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수련원

    로그인  |  비번찾기  |  회원등록 


불교법문

("벽공스님의 법문입니다")


작성자 벽공
작성일 2018-09-16
  (스크랩)

경율론 삼장과 바른 계율은 무엇인가 = 불교법문,육성강의,


경율론 삼장과 바른 계율은 무엇인가 - 불교법문

경율론 삼장속에 있는 계율>>

 
팔만 대장경의 구성을 크게 나누어 보면 경 율 논 삼장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경이란 부처님이 설법하신 것을 그대로 옮겨 정리 해 놓은 것입니다. 가르침의 핵심이 모두 여기에 총 망라되어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때로는 '무'라는 글자를 앞세워서 설한 경전도 있고, '유'라는 말씀을 앞 세워서 설법한 경전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삼천 대천세계의 구성과 그 전생으로부터 현생까지 인연의 원리를 설한 경전도 있는 것입니다.그리고 마음의 요체를 밝히는 경전도 있습니다.


하늘에서부터 땅까지 빠진 가르침이란 없습니다. 경의 요체는 중도와 팔정도, 그리고 십이 인연법입니다.
육조단경과 같이 조사스님들의 어록도 때로는 경이라고 높여서 존칭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대개는 부처님의 직설적인 가르침만 경이라는 명칭을 붙였습니다.
우리 불교 안에서는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율은 무엇인가?
삼라만상의 법칙을 율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으며 그것을 해석하고 도리를 가르친 것을 모아 놓은 것이 율장이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논어나 맹자와 같이 세간의 순리를 가르친 것을 불교의 입장에서 배속을 시켜보면 그 나름데로 율장에 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율'은 인간뿐만 아니라 육도세계의 중생들이 지켜야 할 도리가 총 망라 되어 있는 광대한 것입니다.
부채살을 접듯이 좁혀 들어가면 왕은, 왕으로서의 도리가 있고 백성은 백성대로의 도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족안에서는 가장은 가장의 역할이 있고 자식은 자식의 도리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당연히 스님들도 나름 의무와 도리가 있는 것이며 신도는 신도의 도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통 털어서 율이라 보면 되는 것입니다.


국가가 유지되는 대는 여러 가지 법이 필요합니다.
기본법인 헌법으로부터 일반적인 조례까지, 그리고 사회에서 시행이 되고 있는 도덕과 관습이 다 율의 일부라고, 보면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율에는 이런 것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더 줄여서 스님들에게 적용하면 비구 250계와 비구니 348계가 되며, 보살은 48경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시 축소를 하면 십계(10)가 되기도 합니다.


율의 목적을 간략하게 보면 계 정 혜 삼학을 닦아서 탐진치, 삼독심으로 부터 벗어나 해탈하려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계율은 중생들을 보호하고 인도하는 등불과 같습니다. 그만 큼 중요하고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고 공덕이 없다 하더라도 제대로 계율만 지킨다면 삼악도를 면하고 훌륭한 과보를 받는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율을 잘못 이해하고 잘못쓰면 법의 성취를 방해하고 화합을 깨며 스스로를 옳아매는 구실도 합니다.


그러면 '논'의 성격을 간단하게 설명하고 계율의 의미를 더 이야기할까 합니다. '논'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발굴하고 제 해석 해 놓은 것을 논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논을 쓸 수는 없습니다.
부처님이 설한 정법을 크게 깨달은 고승들만이 논을 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웬만한 큰 선지식 스님들의 글이라도 어록이니 법어니 초,니 하고 따로 분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역대로 지금까지 논 대접을 받는 것은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 정도입니다.


'논'도 그 종류가 있으니, 비바사론이나 아비달마구사론 같이 삼천대천세계의 오묘한 구성을 위주로 쓰여진 논도 있고, 대승기신론이나, 중론, 백론 같이 근본 마음 자리를 바로 직지하는 그런 논도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모든 구성을 우리는 팔만 대장경이라고 하고 결율논 삼장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론으로 들어가서 계율의 의미를 다시 언급을 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파계시키는 대목이 있습니다. 지어 낸 이야기지만 황진이에 의해 파계한 지족선사는 모양이 우습게 됩니다.
그리고 황진이는 한껏 뽐내고 황진이에게 넘어가지 않는 화담 서경덕은 빛이 납니다.
알고 보면 별 볼일 없는 이야기지만 불교의 계의 정신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재미있는 관심사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노파가 한 스님을 지성으로 공양하고, 수행하는 것을 뒷바라지했습니다. 어느덧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어느 날 노파가 딸에게 말을 했습니다
"애야, 너는 스님 방에 가서 스님을 껴안고 물어 보아라. 스님, 지금 느낌이 어떠십니까? 하고"
딸은 어머니가 시킨 데로 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사는 다음과 같이 말을 했든 것입니다.
"목석과 같이 담담해서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이 말을 전해들은 노파는 큰 실망을 했습니다. "내가 십 년간 스님을 시봉했는데 말짱 헛고생을 했구나." 하고. 곧 스님을 내 보내고 초막에 불을 질러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그랬을까? "스님, 참 장하십니다." 하고 상을 주어도 마땅찮을 텐데.
이 이야기는 계율을 강조하기 보다는 본래면목을 두고 그 무엇을 알게 하려고 하는 이야기지만.


