)나라 원가(元嘉) 6년에 가도자(賈道子)는 형상(荊上)으로 가다가 부용꽃이 한창 피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꺾어 집으로 돌아왔다. 꽃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 괴상히 여겨 찾아보다가 사리 1과를 얻었다. 진주처럼 흰 꽃이 광명을 내어 온 집을 비추었다. 공손히 받들어 상자에 넣고 벽에 달아 두었다.
  
 그 집안 사람은 항상, 어떤 스님이 밖에서 들어와 가사를 벗고 책상 위에 앉고, 어떤 사람은 그 집에서 자면서 무례하게 구는 것을 보았다. 그 사람의 꿈에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를 보고 말했다.
  "이 사람은 석가의 진신(眞身)으로서 여러 성인들이 와서 경례하는데 너는 왜 나쁜 짓을 하는가? 죽어서는 지옥에 떨어지고 거기서 나오면 사람의 노비가 될 것이다. 어찌 두렵지 않은가?"
  그 사람은 크게 놀라 얼마 안 되어 병으로 죽었다. 사리가 있는 그 집 땅에서는 연꽃 여덟 송이가 나서 60일 만에 시들더니, 1년 뒤에는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
  


  송(宋)의 안천재(安千載) 집에서 부처님을 받들고 사리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8년에 회계(會稽)의 안천재(安千載)는 그 집안이 모두 불법을 받들었다. 밤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있어 나가 보았다. 10여 명이 붉은 옷을 입고 재물을 싣고 와서 문안에 쌓으면서 말하였다.
  "관청에서 불도(佛圖)를 만들라 한다."
  그리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이튿날 그는 남의 집 재(齋)에 가서 잿밥을 먹다가 사리 1과를 얻었다. 빛은 자금색이고 방망이로 쳐도 깨어지지 않으며 물로 씻으면 광명을 발산했다. 그는 늘 공경했고 사리는 항상 이상한 향기를 내었다. 그 뒤에 사리를 내어 예배하려 했으나 간 곳이 없어 두루 찾아 반나절만에 돌아왔다.
  

 그 때 임천왕(臨川王)이 강릉(江陵)을 진수(鎭守)하러 갈 때 그를 맞이해 갔다. 사리는 가끔 여러 가지 빛을 내었다. 좌사(佐史)와 사문들이 다 사리를 보았으나 그 빛은 같지 않았다. 왕이 그것을 담는 물그릇을 받들고 축원했을 때 그 소리를 따라 그것은 곧 빛을 내었다. 밤에 어떤 사람 1백여 명이 사리가 있는 그 집을 돌고 향을 사르며 꽃을 받드는 것이 마치 부처님께서 나오실 때와 같았다. 날이 밝자 사람들과 사리는 모두 간 곳이 없었다.
  



  송(宋)의 장수원(張須元) 집의 불상 앞 꽃 위에서 사리 수십 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9년에 심양(?陽)의 장수원(張須元)의 집에서 8관재(關齋)를 베풀었다. 승려와 속인들 수십 명이 불상 앞의 꽃 위가 마치 빙설(氷雪)과 같은 것을 보고 그 자리를 자세히 살펴보다가 사리 수십 과를 얻었다. 물로 씻으니 빛을 계속 내었다. 그 뒤에 그것이 갑자기 없어졌는데, 며칠만에 부엌문을 열어 다시 치아 사리를 얻었다. 향합 안의 흰 천에 들어 있는 사리 10과는 빛을 발산해 하늘에 닿았다. 여러 나라에서 다 와서 보고 그것을 달라고 했다.
  
  송(宋)의 유응지(劉凝之)가 액자 밑에서 사리 2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15년에 남군(南郡)의 유응지(劉凝之)는 형산(衡山)에 들어가 숨어살면서 나라에서 불러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5두미(斗米)의 도(道)를 받들면서 불법은 믿지 않았다. 꿈에 어떤 사람이 땅에서 여러 장(丈) 떨어진 공중에서 그에게 말했다.
  "너의 의심이 비로소 풀릴 것이다."
  그는 깨어나 갑자기 깨치고는, 반년 동안 아침저녁으로 부지런히 부처님께 예배했다. 갑자기 액자 밑에서 자색 광명을 보고 그 자리를 더듬어 사리 두 과를 얻었다. 그것은 쪼개도 때려도 깨지지 않고 물에 씻으면 광명이 나며 밥을 먹을 때는 치아 사이에 숨고 뱉으면 또 광명을 내었다. 그 아내와 아들이 또 1과 씩 얻어 모두 5과가 되었다. 그 뒤에도 갑자기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아 곧바로 얻었다.
  
 

 송(宋)의 서춘(徐椿)이 독경하다가 사리 2과를 얻음
  

송(宋)나라 원가(元嘉) 19년에 고평(高平)의 서춘(徐椿)은 경을 읽고 밥을 먹다가 사리 2과를 얻어 항아리에 넣어 두었다. 뒤에 다시 보았을 때는 그것이 차츰 불어나 20과가 되었다. 그는 그 뒤에 광릉령(廣陵令) 유복(劉馥)의 집에 기숙하고 있었다. 유복이 가만히 그 항아리를 열어 보았을 때 그 항아리는 비어 있었는데 서춘이 고향에 돌아갔을 때는 그것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러나 그 뒤에 그가 타락하자 그것들은 다 간 곳이 없었다. 사리의 응현(應現)을 본 사람은 많지만 그것을 공경하는 사람은 얻고, 업신여기는 사람은 잃는다.

  사리가 동방으로 흘러 들어와 여러 임금의 대(代)를 지냈지만 그 전기에 전하는 것은 만에 하나도 안 된다. 사상(事相)이 거듭되고 응현(應現)이 잦음으로 말미암아 그것은 신기한 것이 아니었으니, 부처님의 교화가 잠기고 숨는 것은 실로 그 까닭이 있어서이다. 그러나 탑을 세우는 나라도 있었다. 그 중에도 수(隋)나라 때가 제일이었으니, 교화가 미친 한 경계 안에 1백여 군데가 있어 신기한 감응이 많이 나타났다. 모든 별전(別傳)에 있는 것을 지금 대충 뽑아 내어 그 감득(感得)을 표한다.
  
  
  
  사리감응기(舍利感應記) 20권(卷)[수(隋)의 저작랑(著作郞) 왕소(王邵) 지음]


  황제(皇帝)가 옛날 용잠(龍潛)으로 있을 때 어떤 바라문과 사문이 택상(宅上)에 와서 사리 1과를 내놓으면서 말하였다.
  "단월(檀越)의 마음이 좋으시기 때문에 이것을 여기 둡니다. 공양하십시
  오."
  사문이 떠난 뒤에는 아무리 찾아도 그의 있는 곳을 알 수 없었다. 그 뒤에 황제는 사문 담천(曇遷)과 함께 각각 그 사리를 손바닥에 놓고 세어 보았다. 그런데 적기도 하고 많기도 하여 그 수가 일정하지 않았다. 이에 담천이 말했다.

  "저는 일찍이 바라문의 말을 들었는데 '부처님의 법신(法身)은 수량(數量)을 뛰어넘은 것이어서 세간에서 헤아릴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이에 비로소 7보의 상자를 만들고 사리를 거기에 넣어 두었다. 신니 지선(神尼智仙)이 말하였다.
  "저는 장차 온 천하의 인자한 아버지가 되어 불법을 다시 일으키고 일체의 신명(神明)이 돌아오게 할 것입니다."
  그 뒤에 과연 주(周)씨가 불법을 없애고 수나라 왕실[隋室]이 천명(天命)을 받아 다시 불법을 일으켰다. 황제는 늘 그 신니의 말을 생각하고 말하였다.

  "내가 일어난 것은 부처님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하의 사리탑 안에 각각 신니상(神尼像)을 만들리라."
  황제와 황후는 경사(京師)의 법계니사(法界尼寺)에 기초를 이은 부도를 만들어 묵은 소원을 갚고 그 밑에 사리를 안치했다. 개황(開皇) 15년 늦가을 밤에 신광(神光)이 탑의 기부(基部)에서 올라와 노반(露盤)을 오른쪽으로 돌았는데 그 번쩍임이 풀무의 불꽃같았다. 열흘 동안에 이런 일이 네 번 있었다.