또 이런 이야기가 있으니 부처님 당시에 한 사미가 한 여인의 유혹을 뿌리칠 수도 없고 계율을 어길 수도 없어서 자결을 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온 고을이 칭송하고 예배하고 공경을 하면서 칭찬을 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입니까?

계율의 진정한 목적과 의미>

계는 집착을 여의게 하는 도구이며 죄업을 짓지 않게 하는 등불과 같고 화합을 이루게 하고자 하는 바구니와 그릇과 같습니다.

진정한 집착을 여의는 것은 마음공부를 해서 취하고 버림이 없는 도리를 알 때만 가능하지만, 그렇게 공부가 되기 전에 이건 가지지 말라. 하는 식의 초보적인 기준을 정해주므로 무분별한 집착에 빠져 드는 것을 방지하는 것입니다.

또 자신의 이익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해를 끼치는 행위를 막아서 죄업을 짓지 않게 해주는 것입니다.

화합이란? 모든 중생이 더불어 같이 자유롭고 서로 존중하고 평등하며, 같이 이익을 주고 받으면서 법질서를 지키면서 화합의 정신이지만 그리고 이 자체가 바른 계율이며 바탕입니다.

그렇지만 이 방법을 공부가 깊지 않으면 잘 모르기 때문에 미리 어떤 기준을 정해서 화합을 가르치는 것이 또한 계율인 것입니다.

계율을 잘 지키면 환란을 면하게 되고 도업을 이루는데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본래 계율을 지킨다고 해서 도를 이루고 깨닫는 것은 아닙니다,
자칫 계율을 잘못 알고 외관적인 계율에 집착을 하게 되면, 오히려 계율을 지킨다고 하다가 더욱 죄업을 짓게 되거나, 불필요한 계에 대한 집착심으로, 대중의 화합을 깨뜨릴 수가 있는 양면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계를 지킨다고 하는 것이 복을 감하게 됩니다. 결국 바른 계를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계율을 잘못 이해하고 지키기만 한다면 더욱 죄업이 깊어지고 박복해지며 깨달음에서 더 멀어지는 결과도 낳기 때문에 계율의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른 계율은 더불어 평등하고 더불어 모두와 자유롭고 더불어 이익을 주며 속이지 않고 거래를 하며 공정하게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해야 화합이 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근본 성품이 청정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계율이 완성되는 것이지. 크고 작은 계율을 열심히 지킨다고 해서 계율이 완성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다만 위와 같은 실질적인 밝은 지혜가 생기기 전까지는 잠시 필요할 뿐입니다.



=============================================

계율에 대한 초보적인 해설>>

계율 중에 힌옷을 물들여 분소의를 걸치고 생활하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분소의 란 무엇인가? 말 그대로 걸래와 같은 옷입니다.
그만큼 옷이나 사물에 집착하지 말고 수행정진 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비구니가 좋은 옷은 다른 사람에게 주어버리고 자기는 남루한 옷을 입고 대중에 나타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나무라는 것이었습니다.
칭찬을 하신 것이 아니라 비법이라고 했든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법화경의 내용 중에 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법사는 법문을 할 때 얼굴에 기름을 바르고 좋은 옷을 입고 장엄을 하고 법문을 하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앞 뒤가 맞지 않는 면도 느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위의 내용들을 잘 살펴보면 계율의 의도를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분소의를 입으라고 말씀 하신것은 집착없는 것을 강조하신 것이지 더러운 옷 자체를 찬탄하고 좋아하고 집착하라고 하신 말씀은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법을 설할 때에 옷을 장엄하라는 뜻은 중생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면서 법을 설 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중생은 대체로 시각으로 판단하고 기쁜 마음으로 법을 받아드리게 되는 것이니 이는 좋은 보시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꽤죄죄 하다면 듣고 보는 이들이 마음이 열리지 않는 관계로 모양만 보고 신심이 별로 나지를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처님은 장엄한 모습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나는 것이 아 겠습니까. 그래야 큰 믿음이 나니까요.