  황제가 인수(仁壽) 원년 6월 13일에 인수궁(仁壽宮)의 인수전(仁壽殿)으로 납시니 그 날은 본래 탄생하시던 날이었다. 해마다 이 날이면 깊은 마음으로 길이 생각하면서 복과 선을 닦고 부모의 은혜를 갚으려 했다. 그러므로 덕이 많은 사문을 청해 지극한 도를 이야기하며, 장차 해내(海內)의 모든 주(州)에서 고상(高爽)하고 청정(淸靜)한 30군데를 가려 각각 사리탑을 세우려 했다. 이리하여 황제는 7보의 상자에서 30과의 사리를 내어 어좌(御座)의 책상 안에 두고 여러 사문을 청해 향을 사르고 예배하면서 말하였다.

  "제자는 항상 정법으로 3보를 호지하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나이다."
  그리고 곧 금병과 유리병을 각각 30개씩 가져와 유리병 안에 금병을 담고 금병 안에 사리를 넣었다. 육향(陸香)을 살라 진흙을 만들어 그 뚜껑에 바르고 도장을 찍었다. 그리고 10월 15일 정오를 기해 30주(州)에서는 각각 구리 함과 돌 함에 사리를 넣어 한꺼번에 탑을 세우기로 했다. 그리하여 사문들이 각각 사리를 모든 주(州)에 보낼 때는 일체의 승려와 속인들이 다 그 경내(境內)에서 향과 꽃을 장엄해 가지고 보당(寶幢)을 세우며 음악을 울리고 길을 소제하는 등 정성과 힘을 다해 그 사리를 맞이했다.
  
 여기에 관해서는 다 말할 수 없으며, 그 사리의 영험은 널리 전하는 것과 같다. 지금은 대충 10여 가지만 써서 뒷사람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그 날 황제는 황후와 태자 및 궁내의 비빈(妃嬪)들과 함께 정성으로 마음과 힘을 다해 참회하고 두루 중생을 위해 좋은 인연을 함께 맺었다. 황제는 어떤 이상한 스님이 갈색 가사로 어깨를 덮고 곁의 사람들에게 "남을 놀라게 하지 말라"하면서 사리를 두고 가는 것을 보았다. 그 뒤에 아무리 찾아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으니, 사리가 장차 퍼지려는 것이었다. 황제는 말하였다.
  "지금 불법이 다시 일어나려 하니 반드시 감응이 있을 것이다."
  그 뒤 곳곳에서 올리는 글이 다 그의 말과 같았다. 황제는 그 10개월 동안 밥을 먹을 때마다 늘 치아 밑에서 사리를 얻었는데 황후도 그러했다. 은 소반에 물을 담고 사리 1과를 물에 띄워 백관(百官)들에게 보였다. 잠깐 사이에 그것은 2과가 되어, 물에서 오른쪽으로 돌다가 2과가 한데 붙었다.

  귀인(貴人) 및 진왕(晋王) 소(昭)와 예장왕(豫章王) 간()은 황제가 내린 벼루를 받았는데, 각각의 벼루 안에 사리 한1과가 들어갈 만했다. 보름이 못 되어 궁내에는 사리가 19과나 되었으며 그것은 다 광명을 발했다. 그 뒤로 4방의 승려와 속인들이 그들이 가진 사리를 다 황제께 바쳤다. 황제는 말하였다.
  "어찌 모두 반드시 진신(眞身)이겠느냐?"
  사문들이 그것을 시험삼아 망치로 때려 보았다. 거기에는 과연 13알의 옥속(玉粟)이 있었고 그 진신사리가 든 철갑(鐵匣)은 손상이 없었다.
  옹주성(雍州城) 서쪽 주지현(縣)의 남쪽에 있는 선유사(仙遊寺)에 탑을 세우는 날은 하늘에서 눈이 내리고 산에는 어둠이 짙게 깔려 있었다.


  사리를 넣으려 하자 어두운 구름이 갑자기 흩어지고 햇빛이 밝게 비치었다. 승려와 속인들이 다 흩어진 뒤에 구름이 다시 전처럼 모였다.
  기주(岐州)의 봉천사(鳳泉寺)에 탑을 세울 때 옥 같은 문석(文石)을 감득(感得)하여 그것으로 함을 만들었다. 또 쌍수(雙樹)와 새·짐승의 영상(靈祥)이 나타나고 기석(基石)은 변해 수정같이 되었다.
  경주(涇州)의 대흥국사(大興國寺)에 탑을 세울 때 세 곳에서 각각 오래 된 돌을 보내 왔는데 세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합해 함을 만드니 서로가 꼭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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