중생들의 심리를 살펴주는 행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만약에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인들이 불교를 믿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들의 주식은 고기인데, 불교를 믿어도 소용이 없는 것일까요? 부처님이 그들에게 직접 설법을 했다면 육식을 허락 했을까요?
스님네들은 음행을 금하는 것을 다 알 것입니다.
깨달음에 장애가 된다는 것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재가 신도들은 영 깨달을 수가 없다는 말인가요?


부처님 이후로 과거에 재가 신도 중에 거사나 보살들이 깨달아 크게 이름을 떨친 분들이 수도 없이 많았습니다. 그렇다면 상관이 없는 것일까
요? 그렇지만 이 부분에서 분명한 것은 출가자와 비 출가자의 우열은 있다는 것입니다. 출가자는 아무래도 수행하기가 쉽고 비 출가자는 어려웠다는 말입니다. 요즘은 사회환경이 달라져서 그 차별도 옛날 같이 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 어느 날 길을 가다가 물에 떠 내려가는 사람이나 사슴을 만났다 할 때, "당신은 누구를 먼저 구하겠는가? 하고 묻는다면." "그것을 말이라고 하느냐?" 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하겠지요.
그렇다면 "또, 성스러운 사람과 천한 사람이 같이 떠내려간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손을 먼저 내 밀 것인가?" 그리고 마음이 넓은 사람과 이해심이 좁은 사람이 둘 다 배고파 한다면 당신은 누구에게 음식을 먼저 주겠는가? 하고 묻는 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계율의 근본 정신은 집착을 쉬는데 있고 널리 배풀고 공경해서 일체 중생을 이익 되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에게는 깨달음에 빨리 다가가는 인연이 성립 될 것이고 널리 공덕을 지어서 복이 충만해 지는 바탕이 될 것입니다.
이 목적을 잘못 이해하고 개차법을 모르면 개율을 지킨다고 한 없이 사람이 꽉 막히게 되는 것입니다.

지킨다는 것은, 욕심만을 이루고 공부 길에서는 더욱 멀어집니다. 그리고 인색하기는 노차 보다도 더해 집니다.

그런가 하면, 사소한 계율을 어기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비방을 해서 자기는 더욱 중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간혹 계율을 지킨다고 하면서 마음을 옹졸하게 써서 남을 툭하면 비방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은 계율을 잘 지킨다고 생각를 하는 것입니다. 계율을 잘못 알고 지키면 안 지키는 사람보다도 훨씬 옹졸하고 무식해 지며 인색해지는 허물이 생깁니다. 그 때문에 박덕해 지는 것입니다.


계율보다도 더 앞서는 덕목이 있으니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화합입니다. 일체 중생의 화합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입니다.
화합이 깨어지고 증오가 난무하면 대다수 그 파도에서 벗어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부처님 재세시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양쪽의 스님들이 상대방의 사소한 잘못을 지적해서 참회를 시키는 것이 지나치다보니 공부는 뒷전으로 하고 싸우게 되었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때는 풀 위에 돌을 올려놓듯이 그냥 덮고 넘어가라는 것을 가르치게 됩니다." 원인과 결과는 따지고 따
져도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국회의원들이 서로 따지고 따지면서 아까운 세월을 다 보내는 것과 같습니다.
국가 간의 화합이 깨져서 전쟁이 났다고 가정을 해 보십시오. 과연 거기에 사랑과 자비, 그리고 예의가 존재하겠습니까?
아마 그런 것은 사치품일 것입니다.


사소한 계율보다는 화합이 우선하는 것입니다. 대중의 화합이 크게 깨지는 원인을 제공하면 무간지옥에 떨어진다는 오무간업 이야기가 그래서 있지 않겠습니까?
계율 중에는 꼭 이유 없이 지켜야 하는 계율도 있고 환경에 따라서 융통을 부려도 되는 계가 엄격하게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나는 여기서 이러한 계가 있다.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를 이미 받은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그 원리를 대충 들어내고 어떻게 계를 여법하게 갈무리 할 것인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전생사 이야기를 보면 참으로 범인들은 흉내 낼 수도 없고 상상 할 수도 없는 이야기들이 많이 나옵니다.
세세생생이 바른 법을 얻기 위해서 생명을 다해서 스승과 부처님을 친견하고 공양 올리는 이야기, 그리고 한 구절의 법문을 듣기 위해서 몸을 버리는 이야기, 배고픈 부모를 위해서 생살을 베어서 공양하는 이야기, 이웃을 위해서 수도 없이 목숨을 버리고 백성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온 재산을 나누어주고 급기야는 자기 몸까지도 주어 버리는 이야기, 그 희생과 공덕은 위로부터 아래까지 미치지 않는 곳이 없고 가림이 없습니다.


계율은 목숨을 버릴지언정 범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떠한 억울함을 당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자비로 한결 같이 대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만덕과, 만복 그리고 한없는 지혜를 닦았기 때문에 도처에 장애가 없었든 것입니다.
부처님은 무적이였습니다.
그것은 자비의 힘이 광대했기 때문입니다.


간혹 제바와 같은 배반자도 있고 아사세와 같은 왕도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처님의 법을 장엄 하는 역할을 하였을 뿐입니다.
부처님과 같이 채소의 벌레까지도 사랑하고 광범위한 자비와 용서를 베풀 수만 있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의 근기로는 매우 어렵다고 할 것입니다.
위와 같이 계율이 적용이 된다면 과연 불교를 근기 낮은 사람들이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


계율은 수행자나 중생들을 참다운 법으로 인도하는 등불과 같지만, 도업을 방해하는 목적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반적인 규정의 계율 자체가 도는 아닌 것입니다. 도업을 속히 이루는 데 도움은 될지언정 그 자체가 도는 아니라는 말입니다.


계율을 지키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계율은 육바라밀을 바닥에 깔고 행해 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스스로는 자기가 계율을 지키는 지도 몰라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계율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조차도 몰라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계율을 지킨다고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껍데기로 흉내를 내면서 속 좁은 사람만 되기가 쉬운 것입니다. 매사에 지나치지 않고 집착 없는 행을 닦는 것이 훨씬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지키기 위한 목적의 계율은 처음에는 누구나 필요합니다. 그러나 마냥 거기에 사로 잡혀 있으면 폐단이 생기는 것입니다.
다행히, 마음을 넓게 쓰고 욕심이 없으며 베푸는 보살행이 바탕에 있으면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럼 위에서 말한 몇 가지를 해석하고 끝내기로 하겠습니다.
부처님 재세시에 나이어린 사미가 여인의 유혹을 뿌리치려고 목숨을 끊은 것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칭송을 했는데, 그것은 나이 어려 계가 무엇인지 도가 무엇인지도 잘 모르지만 목숨 바쳐 법을 지키는 것을 가련하게 여기고 성스럽게 여겨서 칭송을 한 것입니다. 그 사미는 굳은 결심에 의해 세세 생생이 도심이 퇴타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일신이 불리해도 변절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노파가 초막에 불을 질러 버린 이야기는 그 스님이 아직도 밝고 밝은 본래면목을 보지 못하고 그저 꽉 막힌 목석과 같은 것을 도라고 집착하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황진이 이야기는 절개를 지키는 것이 무슨 대단한 도라도 되는 양 생각하는 사람들의 웃는 이야기 인 것입니다.


개차법 이야기인데 에스키모인들이 주식인 육식까지도 금하고 도를 닦을 수만 있다면 문제가 없지만 그럴 수가 없기 때문에 이때는 육식을 하면서라도 도를 닦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배풀 때도 평등속에 순서가 있으니 먼저 마음이 급한 쪽에 배풀어 주는 것은, 헤아려 주는 것입니다. 왜냐? 이것을 잘못하면 쓸데없는 원한 관계가 생기기 때문에 소인의 마음을 살펴주는 것입니다.


공경하여 구하는 것은 성스러운 사람을 먼저 친근하고 공양하는 것이 도리가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 세상이 밝아지고 성스러운 법이 빛나며 큰 이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위급을 구할 때는 영물 쪽을 먼저 구호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인연에 맡겨야 될 때도 있습니다.

끝으로 이 모든 작용은 집착을 스스로 끊고 널리 평등하게 만족시켜서 공덕을 구족하는 데 계율의 정의가 있습니다. 그것에 비추어 보면 어찌 해야 할 것인지 답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단 여기에 조건이 있으니 지키고 배푸는 선은, 자기의 능력이 허락하는 한 최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명상수련원(마하수련원) 벽공 술
http://www.mahazen.org




****대한불교조계종 마하수련원) 벽공스님의 명상센터))=
불교명상수련, 마음수련, 명상하는법,인성교육,심리안정, 불교법문,자연치유,
정신능력극대화수련))= 금융투자자, 스포츠선수, 기업인, 정치인, 교육자, 연구자, 수험생, 정신능력극대화와 안정수련.
불안장애극복수련))= 자연스런 회복 (우울증,불안공포증,빙의,강박,과대망상,성격개조,스트레스) 거주지역 관계없이 매주 벽공스님 지도.

PC 클릭 - http://mahazen.org/technote6/reg2.html
스마트폰클릭- http://mahazen.org/technote6/reg200.html


벽공스님 신간:

1. 행복한 인성, 2. 금강경강의, 3. 증도가강의, 4. 법성게강의, 5. 냉온조절건강법, 6. 수행의본질과화두. 7. 비샤카

아래의 링크 클릭해서 보세요.
PC라면 클릭 - http://bit.ly/2qSYqES

스마트폰 클릭-
http://bit.ly/2qZVyV6

 

게시글을 twitter로 보내기 게시글을 facebook으로 보내기
[수정삭제] [글목록]
아래글 가난 행복 불행 이런 원인 요인이 뭔가 인과의 원리를 살펴 볼까요.
불교법문 - 불교법문

     
번호     글 제 목  작성자 조회
53 법문

경율론 삼장과 바른 계율은 무엇인가

벽공 324
52 법문

가난 행복 불행 이런 원인 요인이 뭔가 인과의 원리를 살펴 볼까요.

벽공 1097
51 법문

불교계 최초 비구니 대해도 비구니의 출가인연

벽공 2103
50 법문

불교:고승. 제14조 용수보살의 법을 이은 제15조 가나제바존자의 생애. 가나제바존자의 일생과 입적.

벽공 3318
49 법문

불법승삼보) 형상의 삼보와 마음의 삼보

벽공 3520
48 사회

화합력과 숙달력 창의력은 행복과 능력의 주체 2편

벽공 2458
47 건강

우울증, 좌절감, 압박감, 불안,공포, 의욕상실 극복하기

벽공 4963
46 대인관계

자녀교육, 청소년의 길, 미래의 운명을 개척하는 주인공이 되자

벽공 3136
45 수련

강박관념, 공포증, 망상장애, 우울증, 빙의, 마장의 원리와 회복

벽공 3369
44 법문

공짜는 구속의 길, 인과응보, 운명에 미치는 영향, 공짜를 바라는 본능과 공짜의 의미

벽공 3007
43 가족

결혼의 적기, 바른 궁합, 부부의 경제권, 가족 관계,

벽공 3232
42 건강

스트레스 원인, 스트레스 개념, 스트레스 대처, 스트레스에서 해방되는 방법,

벽공 3133
41 건강

하의실종의 폐단, 하체를 차갑게 하면 성장발육에 지장이 생기고

벽공 2376
40 법문

법성게로 본 우주와 과학 1편 - 증지소지비여경,

벽공 3714
39 법문

명상,참선, 근본 본원 수행법 "그 마음이 청정하니"

벽공 2044
38 수련

달마관심론 가운데, "마음을 관하라."

벽공 860
37 수련

화두) 화두의 발생과 유래, 화두의 진정한 의미

벽공 884
36 수련

황벽선사의 무심

벽공 926
35 법문

부처님 공양, 무심도인 공양, 대자유 깨달음의 길과 믿음의 길

벽공 1117
34 수련

달마대사, 조사선, 돈오사상, 명상수련, 조사선의 실체와 근본 사상에 대한.

벽공 1226
33 법문

계정혜 삼학, 생활 속의 올바른 실천 계정혜, 계란 무엇이며 어떻게 간직하고 실천해야 할까

벽공 1480
32 사회

직업선택, 능력향상, 인재발굴

벽공 1318
31 법문

불성이란,- 자성청정, 자성 불생불멸, 자성 부증불감, 자성불침,

벽공 1618

123

불교법문 -

    [아래 칸? 홈페이지 안에 올려진 글을 한 글자나 여러 글자로 다양하게 검색]

벽공스님저서

대한불교조계종

불교방송

법보신문

안국선원

::: 명상, 명상수련, 명상하는법, 불교법문, 심리안정, ::: 마하수련원(불교명상수련원). 마하월드 :::
:::
문의 T. 070-8285-6685. 사업자 120-27-00295. 대표 김연호/ , 개원. 2001년 01월 15일.:::